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시점, 잘못된 이직과 빌런
난임과 직장생활, 그 딜레마 3
30대 초반으로 사회생활을 오래 해 봤다고 하기엔 아직은 많이 겸손해야 할 때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잘못된 이직 선택을 했고 거기서 인생이 조금은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는 있다.
20대 중반부터 30세까지 대기업 계열사의 좋은 근무환경에서 만족스러운 연봉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었고 이직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러던 중, 지금에 와서는 저주하고 있는 그 공무직 채용 공고를 스치듯 보게 되었다. 옛날 옛적 대학생 때 가입해 놨던 공기업 채용 공고 블로그에서 올라온 피드였다.
그 당시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고민점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다. 기업 이미지를 위해 일선에서 영어로 프레젠팅 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결혼하고 임신하면 불어난 몸매로는 이 위치에서 밀려나겠다 싶은 불안감이 있었고, 커리어적으로 일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발전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공무직 채용 공고는 나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는 유혹 감이었다.
구인중인 포지션은 내가 직장에서 살려오던 영어를 이용할 수 있었고, 내가 자신 있어하는 업무였다. 공무원에 준하는 자리이기에 61세까지 직업 보장도 된다.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과 필기시험을 거쳐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그때까지도 이직을 확실히 결정하지 못했다. 이유는 바로 엄청나게 낮아지는 연봉 때문이었다. 안정적인 자리이지만 이 연봉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머리가 하얘질 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또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사실은 그 해에 임신을 이미 시도하고 있었다는 것. 만약 이직을 한다면 새로운 회사에 대한 예의상 1년 정도는 임신 시도를 멈추는 게 맞다고 스스로 경계를 긋고 있었다.
'일이 재미있고 커리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라면 연봉이 적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아직 나이가 젊으니 임신보다는 내 커리어 선택에 더 집중하자'.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안정적인 직장에서 아이를 낳아 육아휴직도 편히 갖고 더 오래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고민들에 하나하나 답해가며 결국 공무직으로 이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상사와의 관계였다. 사람 한 명으로 내가 속한 집단에서 도망치고 싶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땐 고려하지 못했다.
초기에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난 주변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동료들이 여러 번 지나가는 말로 "어이구, 좋은 직장 내버려두고 왜 왔어요~?!"라 할 때에도 그저 웃는 얼굴로 농담처럼 받아들였다. 내가 맡은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어서 부정적인 사내 분위기를 모른 체 했다. 아무튼, 내가 입사한 뒤로 약 2개월 동안 5명이 줄줄이 퇴사했다. 그 뒤로도 내가 만 1년을 채우기 전에 3명이 더 퇴사했다.
퇴사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이 한동안 즐겁게 근무하던 내게도 퇴사의 욕구가 목전까지 올라오게 됐다.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아 늘 훌륭한 이직 선택이었다고 자위하던 내가, 대놓고 이직을 후회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게 됐다. 결혼과 임신, 훗날 가족과의 양립을 위해 결정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임신 시도 시기가 회사 탈출을 가로막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