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주한 몽골대사님의 저녁 초청을 받아 직장 상사들과 함께 대사관을 방문했다. 대사관 저녁 초청을 받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니, 만찬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만으로도 훌륭한 글쓰기의 안료가 된다. 그러나 이 글은 대사관에서 나눴던 얘기 또는 먹었던 몽골 전통 음식이나, 주한 몽골대사관만의 독특한 분위기(예컨대, 스피커에서 간간히 말울음소리가 들려왔다)에 대한 글이 아니다. 현재 내가 담당하고 있는 몽골 관련 ODA(Official Development Aid, 공적개발원조) 업무에 대한 글은 더더욱 아니다. 이 글은 내가 어떤 연유로 대사관이 보관하고 있던, 있는 술 없는 술 다 꺼내 마시고(대사관 술 창고를 거덜내고) 집/상사를 인지하되(recognize)/알아보지(know)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심층동인'을 분석한 글이다.
마지막 문장은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하다.
먼저, '집/상사'와 '인지하되/알아보지 못하는'이라는 표현에 등장하는 빗금(/)의 존재 이유이다. 나의 상사의 처가는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 옆 동이다. 그리고 그는 내가 당신 처가의 옆 동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것이 집과 상사가 빗금으로 묶인 까닭이다.
한편, 표준국어사전에 따른 '인지한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실을 인정하여 알다'라는 뜻이고 '알아보다'는 '눈으로 분간하여 보다'라는 것으로, 차이가 있다. 예문을 통하여 이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 보자. K-POP을 좋아하는 외국인에게 BTS 멤버 중 하나의 사진을 보여주면, 그는 사진의 주인공이 BTS 멤버라는 것을 쉽게 인지(recognize)하겠지만 그를 안다(know)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즉, "Do you know him?"과 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는 "Uhh... I can recognize him without difficulty, but I cannot say that I know him." 정도로 답할 것이라는 얘기다. 혹은 다음과 같은 사극의 비극적인 한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집의 하녀와 정을 통한 죄로 매틀에 묶여 매우 맞은 뒤 사랑은 상전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둥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하는 하인 놈에게 "네 놈이 뉘 안전이라고... 반상의 법도의 지엄함을 능멸할 뿐 아니라 주인도 알아보지(know) 못하는 고약한 놈이로구나!"라고 대청마루에 서서 호통을 치는 주인의 모습. 이것이 인지하다와 알아보다가 빗금으로 묶인 까닭이다.
빗금이 활약한 때는 그날 저녁 9시 30분 즈음. 나는 대사관의 융숭한 대접을 받은 이후, 상사의 운전기사가 모는 차까지 얻어 타고 집 앞에 막 내린 상태이다. (나중에 들으니 "으응~ 나 내리기 싫어~"라고 생떼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벌어진 일들은 모두 타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나는 차에서 내린 후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며 상사에게 전화해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부장님, 우리 집 어디예요?" 직장생활보다 월등히 긴 음주 경력을 비추어 볼 때 내가 그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평소 치부해 왔지만, 핸드폰에는 그와 통화한 흔적이 버젓이 남아있었다. 어진 성품의 그는 후배의 망나니 같은 질문에 "어, 자네 집은 5동이야. 살펴가게." 하고 침착하게 응수했다고 했다. 부끄러웠다.
이후 두 발로 걸어 들어왔는지 네 발로 기어 들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집 대문 앞까지는 어떻게 온 모양인데, 비밀번호를 제대로 누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삑삑삑삑, 디리링~"하는 경쾌한 비밀번호 패드 터치 소리 + 도어록 해제 소리가 나야 정상인데, 연속되는 "삑.......삑....... 삑삑삑" 소리를 듣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감지한 와이프가 문을 열어줬다. 게다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마룻바닥에 길게 뻗었다. 툭툭 건드려도 미동도 없었던 아빠를 처음 본 둘째는 아빠 죽은 거 아니냐고 대성통곡을 했다. 물론 경험이 풍부한 첫째는 에휴 하는 입소리를 내며 제 방으로 쏙 들어갔지만. 다음 날 아침 둘째는 내게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윽박질렀다. 부끄러웠다.
