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직장수필 11화

무제 2

설명

by 화상 바오로

Scene 1. 팀원 중 한 명과 업무 관련 내기를 했고, 내가 이겨 기분 좋게 점심에 막걸리 한 잔 했던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물론 내기에 이겼지만 팀장 체면상 밥은 내가 샀다.) 이후 저녁에 둘째 딸내미랑 시원하게 아이스크림 한 스쿱 했던 것이 결정타였을 것이다. 말짱하던 몸이 즉시 이상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이건 경험상 십중팔구 장염이다.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핼쑥해진 몰골로 병원에 갔지만 미열이 있어 진료를 거부당했다. 머릿속은 징처럼 지잉지잉 울리고, 다리의 맥이 풀려 한 걸음 내딛는 것도 애를 써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실제로 코로나에 걸렸을 수도 있으니, 그러니 자칫 민폐를 끼칠 수도 있으니, 죽을힘을 다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코로나 임시 검사소로 걸어갔다. 시간은 오전 9시 반. 아... 그런데 임시 검사소는 드라이브 스루 검사장이었다. 다만 지금은 차들이 거의 없어 업무에 무리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담당 공무원은 반드시 차를 타고 와야만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럼 필요하다면 차 뒤에 줄이라도 설 테니(즉, 인간처럼 행동하지 않고 차처럼 행동할 테니) 검사를 받게 해 달라고 부탁해 봤지만, 돌아온 답은 “룰을 룰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일을 못해요.”라는 짜증 섞인 ‘설명’이었다. 내가 지금 몸이 많이 아파 다른 곳으로 가기 어려우니 사정을 좀 봐줄 수 없겠냐고 하니, “그럼 택시 타고 오세요.”라고 했다.

그렇지, 룰은 룰이지. 서민들에게는. 노골적으로 동양인들을 멸시하는 미국 DMV 공무원들로부터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공자와 맹자의 나라라서, 인을 행하는 것이 룰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잘못이었다. 내 탓이다.

Scene 2. 2시간 뒤. 전화진료를 통해 약국에서 탄 약을 먹고 기절한 것처럼 쓰러져 있는 와중에 부동산 사업을 하는 아는 동생(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대단한 놈이 있다니!)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만 갈래로 찢겨 있는 내 목소리보다 더 거칠었다. 그는 대뜸 “형님, 대장동 때문에 저도 죽게 생겼네요. 하도 갑갑해서 형님께 전화드렸습니다.”라고 했다. “아니, 대장동이랑 너랑 무슨 상관...?” 했더니 그는 “형님,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제가 곧 아파트 분양을 하는데(아, 부럽다...), HUG가 갑자기 분양보증을 안 해주겠다는 거예요.”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나는 갑자기 HUG가 입장을 바꾼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옆 동네 사업체는 용적률 1,300%를 적용했지만, 저는 1,100%를 적용해 고급 아파트를 지었는데... (중략)... HUG가 지금 와서 분양가가 옆 동네 사업체에 비해 높다면서 분양보증을 승인해 줄 수 없겠다는 거예요.”라고 했다. 나는 “아니... 이해가 안 되네. HUG랑 그간 계속 얘기해왔던 거 아냐? 그런데 지금 와서 갑자기 안 해주겠다고 하는 게 무슨 얘기니?”라고 했더니, 그는 “증권사 직원 통해서 들었는데... HUG의 담당 직원이... 아휴, 요즘 대장동 때문에 내부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아서 분양가를 낮춰야만 분양보증을 해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하더라고요"라고 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설계변경이나 후분양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사업주 입장에서 전자는 비용이 더 들고, 후자는 리스크가 커진다. 그는 말미에 힘없는 목소리로 HUG에 아는 직원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미안하지만 없다고 얘기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내부 방침 변화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원하고 있었지만, 느낌상 그건 쉽지 않아 보였다. 내부 분위기란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포식자의 등장에 몸을 사리는 피식자의 행동을 본능 이외의 단어로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내부 분위기’는 규정이나 이사회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승인권자이니 말이다.

그는 애당초 정치적 불가항력(political force majeure) 보험*에 가입했어야 했다. 동생아, 니 탓이다.

* 정치적 불가항력 사태가 발생하여 계약 상대방이 계약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relief event), 프로젝트에 발생하는 피해를 보상해 주는 보험. 이러한 보험을 취급하는 대표적인 기구는 UN 산하 MIGA이다. 다만 MIGA가 커버하는 지역은 대부분 개도국이다. 게다가, '내부 분위기의 변화(change of mood)'도 보험으로 커버받으려면 대단한 사업수완이 필요할 것이다. 하긴 그 정도 사업수완이 있다면 처음부터 보험이 필요없었겠지만 말이다.

