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익이 쓴 <꽃신>은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6.25 전쟁을 전후로 한 시대적 배경 자체는 아름다울리 없다. 전쟁과 가난, 배신감 등의 소재가 아룸다울리 없다. 하지만 아름답기 그지 없는 것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 꽃신이 주는 아니, 꽃신을 바라보고 그것을 신은 여자아이의 발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마음이다. 소설글귀 마디마디가 신집 여자 아이의 꽃신 신은 발을 보는 주인공의 마음과 닮아 있다. 예쁘고 웬지 마음이 끌리는데 애틋하고 가슴이 저린다.
주인공의 심리는 인물들의 신체 부위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신집 딸의 꽃신 신은 두 발이 시작이었고, 저주스런 말을 퍼부은 신집 사람의 입이 마지막께였다.백정집의 자식이 중심 인물이 되어 이웃에서 신을 짓는 신집의 인물들과 얽혀 이야기가 전개된다.
백정의 손, 칼을 쥔 그 손이 섬찟함으로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그림을 선사하고. 그것보다는 약하지만 신집 부인의 눈과 주인공의 눈이 대화보다 강한 대화의 도구로 쓰인 부분 또한 그러하다. 몸을 놀리고 손을 써서 일했던 참으로 순박하고 거짓없을 그 시절,모든 보이는 것들과 서로의 표정, 대면한 말로 담을 사이에 둔 두 집 사이였다. 한 집은 신을 짓고 다른 집은 소를 잡으며 생계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지었을테고 말이다.
순박한 마음만큼이나 조선시대 오랜 신분 의식 또한 사라지지 않고 그들을 지배했던 것일까. 지금에 와서야 이런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이 예전 같진 않으리라만, 시드니에서 만난 한 친구의 말 한마디가 머리를 맴돈다. 나와는 뒤늦게 알게 된 터라 이미 한인 사회에서는 알려진 번화한 한 동네에서 시댁이 정육점을 운영한다는 것을 쉬쉬하며, "니 이거 사람들한테 말하지 말그레이." 신분과 직업을 나아가 누군가를 혹은 자신을 떳떳해하지 못하는 마음은 우리를주춤거리게 하고 마음 한쪽 어두운 구석을 만든다. 외부 조건으로 드리워진 그늘이 사라지면, 자신의 모습만으로 부족할지언정 가뿐한 온기를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덤을 주며 후했던 푸줏간 주인, 주인공의 엄마 아빠는 돼먹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꽃신을 짓는 장인, 신집 주인은 자신의 장인정신에 어긋나게도 고기 잡는 백정 또한 고기 잡는 재주를 가진 한 장인으로 보지 못했다. 장인은 장인이되 사돈으로선 엄감생신이었나보다. 자기만의 외곬 장인정신을 숭배한 나머지, 제 처지를 술과 푸념에 의지했고 결국 가난에 쪼들렸다. 신분 의식과 자기 연민에종속된 그에게 이웃은 무식한 농사꾼이었고 천한 백정이었을 뿐이었다. 사회의 신분 의식을 떠나 사람으로서 사람을 대하는 정신은 개인의 인품을 결정짓는다. 내가 아무리 잘낫다고한들 순식간에 재산을 탕진하고 가족을 잃은 길바닥 거지일 수 있고, 손가락질받고 낙향한 정치인일 수도, 한 순간 실수로 돌이키지못할 짓을 저지른 범죄인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 찌질하다는 것을 말해 뭣하랴
또한 그 입이란 놈의 존재 말이다. 그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태고 적이나 온갖 말썽을 일으키는 고질적인 화상이다. 몰래몰래 하는 말은 발 없고 형체 없는 거대한 몸집의 소문이 되어 한 사람 한 집안을 집어 삼키기도 한다. 얼굴을 보고 눈빛과 낯빛을 확인하며 뱉은 말은 지울래야 지울 수 없어 사실보다도 더 자극적으로 감정을 휘몰아친다. 반면, 얼굴을 대하진 않았지만 오후내내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구혼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반대의, 정반대의 말로 내뱉혀그 고요한 밤 똑똑히 귀 속에 각인된 말은 그야말로 말 자체로 가슴을 후벼 파고 들었으리라.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그는 존경스러운, 아끼는 이의 아비이자 오랜 이웃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백정의 손에 부르르 칼을 쥐게 했던 신집주인의 만행도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따뜻하게 그려진 그 집 꽃신의 기억을 끌어내리진 못했다. 부산으로 터전을 옮겨 피난민 한가운데 사는 삶도 그 애틋한 기억을 지우진 못했다. 오히려 전쟁 난리 통에 그 꽃신은 안타까움을 가득 안고 어지럽게 폐허가 된 마음 한 구석에서 더욱 화사하게 빛나고 있다. 안타까움과 두려움을 한가득 안고, 그 폐허 속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있다. 고향을 멀리 떠나와 여전히 민족이라는 정서에 사무치고 가슴 저미는 나의 영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