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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Oct 15. 2023

내향성을 품은 외향형 인간

혼자 있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나는 사람을 만나야 산다.

 어릴 적부터 나는 조용한 아이였다. 부모님께서 부부모임에 우리 삼남매를 데리고 가시면 다른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놀기 바빴지만 나는 그 집에서 책방이 어디 있는지 찾아,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만화책, 동화책, 그림책, 미스터리나 UFO에 관한 책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으면서 상상하고,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이 어린 시절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었다.



 삼남매가 다퉈서 부모님께 혼이 나는 순간에도 나는 스스로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잘못했다고 얘기하지 않고 차라리 입을 닫고 매를 더 맞았다. 그리고 종아리를 때린 후 안아주며 다독여주는 아버지 품에 안겨서 '이렇게 안아줄 거면 처음부터 때리지 마시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맞는 게 싫어서 부모님께 애교를 부리며 잘못했다고 바로 얘기하는 동생은 나보다 상대적으로 덜 맞았다. 동생은 그때부터 사회성이 좋았나 보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반에서 가장 키가 작고 소심했다. 선생님께서 "발표해 볼 사람" 하고 물으시면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1학년 때 학교에 의무적인 학부모상담을 가셨던 엄마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이 아이의 행동반경은 180도예요."라는 말을 들으셨다고 한다. 그 말인 즉, 나는 내 책상 앞, 옆, 뒤에 앉은 친구들이 말을 걸면 얘기하긴 했으나 일어서서 친구를 찾아 나서거나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성향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 때는 MBTI의 개념도 없었을 때이지만 당시의 나는 분명 극 I, 내향적 성향이었을 거다.



 그러던 내가 지금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 앞에 서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고,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에게 양질을 교육을 제공하고 싶어서 만든 유튜브를 지금까지 유지하며 교육청의 허가를 받아 구독자 6천6백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의 유튜버를 하고 있으니 인생 참 길게 볼 일이다. 5년이 넘도록 유지하고 있는 내 MBTI는 ENFJ이다. 언변능숙형 선도자 유형이라고 한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도 좋아하고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고, 사람들을 만나야 빛이 나는 사람이다. 이런 내 성격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생각해 보면 내 머릿속에 반짝, 하고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님은 30대의 젊은 여선생님이었다. 그때도 발표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싱긋 웃으며 "○○이가 한 번 발표해 볼까?" 하고 말씀하셨다. 쭈뼛거리며 일어선 내가 떨리는 마음으로 겨우 발표를 마쳤을 때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밝은 목소리도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칭찬의 달콤함을 강렬하게 느끼고, 그 희열을 다시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잘 그리면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글을 잘 쓰면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영어를 잘하게 되면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반장이 되면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나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었고, 하나하나 재능을 발전시켜 갈 때마다 선생님과 부모님의 칭찬과 격려에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더욱  칭찬받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성격이 조금씩 변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나도 아이들의 삶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변화시키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고, 오로지 그 길만을 보고 달려 이루어냈다.



 그래도 내가 처음에 갖고 태어난 내향성은 내 안에 늘 자리 잡고 있어서 나는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할 때 충전되고 평화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단기적, 장기적인 인생 계획을 세우고, 가능성을 따져보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렇게 생각이 길어지면 종국에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사서 하고 있다. 사람이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그 생각에 갇혀버린다. 그럴 때는 밖으로 나가 햇빛을 쬐면서 걷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이번 주말에도 친정쪽 가족행사가 끝난 뒤, 아들은 아빠와 시간을 보내러 나가고 부모님께서는 부부동반 모임으로 산에 가시고, 나는 친정집 내 방에 누워서 책을 읽는데 무료하고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다행스럽게도 오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언니들과의 약속이 있어 밖으로 나갔다.


 

 일단 집 밖을 나가서 콧바람을 쐬는 것부터 좋고, 운전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BTS의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만난 언니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야, 너는 너 나이답게 살아~! 너무 먼 미래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 없어. 지금 너 서른여섯이면 진짜 젊은 거야. 겉으로 보기에도 젊고!"


 하는 말에 또 입꼬리가 주책맞게 쓰윽 올라가며 기분이 좋아진다. 서로 할 말이 많아서 밤을 새워도 모자라겠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샤브샤브 국물이 다 쫄아들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고민을 얘기하고, 언니들의 애정 어린 조언도 듣다 보니 어느새 내가 뭘 걱정했었는지도 잊어버린다.



 그냥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잘 보내면 된다. 에너지가 달려서 피곤할 때는 혼자 소파에 늘어져서 티비도 보고, 잠도 푹 자고 잉여인간 같은 하루를 보내며 충전도 하고. 가끔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아무 생각 없이 깔깔대며 웃기도 하고. 평일에는 퇴근하고 저녁을 챙겨 먹은 뒤 아이와 함께 산책하면서 시원한 공기도 느끼면서 함께하는 행복을 느끼고. 심심하면 훌쩍 여행을 떠나서 좋은 풍경 구경,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힐링도 하고. 나 스스로에게 예쁜 꽃 선물도 하고.



 나는 오늘도 내향성을 품은 외향형 인간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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