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직장수필 14화

인사이동에 관한 중간관리자의 변명

인사는 인사권자의 것입니다

by 화상 바오로

W님,

마땅히 뵙고 말씀드려야 할 사안이지만, 저는 아무래도 글이 편하고 또 글로 쓸 때 단어의 선택에 실수가 적은 편입니다. 하여 글로 말씀드리는 점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저 개인의 인사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조직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그랬습니다. 인사는 인사권자의 것이지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팀장 승진 이후로는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원칙이 변한 건 없었습니다. J 프로젝트를 담당하다 갑자기 조직의 필요에 의해 보직을 박탈당한 적도 있었고, 자연스러운 인사이동 대신 조직의 요청으로 갑작스레 A 프로젝트를 처리하기 위해 현 부서로 발령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조직이라는 막연한 말이 싫었습니다. 구체적인 형체를 보고싶어 잡으려 하면, 물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W님께서 어제 "나를 도와달라"라고 하신 말씀은 명확해서 참 좋았습니다.

아마 6개월 전 자연스러운 인사이동 시점이었다면 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인사는 인사권자의 것이니,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면 그 권리를 행사하십시오"라고만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이는 과거 전무님께도 동일하게 드린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저는 지난 8개월 전에 있었던 비정기적 인사의 결과로 인해 제 인사와 관련하여 평소와 같은 말씀만을 드리는데 저어함이 생겼습니다. 이는 W님께서 우려하시는 바와 크게 다름이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W님께서도 제게 전화를 주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A 업무에 대한 무게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제게 A 업무는 전무님의 한숨이라든지, 국회나 언론의 비난조의 말투,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반기에 있을 감사원 감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둘러싸인 모호한 것입니다. J 프로젝트 구조조정 업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명 어려운 일을 한다고 격려받고 있었는데, 보직을 박탈당했던 까닭을 알 수 없었습니다. 구조조정 그 자체만 보면, 저는 검투사처럼 핵심을 정확하게 가격하여 깔끔하게 뒤처리 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동일한 일이 발생할 때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관련 서적 2권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A 업무의 모호함과 비정기적 인사라는 급박함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채우고 있는 평형수와 같은 것입니다.

A 업무는 지난해 말 긴급하게 사안을 정돈했고, 상반기 중에는 매각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핵심은 금년 하반기에 이루어지는데, 유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차주의 현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어 시의적절한 자산 매각과 차주의 청산절차를 개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당연히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 업무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에 대한 긴급한 인사발령의 사유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구조조정+알파'였다고 생각하는데, 금년 하반기는 이 '알파'가 시험받는 시기일 것입니다. 하여, 이 시기에 저는 저의 인사를 거론할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W님 마음에도 이런 부분이 꺼림칙하게 남아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저는 A 업무와 도움을 요청하신 L 업무의 경중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다만 모든 사안은 흐르는 물처럼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게는 아직 끝내야 할 일이 남아있고, 현재로서는 그 업무의 무게가 크든 작든 잘 마무리하고 떠나는 것이 조직을 위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는 인사권자의 것입니다. 저의 의견은 참조만 하실 뿐이라는 것을 잘 이해합니다.

화상 바오로 드림


스스로 소설가 김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힌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읽은 직후라서 그런지, 직장 다반사를 묘사한 나의 글이 긴장으로 인해 매우 경직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긴장감은 실제로 전화를 받은 후 1시간 가량 내 마음속에서 요동친 복잡한 감정의 흔적이다. 지금처럼 평안한 상태에서는 쓸 수 없는 글이다. 사실, 밥줄에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월급 받고 직장 다니는 사람의 고민이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이겠는가? 저녁 무렵 열이 오르기 시작한 어린 딸을 안고 어찌할 바 모르는 초보 아빠의 황망함 같은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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