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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를말하는사람 Jul 23. 2021

결혼, 그 쓸쓸함의 기록 5

기울어진 운동장


치익~~

맥주를 따르며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였다.

아니 이제야 저녁을 먹으려는데, 저녁거리로 저번에 먹다 남은 떡볶이는 천천히 데워지고 있고, 허기와 목마름이 동시에 찾아와 난 맥주를 먼저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 집에 왔을 때의 일은.. 내가 예상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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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보고하기 전 일주일은 바쁘다. 보고해야 하는 대상이 부사장일 경우 밑에 상무 실장 팀장 단계별로 리뷰를 받아야 한다. 대기업의 장점이자 단점은, 어느 개인의 잘못도 없고, 공이 있다 한들 개인의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내가 보고서를 상무에게 들고 갔을 때, 무언가 잘못된 것은 팀장이 질타를 받는다. 부사장에게 갔는데 보고서의 허점이 있거나 잘못된 결론을 도출했다면 그건 임원의 몫이 된다.


정말 특출난 기획력과 번뜩이는 인사이트를 가지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리뷰를 하며 수많은 탈고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기획 업무의 보고서 특성상 자료와 데이터논리에 맞게 논거 되어야 하므로 보고가 다가오면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하다. 맞다고 생각한 논리들도 질문이나 반박의 시나리오를 그려 보다 보면,  수정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는 회사 필수 교육까지 겹쳤던 데다 가정 보육까지 갑자기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정보육  단순 업무 처리는 가능해도, 데이터로 오랜 시간 생각하고 논리를 짜야하는 업무는 하지 못하기에 더더욱 시간은 없었음에도, 남편에게 ‘일주일간 내가 일을 집중해야 하니 가정보육을 해달라 말하지 못했다. 번갈아 가며 재택 하고 가정 보육을 하자는 룰을 깨는  같은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수요일에 보고해야  보고서는 저번  금요일부터 작성 하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3, 주말에   있다면 5일이 있었지만, 당분간 주말에 남편은 취미생활을 위해 오전 11시에 나가 저녁 늦게야 들어오기 때문에 보고서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다.

이 와중에 수요일 보고가 화요일로 당겨지자. 난 급해지기 시작했다. 금요일에 팀장 리뷰를 받고 나서 예상대로 보고서는 처참하게 갈아엎어졌기 때문이다.

보고 전날에는  서면으로 사전보고를 마쳐야 했는데, 월요일 일과시간안에  하기는 힘든 분량이었다.

그래서 주말 새벽 시간을 이용하기로 하고 ,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이가 일어나는 7시까지 3시간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이는 언제나 그렇듯 7시쯤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없이 놀아주지 않으면 심심하다 난리였다. 일과 중에는 아무것도  수가 없었다. 일한답시고 애한테 하루 종일 티브이를 보여줄 수도 없지 않은가. 한두 시간 티브이 보여 주지만,  시간 안에어떻게든 흐트러진 집을 정리하고 치워야 했다. 그래도 집은 엉망이었지만 말이다.


월요일도 4시에 일어나 작업을 하고, 5 반에 일치감치 회사로 출근했다. 6 반쯤 회사에 도착했는데  부서 여자 과장이 나와있어 아침인사를 나눴다.

우린 새벽 출근시간 또는 야근 시간에도 종종 만난다. 그녀도 6 딸을  엄마인데, 그녀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씁쓸한 것은 아마 나를 보는  같아서일 것이다. 너무 밝고 명랑하고 거침없는 그녀의 어깨에는 일과 가정, 아이, 시댁모든  올라타 있었다. 일은 해야겠고,  많은 일을 정규 업무시간안에 해내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할것이다. 집에는  나름대로 해결해야  숙제들이 잔뜩 을 것이다. 한날 보고를 마치고 그녀를 화장실에서 났는데 무언가를 찾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시어머니가 “애가 6살인데 교육을  시키냐 시킬 생각 없냐해서 학원을 알아본다 했다.  남편은 학원을  알아보는 걸까. 어머님은  얘길  자기 아들한테는 하지 않을까.    없는 일이라 했다.


월요일 리뷰에서는 다행히 보고서에 큰 수정사항은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사전 보고를 하려다 보니 내 눈에 틀린 것이 끊임없이 나왔다. 결국 사전 보고는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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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고는 오후 1시지만, 난 새벽 5시 30분 기차를 타기 위해 4시 반에 일어나야 했다. 상무는 내가 부사장에게 대면 보고를 하길 바랬고, 부사장의 집무실은 서울에서 KTX로 3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8시 차도 있었지만 경험상 업무 시간에 기차를 타면 전화를 받느라 왔다 갔다 하기 바빠 더 피곤했다. 차라리 새벽시간에 기차를 타고 한숨 자는 게 낫지..


다행히 보고는 모두가 만족스럽게  끝났고, 이제   후로 예정된  다른 보고 준비를 논의하고 다시 KTX 타고 올라왔다. 물론 아침도  먹고 보고 준비하느라 점심도  먹었다. 그렇다고 기차 출발하기 전에 저녁을 먹기엔 시간이 애매해 그냥 기차를 탔다. 저번  내내 주말에도 새벽에 일어나 피곤했는지 머리를 이리저리 처박으며 역마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8시가 넘어기차는 서울역에 도착했고,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에다가 노트북과 가방까지 둘러대고 철퍽철퍽 버스정류장까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집까지 왔다.