그러니... 종합해보면 그날 저녁, 나는 집은 인지하였지만(내 발로 걸어 집 앞까지는 도착하였지만) 집을 알아보지 못했고(내 힘으로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고), 그가 내 상사였음은 인지하였지만(핸드폰의 연락처를 들추어 전화를 걸었지만) 상사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헛소리를 지껄였던 것)이다.
다음, 심층동인이란 단어가 작은따옴표 속에 자리잡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심층동인(les forces fondamentales)’이라는 국제정치 학술용어는 국제정치의 근저에서 작용하는 심원한 영향력들이란 뜻으로, 국제정치학을 강의하셨던 이기택 교수님이 생전 즐겨 사용하시던 표현이다. 검색엔진에 국제정치와 심층동인을 쳐 보면 그가 '심층동인'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당시 중국의 부상에 따른 동아시아 정세를 분석한 글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이래 처음으로 중국의 이붕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데에는 감상적인 입장을 떠나 몇 가지 중요한 기본적인 요건들이 있다... 둘째는 "등소평 이후"의 문제다. 이는 등소평 이후 중국의 정치변동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동아시아의 심층동인의 문제가 된다."(한국경제신문 논평, 1994. 11. 12)
그의 수업을 들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수업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베르사유 체제를 탄생시킨 '심층동인', 민족국가(nation-state)의 개념을 다진 베스트팔렌 조약을 태동한 '심층동인', 그리고 구소련의 해체를 가져온 '심층동인' 등 국제정치의 등뼈와 같은 레짐의 탄생과 변화가 교수님의 주된 관심사였다는 것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물론 이 불초 제자는 그의 강의를 듣기보단 주로 강의실 옆에 자리잡고 있는 울창한 숲 속에서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교 수업에 들어가기 싫은 '심층동인'은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이에 따른 답은 대부분 여자 때문이었다) 하며 낮술과 낮잠으로 소일했지만 말이다. 그만큼 '심층동인'이란 이기택 교수님을 추억하는 핵심적인 단어임에 틀림없다. 그의 별세 후 그의 제자 중 하나인 장동진 교수 또한 추모사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썼으니 말이다:
"... 교수님의 이러한 현실적인 기여는 현대 한국을 움직여 온 '심층동인'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어마어마한 현실적 기여가 현실정치에 직접 몸 담지 않고 학문적 연구를 지속하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연정소식 제4호(속간 1호), 2008. 3월)
이 글에서 나는 '심층동인'이란 단어를 추억에서 소환해 편하게/내 맘대로 쓰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내게 '심층동인'이란 전공과목의 하나인 국제정치론을 넘어 나의 학창 시절 전체를 압축 설명할 수 있는 핵심 단어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나는 당시 정치외교학과 학생들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갈등에 대한 심층동인을 고민할 수 있는 지식을 함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음... 뭐 그랬거나 말거나. 여하튼 이기택 교수님 덕택으로 나는 오늘도 습관처럼 사회적 현상에 대한 '심층동인'을 묻곤 한다. 예컨대, '양국 간 체결하는 조약에 콩글리시가 만개하고 있는 현상의 '심층동인'은 무엇일까?' 또는 '회의를 할 때에는 아젠다를 정하고 토론하는 것이 효과적일 텐데, 그리고 이는 상식인데, 조직관리자씩이나 되는 이들이 아젠다 없이 중구난방으로 발언하여 시간을 낭비하는 심층동인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식이다.
몽골대사관 만찬의 후폭풍이 반감기를 거쳐 잦아든 지금, 나는 그날 저녁 폭음의 심층동인을 묻고 있다. 폭음의 결과로 좀비+시체 코스프레를 하게 된 데 대한 현상적 설명은 몸이 술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따져보고자 하는 것은 왜 몸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술을 많이 마셨냐는 것이다. 즉, 과음의 심층동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추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