Scene 3. 2시간 뒤. 장염 경험이 풍부한 와이프가 마련해 준 포카리스웨트를 마시기 위해 식탁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다 연수업무 담당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아픈데 더 아픈 소식 전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다. 신청한 연수과정에 내가 선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뭐 그럴 수는 있다. 공모과정이었으니까. 그런데 혹시 내가 선정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알려줄 수 있냐고 물으니 그는 ‘나이가 좀 많아서’라고 답했다. 으응? 갑자기 약이 올랐다. 나이가 문제가 될 것이었으면, 애초에 지원 자격에서 나이를 제한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지원 인력 풀을 넓히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벽에 부딪혔다. 연수 담당 부서장에게 물었다. ‘나이’란 부분은 애초에 공모요건에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연수담당 팀장의 설명을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이가 아니고... 애초 연수 공모 목적이 기술인력을 뽑는데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던 거야, 이 친구야. 나는 어... 그런 얘기는 공모내용에서 못 본 것 같은데요?라고 했더니, 그는 두루뭉술하게 적어놓아야 지원자 풀이 많아질 게 아닌가 라고 ‘설명’했다. (이 일이 발생한 다음 날 갑갑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나의 부서장에게 하소연을 하니, 그는 "허허, 들으면 들을수록 신경질 나는 설명이네 그려. 더 이상 안 듣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네."하고 위로해줬다.)

아, 그렇지! 깨달음이 왔다. 베드로가 새벽녘 닭 우는 소리 세 번을 듣고서야 깨달은 것처럼 나는 세 번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나는 들러리를 선 것이다. 그에게 "조직의 인력관리 목표는 분명하게 서술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연수계획과 연수 공모절차는 이를 정확히 반영하여 작성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들의 설명이란 행정편의주의에 다름 아니며, 이런 식으로 직원에게 피해를 주는 업무처리는 시정되어야 하는게 아닙니까?"라고 쏘아주고 싶었으나 포기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게 똑같은 '설명'을 계속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회사 십 수년을 다니고도 뻔히 예상되는 그들의 행태에 대해 대비하지 못한 내 탓이다.


하루 세 개의 '설명'을 듣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설명하는 측의 목적은 설명을 요구하는 이가 설명을 듣고 이의제기를 취소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의제기가 접수되면 피곤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문제 발생의 원인은 설명하는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요구하는 쪽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내 탓이오'를 읊조리며 가슴을 치게 만들거나, '옴' 하는 진언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을 생성시키고, 곧바로 한을 다스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최상진 교수는 한을 '남으로부터 억울한 피해를 당해서,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자기 자신의 처지와 신세에 대해 원망하며 슬퍼하는 감정과 생각'이라고 정의한다. 한과 구분되는 원은 '자신의 억울한 불행에 대한 원인과 책임이 밖의 사람이나 상황에 있는 것으로 지각하면서, 그 대상이나 상황을 원망하는 것'이다. (유형근, '우리는 왜 억울한가') 한은 다분히 동양적인 분노의 원천이고, 원은 서양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적인 (원)한은 대체적으로 화병으로 발전하고, 서양적인 원(한)은 계급투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다시 위 세 개의 장면으로 돌아가서, 내가 그들로부터 듣고 싶었던 것은 (1)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몸이 많이 불편하다고 하시니, 요 앞 차만 빠지면 검사해 드릴게요." (2) "미안합니다. 저도 갑자기 이런 통보를 드려 죄송하지만, 대장동 사태 여파로 인하여 의사결정이 어렵네요. 다시 한번 죄송한 말씀드리겠습니다." (3) "오해가 있었다면 미안하네. 그렇지만 선정과정에 부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 조직의 정책적 결정을 이해해 주면 고맙겠네."였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설명'을 한다. 설명을 한다는 것은 듣지 않겠다는 뜻이다.

나폴레옹이 '정치는 현대의 새로운 숙명'이라고 갈파했듯, 듣지 않는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말했던 것처럼 소명의식이 있는 자가 해야 마땅하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나는 듣지 않겠다는 이들에게 길게 얘기하지 않는다. 애당초 정치적 소명의식이 부족해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기로 선택한 나는, 그래서, 글로 쓴다. 그러나, 말하는 이들보다 듣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라면 아마 나와 같은 일개 금융 노동자가 글을 쓰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러니 전구의 빛이 전류에 대한 저항값이듯, 나의 글은 나의 한에 대한 저항값이다. 그리고 분명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극소수겠지만, 그들은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쓰게 하는 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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