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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Oct 06. 2023

가라앉은 마음을 띄워주는 것들에 대하여

소소한 일상 속 행복의 기록

 지난 여름 무렵부터 대한민국의 뉴스는 온통 무시무시한 사건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연이은 선생님들의 자살 사건과 학부모들의 도를 넘는 악성민원 내용들이 터져 나오고, 도시 곳곳에서 칼부림 등 흉흉한 사건들이 보도되면서 교직사회는 집단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사람들이 무너지고,  학교에도 병가를 쓰는 선생님들이 늘어만 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 역시 기분이 침체되고 좀처럼 마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계속해서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과연 미래에도 비전이 있는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며 공허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 불안 때문일까. 후배 선생님들은 다들 주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에게도 "부장님도 공모주 한 번 사보세요~! 치킨 값 정도 벌 수 있어요!" 하고 귀띔해 주었다. 후배 선생님들에게는 주식이 주는 즐거움이 꽤 큰 듯했다.

 귀한 정보를 알려준 후배들에게는 참 고마웠지만 나는 안다. 내 성격은 주식과 맞지 않는다는 걸... 주식을 사면, 분명 계속해서 들여다보면서 일희일비하며 기분이 널뛸 것을 알기에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금요일 오후, 6교시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 남아 다음 주 수업준비를 하면서 교실과 연구실을 왔다 갔다 하며 다람쥐처럼 아이들에게 나눠줄 자료들을 복사하고, 준비물을 준비하고, 수업을 구상하면서 교실에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기가 막히게 좋은 음악을 추천해 준다.


악동뮤지션의 명곡,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는 노래다.


 차가워진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쓸쓸한 가을날, 구슬 같은 가수의 목소리와 마음을 진하게 울리는 서정적인 노래 가사가 마음속으로 깊게 파고든다.


'일부러 몇 발자국 물러나
내가 없이 혼자 걷는 널 바라본다
옆자리 허전한 너의 풍경
흑백 거리 가운데 넌 뒤돌아본다


(중략)


적막 짙은 도로 위에 걸음을 포갠다

아무 말 없는 대화 나누며

주마등이 길을 비춘 먼 곳을 본다

그때 알게 되었어

난 더 갈 수 없단 걸

한 발 한 발 이별에 가까워질수록

너와 맞잡은 손이 사라지는 것 같죠'


 어떻게 이렇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듯 음악에 가사를 녹여 표현할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수업 준비를 하고, 빗자루로 교실 바닥을 쓸면서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들으니 가사 속 상황이 머릿속에 드라마처럼 재생이 되어 나에게 없던 추억도 만들어지는 듯했다.



 20대 때는 어딘가 여행을 떠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연애를 하고, 이런 큰 이벤트들이 행복이라 느꼈다면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이렇게 아무 일 없는 조용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듣게 되는 내 취향의 음악 한 곡이 큰 행복이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은 뒤 아이와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걷다가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별들이 너무 많아 신기해하며 목을 뒤로 계속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도,


 추석 연휴가 끝나고 친정 부모님께서 반찬을 많이 만들어주셔서 혹시 입에 맞으면 나눠주고 싶다며 우리 집 앞까지 와서 반찬을 나누어주는 언니와 마주 하는 순간도,


 밤에 침대에 누워 밖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귀뚜라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잠드는 순간도, 가라앉은 내 마음을 둥실 띄워 올린다.


 살면서 매 순간이 행복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최대한 천천히 음미하며 나룻배를 타듯, 잔잔히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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