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삶의 이야기가 작품이 되다!
어릴 적 TV 프로그램에 뽀빠이 이상용씨가 진행하던 군인 위문 예능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가 있었다. 어머니의 실루엣만 보여주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맞다고 생각하는 군인들을 무대에 올라오게 만들었고, 모두가 한결같이 하던 말
“제 어머니가 맞습니다!”
진짜 어머니임에 확신을 갖고 올라온 군인이 있었던 반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내 어머니가 아님을 알면서도 올라왔던 군인들도 있었다. 우정의 무대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머니”의 세 글자는 누구에게든 항상 그리움의 존재였음을 어린 나이에도 느낄 수 있었다.
학창시절, 가끔 학교에서 부모님이 방문하는 날이면 엄마는 교실에 잠시 들러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이 창문 넘어 엄마와 담임선생님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외치는 말
“엄마랑 정말 똑같이 생겼네.”
난 아니라고 부인했었지만, 그때 그 시절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흠짓 놀라곤 한다. 어느새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이 나를 통해 보이는 듯 해서... 딸은 엄마를 닮아가는 것 같다. 생김새부터 살아오는 방식 또한 많은 부분 보고 자랐기에 비슷한 면으로 변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나의 딸이 나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처럼....
몸이 항상 약하셨던 엄마는 자신의 삶이 아닌 가족의 삶을 위해 희생한 분이셨다. 엄마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더 많이 애쓰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약한 몸에서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디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 것인지 온 열정을 다 쏟아내셨다. 모든 상황이 끝나면 며칠 몸저 누우셨지만, 그래도 그것이 엄마에게 자신을 일으키는 힘이셨나보다.
최근에 딸 아이가 정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 상담을 했던 적이 있었다. 문제의 중심에 놓고 보면 엄마로써의 나의 역할이 좀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다.
요즘의 시대에는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온전히 가족, 자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나 또한 나 자신의 삶을 살아냄에 있어, 가족보다는 나 자신에 집중하느라 자녀를 위해 충분한 정서적인 충만함을 전해 주지 못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절한 균형은 언제나 필요하다. 엄마는 그 때에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신 것처럼, 나 또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나 뿐만 아니라 가족을 향한 관심 또한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장녀라는 이유로 개구쟁이였던 동생의 말썽에 엄마는 항상 동생 보다 누나인 날 더 많이 혼내셨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첫째인 내가 잘 하는 모습을 보여야 동생 또한 그 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혼도 많이 났지만, 신뢰 또한 깊으셨기에 내가 하는 건 무조건 믿어주셨다. 하지만, 난 동생처럼 귀찮으리만큼 챙김도 받고 싶었고, 동생에 대한 잔소리가 엄마의 무한한 관심으로 보여져 질투가 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엄마의 입장이 되고 보니 자꾸만 첫째에게 부담감을 쥐어준다. 첫째를 보고 따라하는 둘째 모습을 보면 예전 엄마가 왜 나에게 그렇게 신뢰하면서도 먼저 혼을 냈는지 이해 되는 면도 있다.
첫째인 아들도 어린시절 내가 가지고 있던 서운한 마음을 느끼고 있을 터인데, 자꾸만 이러한 상황들이 반복되어 돌고 도는 것이 어쩌면 우리네 인생인 듯 싶다.
몇 백년 된 마을 수호신으로써 역할을 하고 있는 느티나무를 본 적 있는가?
느티나무는 한 곳에 묵묵히 어떤 시련이 와도 끄떡없이 중심을 잡고 버티어 낸다.
그런데 그러한 느티나무는 겉보기와 다르게 잘 썪는다고 한다.
가지가 부러지거나 장수하늘소 같은 벌레들이 들어가 나무속에 작은 구멍이 생기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이 속이 썩기 시작해서 그 속은 텅 비어 버린다. 썩다가 어느정도 썩는 것이 멈추기 시작하면 비록 속은 썩었을지라도 전혀 흔들림없이 그 무게를 잘 버티어 낸다.
썩어가는 그 순간의 고통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힘들어도 감내해 내는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자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더 내어주고 싶어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과 느티나무는 닮은 면이 있다.
“신은 모든 것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자신의 삶 보다는 어머니의 역할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셨던 우리들의 어머니,
내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면서 비로소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그 동안 많은 사랑을 받으며 지금껏 잘 살아왔으니 이제는 나의 차례인 듯 싶다. 내 어머니에게, 내 자녀에게 아낌없는 나의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