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안녕하세요. 어제 수업 시간에 00이가 친구들과 행복하게 활동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사진 보내드립니다.^^'
예쁘게 찍은 아이의 사진 2장을 첨부하여 학부모님께 보낸 나의 이 문자는 끝내 답장을 받지 못했다. 거창한 답장을 기대하고 보낸 건 아니지만 이런 순간에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답장이 와도 기운이 빠지는 순간이 있다. 학부모님이 체험학습에 대하여 물어보셔서 정성껏 문자로 10줄이 넘게 답을 해드렸는데 "네" 하고 한 글자로 답장이 오는 것이다. 문장 부호 하나 없는 한 글자의 답장은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감사한 일에도 감사를 표하지 않는 태도는 나도 앞으로 이 사람에게 그렇게 정성을 쏟지 말고 적당히 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사진에 담아 우리 반 학부모님들과 공유하는 어플리케이션에 설명과 함께 사진을 올린다. 업로드하는 매 순간마다 서른 명에 가까운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서 사진에 빠진 아이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을 하고, 학교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즐겁게 잘 생활하고 있음을 부지런히 사진첩에 업로드한다. 그리고 간혹 학급 행사에서 몇 명의 아이들이 장기 자랑을 하는 순간이 있으면 그 아이들은 따로 사진을 찍어 학부모님께 문자로 보내드린다. 나도 부모된 입장에서 나의 아이가 학교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엄마 같은 마음으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답이 없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래,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하는 생각을 하며 다음에는 그냥 나만의 추억으로 간직해야겠다는 슬픈 다짐을 한다.
2023년 여름, 나를 포함한 많은 교사들이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웠다. 꽃다운 나이의 초임교사가 학부모의 갑질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하여 많은 교사들이 이것은 비단 그녀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은 아픔이라고 공감했기 때문이다.
10년이 넘게 학교에 있으면서 정말 많은 것이 변했음을 느낀다. 초임 시절에는 학부모님께서 교사인 나를 굉장히 신뢰해 주시고 존중해 주시려는 마음을 느꼈다.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나도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학급 경영을 하게 되었고 나는 그때부터 아이들의 사진을 많이 찍어 학부모님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우리 반만의 특색 활동을 기획하여 아이들과의 특별한 추억을 쌓고, 아이들이 힘들 때에는 언제나 시간을 내어 개별 상담 및 그룹 상담을 진행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나면 학부모님들께서는 문자로, 편지로, 또는 학교에 오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해주셨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아이가 1년 내내 너무 행복해했다고..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들으면 나도 학부모님께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1년 동안 부족한 저를 믿고 아이를 맡겨 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린다고, 나도 이 아이를 맡게 되어 참 행복했노라고 말씀드리며 한 해를 따뜻하게 마무리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 학부모님들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기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나뿐만 아니라 학교에 있는 많은 동료 선생님들이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걸로 봐서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인 듯 싶다.
고학년 담임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3월 학기 초부터 '우리 아이가 감기에 걸렸는데 점심에 약 챙겨 먹게 해 주세요~' 하는 문자가 온다거나(저학년도 점심시간에 충분히 혼자 약을 챙겨 먹을 수 있다.) '우리 애가 생리를 시작했는데 요즘 감정기복이 많이 심하고 짜증을 잘 내요. 그런 면이 있다는 걸 좀 이해해 주시고, 아이가 불편한 건 없는지 잘 살펴봐주세요~'하는 문자도 온다. 이건 내가 어떻게 살펴봐줘야 하는 걸까. 나도 여자지만 선생님이 나에게 오셔서 "너 생리 시작했니? 불편하면 나에게 말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더 불편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실과 시간에 2차 성징에 대한 수업을 하면서 생리는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고, 그 과정 동안 호르몬의 영향으로 쉽게 짜증이 나고 눈물이 날 수 있으니 '지금 나는 호르몬의 영향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거야'라고 이해하고 너무 감정에 깊게 빠지지 말라고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조언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학부모 민원 중에서도 애교 수준이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민원의 방식은 근무 시간이 아닌 시간에 문자나 전화를 해놓고, 거기에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없이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는 거다. 작년에 우리 반에서 질병 결석을 하고 있는 아이의 어머니께서 공휴일 저녁 6시 반이 넘어서 전화를 하셨다. 나는 근무 시간이 아니지만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그 학부모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 애 내일 12시에 조퇴 좀 할게요~."
기가 찼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전화를 하면서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가 생락된 것도 너무 신기한데 남에게 불편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죄송한 마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저 안하무인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에도 저녁에 전화가 오면 아이가 아파서 학부모님이 정신이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고, 문자 답장도 해드렸었는데 이 학부모는 전혀 개선이 되지 않는 걸로 봐서 휴일이든 주말이든 저녁이든 선생님께 연락을 하는 것을 전혀 죄송하게 생각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다. 나는 이제 이 불편함(이라고 쓰고 불쾌함이라고 읽는다.)을 끊고, 학부모에게도 이 상황을 정확히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님, 내일 조퇴하는 건 가능한데요, 저도 퇴근하고 집에 가면 한 아이의 엄마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휴일 저녁에도 전화를 하시니 제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는 제가 받아드렸는데, 앞으로는 근무시간 내에 전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네? 근무시간이요? 선생님 근무 시간이 언젠데요? 저는 지금까지 받으시길래 당연히 되는 줄 알았죠~"
아.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호의가 권리가 되는 순간'이구나.
"어머님, 제 근무시간은 오전 8시 40분부터 4시 40분까지입니다. 그리고 제가 전화를 받아드린 건 제 호의지, 당연한 게 아닙니다. 앞으로는 근무시간에 전화 주세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 후, 나는 나를 반성했다. 그동안 아이와 학부모를 생각한다는 마음으로 나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지 못한 나에 대한 반성을. 그 후, 새벽에 오는 학부모의 문자에는 답장을 하지 않고 있다가 근무시간이 되면 답장을 하고, 근무 시간 이외에 오는 전화는 여간하면 받지 않는다. 그리고 문자를 남긴다.
'내일 학교에서 확인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근무 시간 이외에 연락이 오긴 했으나, 내가 전처럼 받아주지 않으니 그 빈도가 전에 비해 확실히 줄어들었다.
사실 학부모와 교사가 저녁 시간에, 또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연락을 주고받을 일은 없다.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가 누구와 싸웠거나 하는 것들도 당일 오전에 전화나 문자로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 그러나 학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혹은 당장 연락하는 것이 더 편해서 그 불편함을 교사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교사도 사람이고, 퇴근하면 한 가정의 엄마 혹은 아빠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학부와 교사는 좀 더 존중하는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의 권리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렇게 뼈아프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