집에 들어와서 안방에 가니 남편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이는 목욕탕에서 혼자 물놀이 중이었는데, 내가 목욕탕에 들어가자 아빠와 목욕하고 싶다고 말했다. 난 뒤를 돌아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을 봤다. 하루 종일 아이를 봐서 너무 힘들어 지쳤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마 엄마가 왔는데도 엄마를 반겨하지 않고 또 아빠를 찾는것이 짜증이 많이 났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내가 “상상 것만은 아니다. 아이가 내가 아닌 남편과 같이  거라고 떼쓰던 시기였다. 아이가 계속 떼를 쓰자 남편은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밖에 나가버렸다. 아이는 아빠를 찾으며 우는데도 결국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아 내가 물었더니 이성을 잃을 만큼 화를 내며 말했다. “지금 애가 아빠를 찾는 게 정상같이 보이냐? 엄마가 애착형성이 안된 거 아니야.” 라며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다 했다. 물론 내가 다른 가정주부 엄마들보다 시간은 못 보냈을 것이긴 해서 죄책감도 있었지만, 왜 아빠를 찾는 것이 엄마 잘못으로 연결될까? 란 생각은 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끙끙 앓다가 가정주부인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다. 자기가 하루 종일 놀아줘도 아빠 오면 아빠를 그렇게 찾는다고 했다. 그 친구는 그 이유를 자기는 항상 옆에 있고 아빠는 잠시 있다가 가버리는 사람이라 더 애가 타나? 라며 생각했더랬다.


지금의 남편 표정은 그때의 표정과 비슷했다.

‘난 내가 재택인 날에 저녁엔 목욕도 시키고 잘 재우는데…, 뭐가 저렇게 힘들고 불만일까?’

정말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가 아니기에  피곤함과 짜증은 내가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하루 종일  먹어 배가 고프니, 남편이 목욕시키는 동안 내가 밥을 먹겠다고, 말할  없었다.

아니 “나 하루 종일 못 먹었네”라고 말을 꺼내긴 했다. 그가 듣지 않고 넘겨버렸기에 포기한 것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싸우지 않는 것이고, 싸우면서 아이가 아빠를 찾는 기이한 현상이 내 잘못이라는 얘기가 나올 거리를 아예 안 만드는 것이다.


결국 나는 아이를 씻기고 잘 준비를 시켰다. 남편은 그 사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못 먹어 배가 고팠던 것도 짜증에 큰 몫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나라면 애 저녁 먹을 때 같이 저녁 먹었을 텐데…. 그럼 그냥 애 씻기는 동안 내가 저녁 먹을 수도 있었을걸…”

나에게 남편의 행동은 이해 하지 못할 것들 투성이다.

남편은  시간엔 먹고 싶지 않단 이유로, 혹은 맛있는 음식이 없다는 이유로 저녁때가 되어도  먹곤 했다. 아이가 잠든 후에 뭔가를 시켜먹거나 본인이 원하는 맛있는   먹고 싶어 했는데, 문제는 애가 잠이 제때    발생한다. 9시에 재우기 시작한  10 11시가 넘어갈 때도 있었다. 그럴  남편의 짜증은 극에 달하고 나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애가 남편을 찾는 통에 같이 재워야 하는 상황이 너무 싫었던 것이다. 다른 집은 대체로 엄마랑  자서 그럴 일이 다고 말이다.


난 그냥 아이가 저녁 먹을 때 같이 먹고, 잘 땐 같이 잠들면 짜증낼일이 없지 않나 생각했다. 아빠가 없을 땐 애가 잠을 안자다가도 내가 자면 같이 잠들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남편과 같이 애를 재우다가 아이보다 내가 먼저 잠들었는데, 남편은 내가 먼저 잠든 것에 또 한 번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내곤 했다.


밥을 먹고 올라온 남편에게 아이는 잠자리 책을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읽어달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에 5일은 내가 읽어주는데, 아빠가 읽어주길 바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남편 생각은 다를 일이었다.

“아빠가 두권, 엄마가 한 권 읽어줘~”

아이는 너무 해맑았지만 난 남편이 짜증 낼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내가 있는 침대 머리맡에 올라오지 않고 침대 아래쪽 바닥에 앉아서 책을 영혼 없이 빨리 읽어주기 시작했다.


저녁 10시.. 난 아직 오늘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었다. 마지막 한 권을 읽고 언제나 하는 다리 쭉쭉 까지 해주고 나서야 아들은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를 보며 침대에 누워서 한참을 생각했다. 너무 피곤한데 그냥 잘까…. 그래도 오늘 한 끼는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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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가 속으로 넘어가 위를 휘감는 느낌.. 술을 좋아하는 나는 빈속에 맥주가 들어가는 느낌이 스트레스가 좀 느슨해지는 기분과 비슷해서 좋아한다.

좋아진 기분에 생각을 해본다.

‘오늘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일에 지쳐 들어갔는데, 마치 애를 안 본 것 같은 죄책감을 내가 왜 가져야 하는 걸까?

재택은 나도 똑같이 저번 주 화, 수, 목 3일간 하면서 애를 봤고, 저녁을 먹였고, 목욕을 시켰고, 잠자리 책을 읽어주고, 재웠는데…. 남편이 한 금, 월, 화요일까지 3일 동안 한 재택과 가정보육의 무게는 나의 그것과 다른 것일까?


요즘 술을 많이  먹었더니 한잔만 먹어도 취하긴 하더라만, 오늘따라 새삼스레 느껴지는 불균형 속에  어지러운 것만 같다.


이 결혼은 날 성장시키고 있는 걸까, 날 파괴하는 걸까?

매일 헷갈리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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