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의 악필 편지
전혀 지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훈련을 받은 상담사들도 자주 지치고 힘이 듭니다. 동료 선생님들은 우스갯소리처럼 심리상담은 10년이 고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울한 소리만 듣다 보니 10년쯤 되면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마련이라고요. 당신이 감당하고 있는 일은 그런 일입니다. 한 사람의 우울을 받아내는 일이지요.
그 우울을 이해하기 힘들 때도 많을 겁니다. 왜 이 사람은 이렇게 흔들리는지요. 당신은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을 시덥잖은 이야기에 왜 이 사람은 마음이 쿵 내려앉는지, 별 일도 아닌 것에 왜 그렇게까지 미안해하는지, 화내는지, 눈물은 왜 그렇게 또 많은지, 기분 안 좋을 때 산책이라도 해보라는 말을 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는지… 또 그 이해 못 할 우울이 왜 그렇게 전염력이 강한지도요.
우울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누구도 대신 아파해줄 수는 없습니다. 저 우울을 나눠 가질 수도 없고, 치료해줄 수도 없습니다. 설령 당신이 치료를 도울 수 있는 전문가더라도 가까운 사람에게 직접 심리치료를 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우울의 파랑을 헤어나올 때까지 지켜보는 일입니다.
많은 경우 우울은 주변 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은 주변 사람들까지 불안하게 만들지요. 그럴 의도가 없으면서도 관계를 흔들고 악화시킵니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 불안의 전염을 견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뛰어든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의 몸부림을 견디지 못하고 함께 물에 빠지고 마는 것처럼요.
그러나 그 우울에 휘말리지 않고 굳건히 그 옆자리를 지켜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도움이 됩니다. 함께 아파할 필요는 없어요. 함께 불안하고 우울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감은 물론 중요합니다. 왜 슬픈지, 얼마나 슬픈지 알아주는 것에는 치유적 힘이 있지요. 그러나 그게 함께 병들고 아파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감기 걸린 사람을 간호하기 위해 내가 감기에 걸릴 필요는 없는 것처럼요.
그런 공감을 상담사들은 내담자의 세계에 함께 머무는 일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로마에는 로마의 법이 있고, 그 사람의 세계에는 그 사람의 법이 있겠지요. 어느 때 이 사람이 화를 내고, 울고, 슬퍼하는지에 대한 법입니다. 그런 내면 세계의 법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평생을 함께 한 가족끼리도 그 내면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은걸요.
하지만 우리는 존중할 수 있지요. 내 경험으로 미루어 타인의 내면 세계를 함부로 판단하는 것보다, 그래서 타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단정하는 것보다 그저 그 자리에서 함께 하며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왜 우울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한들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당신 앞의 사람이 우울하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그걸 안다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 우울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도록 한 걸음 떨어져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는 물 밖에서 구명조끼를 던지고, 놀란 마음을 도닥여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한결같이 돌아보면 눈이 닿을 곳에 머물러 주세요. 수렁을 헤치고 나온 당신의 연인에게 언제든 손을 내밀어 안아줄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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