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하교한 후, 보충지도가 필요한 아이의 수학지도를 40분 더하고 교실에서 학기말 성적 처리를 위해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건조해져서 퍽퍽한 눈을 꿈뻑거리고 있던 찰나였다.
드르륵,
교실 앞문이 열리며 반가운 두 얼굴이 빼꼼 보인다.
"부장님! 바쁘세요?"
우리 학년 후배 선생님들이다.
"아니, 괜찮아요. 왜? 무슨 일 있었어?"
자리에서 일어서 패딩코트를 안쪽으로 여미며 내가 물었다.
"아니, 저 오늘 너무 속상한 일이 있어서 얘기 좀 들어달라고 왔어요."
"아이구 무슨 일이야.. 그래 그래, 우리 연구실 가서 얘기하자."
요즘 아이들 상담이 많아서 우리 교실 복도 앞에 있는 특별실을 상담실로 이용하는데 이 날 아침에 우리반 아이를 데리고 특별실에 갔더니 후배 선생님이 학부모님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얼른 문을 닫고 나오면서 '보통 학부모 상담은 아이들 하교 후 오후에 이루어지는데 아침 8시 50분에 상담을 하다니.. 무슨 일이지?' 하고 걱정을 했는데 그 후배 선생님이 오후에 나를 찾아온 것이다.
"글쎄, 아침에 출근했는데 학부모님이 연락도 없이 찾아오신 거예요."
후배 선생님은 출근하자마자 갑작스레 찾아온 학부모를 교실 앞 복도에서 마주쳐야 했다. 아침에 아이들과 인사하고 교실 분위기를 정돈할 새도 없이 상담을 요청하는 학부모에게 잠깐 교실을 정돈할 시간을 달라고 이야기하고 8시 50분부터 상담을 한 것이다.
수업시작이 9시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계속해대는 학부모 때문에 선생님은 아이들 수업이 있으니 그만 교실로 돌아가보겠다 말씀드리고 걱정하시는 부분은 아이들을 불러 상담하고 결과를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아침부터 너무 고생했네.. 그래도 00 선생님이 침착하게 잘 대응했네요. 아유~ 왜 갑자기 바쁜 아침에 와서 그러신대. 오후에 오신다고 미리 연락하고 오시면 되는데."
내가 후배 선생님을 토닥이며 이야기하자, 우리 학년 막내 선생님이 말했다.
"부장님, 근데 이렇게 아침에 무작정 오는 학부모는 그냥 다음에 약속 잡고 오시라고 돌려보내면 안 돼요? 왜 우리가 다 받아줘야 하는 거예요? 정말 너무 화나요."
"그렇지. 너무 화나지. 그런데 아침에 이렇게 달려온 학부모를 그냥 보내면 문제가 더 커져요. 왜냐하면 이 사람은 어젯밤부터 아침까지 계속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걱정이 이만큼 커진 상태에서 극도의 흥분을 참지 못해서 온 사람이거든. 그런 사람들은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는 인정욕구가 하늘까지 솟아서 오는데 거기다 대고 다음에 오라고 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겠어? 자기 얘기 안 들어줬다고 바로 난리 치면서 교무실, 교장실 가는 거죠. 그러면 우리반 아이 상담, 학부모 상담, 관리자 상담까지 더 힘들어지니까 잠깐이라도 얘기 들어주고 다음부터는 약속 잡고 방문하시라고 하는 게 좋더라구요."
10년 넘게 학교에 있으면서 곁눈질로 배우고 보아온 사례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리며 내가 말했다.
"근데요 부장님, 제가 더 화난 건 뭔지 아세요? 학부모님 가시고 나서 아이들 상담하고, 문제 해결하고 다시 학부모님께 전화를 드렸거든요? 그리고 아침에 갑자기 학교를 오셔서 당황했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면 죄송하다고 말하는 게 상식 아니에요? 근데 죄송하다고 말을 안 하고 '어쨌든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자기 자식은 남한테 조금만 상처를 받아도 사과받길 요구하면서 정작 학부모님 본인은 사과를 안하시더라구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후배 선생님이 말을 쏟아냈다. 나는 책상을 탁 치며 후배 선생님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공감했다.
"요즘 그런 사람들이 진짜 많아졌어요. 자기도 자기가 잘못한 걸 알면서 알량한 자존심에 사과하기는 싫은 거지. 그걸 그냥 감사하다는 말로 퉁쳐버리는 거고. 근데.. 그런 학부모가 키운 아이들도 학교에서 잘못을 해놓고 사과를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 지도할 때 전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려요. 나는 정말 10년 후, 20년 후의 우리 사회가 너무 걱정돼."
지난 여름 서이초 교사 사건을 계기로 뉴스에서는 이제 학교 방문 전 예약제를 시범운영하겠다는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학부모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학교 출입구에는 퇴직 교사 혹은 퇴직 경찰 출신의 연로하신 배움터지킴이 아저씨 한 분이 계신데 그분이 이렇게 무작정 오는 학부모들을 다 막아내실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