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학교에서 만난 학부모를 '언니'라 부릅니다.

따뜻하고 신기한 인연

by 오후의 햇살

2014년, 나는 교직생활 4년 차의 열정이 넘치는 교사로 3학년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 반에는 참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많았는데, S도 그러했다.


S는 흰 피부에 큰 눈을 가진 잘생긴 귀공자 타입의 아이였는데,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 옆으로 와서 재잘재잘 수다를 떨거나 재미있는 말과 행동을 해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나는 그런 S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칭찬을 해주고, 애정을 듬뿍 주었다.


그러던 S가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나에게 다가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저.. 이따가 학교 끝나고 교실에 남아서 선생님이랑 얘기하고 가면 안 될까요?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요."


교실에서 항상 밝고 개구진 모습을 보여주었던 S이기에 나는 놀라서 "그럼, 당연히 되지! 이따 교실에서 선생님이랑 둘이 얘기하자." 하고 대답하며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수업이 끝난 후, 둘만 남은 교실에서 S는 평소와 다르게 이야기를 꺼내기를 주저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언제나 네 편이니까 편하게 이야기해도 된다고 다독이는 나의 말에 S는 입을 열어 이야기를 꺼내며 왈칵 눈물을 쏟았다.


"선생님.. 저.. 죽고 싶어요. 집에 있으면 창문을 보면서 밖으로 뛰어내리면 죽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생각지도 못한 3학년 아이의 말에 나는 너무 깜짝 놀라고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이 조그만 아이가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우는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우리 S가 많이 힘들었구나.. 선생님은 그동안 이런 S 마음을 몰랐네.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니.. 선생님이 이제야 알아서 미안해. 이제 선생님이 알았으니까 우리 S가 힘든 일이 뭔지 알아보고 같이 해결해 보자. 너무너무 고생 많았어.."


하고 말하며 아이를 토닥였다. 아이는 한참을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난 뒤, 눈물을 닦고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아이의 이야기로 본 집안 상황은 이러했다.


S의 부모님은 같이 사업을 하시는데 최근에 새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어 너무 바쁘셔서 집에 늦게 들어오시고, 집에 들어오셔도 피곤해서 S의 말을 들어주시거나 신경을 써주시지 못했다. S에게는 누나가 있는데, 누나도 사춘기가 와서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늦게 들어와서 3학년인 S는 학교가 끝나고 어두컴컴한 집에 덩그러니 혼자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이제 막 10살이 된, 어린 S는 이러한 상황이 너무 버겁고, 무섭고, 힘들었다. 당시 임신을 하고 있던 나는 더욱 아이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서 '아무리 일이 바빠도 어떻게 아이가 이렇게 힘들게 혼자 내버려 둘 수 있지?' 하는 생각에 S가 감정을 추스르고 집에 간 뒤, S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씀드렸다. 지금 부모님의 일이 바쁘신 건 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S라고. 지금 이 아이는 가정에서 사랑으로 돌봐주지 않으면 정말 큰 일 날 수도 있다고, 심각하게 생각하고 부디 아이를 챙겨달라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전화를 받고 충격을 받은 S의 부모님께서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아이를 따뜻하게 챙겨주셨고, S는 서서히 마음을 회복하여 학년이 끝날 무렵에는 완전히 괜찮아졌다.





그다음 해부터 나는 출산과 동시에 1년 반 동안 육아휴직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나'는 사라지고 '엄마'만 남았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는데 S의 어머니께서는 나를 잊지 않고 스승의 날이면 감사 문자를 보내주시고, 아기가 잘 크고 있는지 안부도 물어주셨다. 당시 혼자 육아를 도맡아 하면서 점점 '나'를 잃어버리고 있던 나에게 그 연락은 나의 사회적 가치와 존재를 일깨워주는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여전히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카페에서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선생님, 이제와 하는 말인데.. 저 솔직히 그때 너무 속상하고 창피하고 화도 났거든요?(웃음) 그때 선생님이 저를 얼마나 다그쳤는지 아세요? 근데.. 그때 그렇게 안 하셨으면 저는 S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을 거예요. 그래서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어유, 제가 그랬어요? 임신하고 있어서 감정이 앞섰나 봐요. 아이고.. 그래도 우리 S가 너무 잘 크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저도 육아하면서 정말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힘들었던 시기에 어머님께서 따뜻하게 연락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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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S를 만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S는 성인이 되었고 나는 S의 어머니를 '언니'라고 부르며 1년에 몇 번씩은 꼭 안부를 주고받는 인연이 되었다. 이제 언니도 말씀 편하게 하시라고, 내가 아무리 권해도 나보다 10살은 더 많은 언니는 여전히 나에게 깍듯하게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신다.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라며...


주변의 동료들과 친구들도 어떻게 그런 인연이 있을 수 있냐며 깜짝 놀라고 신기해한다. 그만큼 우리는 참 특별하고 귀한 인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