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직장수필 16화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은근한 것에 대하여

by 화상 바오로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와이프는 내가 손에 든 ‘82년생 김지영’을 흘끗 보더니 금세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그 책 재미는 없어”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재미는 없었다. 소설책을 집어 들 때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타일의 책이 아니었다. 내가 싫어하는 옴니버스 방식의 구성에, 문체는 르포보다도 건조했다. 작가에겐 당연한 욕심인 화려한 수사의 언어를 포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궁금했다 - 오랫동안 시사교양 작가로 활동한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문체일까, 문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장르의 문제일까. 어쨌든 책의 절반을 넘어가는 시점까지 나는 책이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재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소설의 내용 그 자체가 아니라, 독자로서 재미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뒤 여자로서 와이프가 덧붙인 말이다. “이건 소설이 아니고 사실이야. 내 얘기랑 별반 다르지 않구먼.” 즉, 이 소설은 극적인 재미를 추구하기보다는 사회적 고발을 목적으로 하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저자 또한 소설의 사회고발적 성격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소설의 모든 내용이 공기처럼 익숙한 일상이다 보니, 고발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쇼윈도적 성격 또한 옅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은근한 것에 대한 감수성 부족은 아마도 내가 대학 졸업반이 되어서도 전공과는 무관한 중세 프랑스어 수업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택에 사회적 횡포에 대한 보다 익숙한 형태의 문학적 고발은 에밀 졸라의 ‘J’accuse'(나는 고발한다) 또는 볼테르의 'Candide'(깡디드)와 ‘Traité sur le tolérance'(관용론) 제23장 ‘Prière à Dieu'(신에게 드리는 기도)와 같이 신랄하거나, 풍자적이거나, 폭발적인 것이거나 또는 감성적인 것이다. 이어령은 ‘흙속에 저 바람속에’서 흐릿한 것은 프랑스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나는 그런 프랑스의 화끈함과 멋들어짐이 좋았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한 것은 분명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82년생 김지영’은 심심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와이프의 최후의 서평(“여자로 사는 게 다 그렇지 뭐”)에서도 심심함이 분명히 느껴졌다. 그렇지만 비 오는 날 나물 반찬의 심심한 향이 참기름, 들기름을 타고 대청마루에 퍼지는 것처럼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난 내 마음에는 불현듯 미안한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79년생 여동생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동생에게는 생선을 뼈째 접시에 담아내어 주셨고, 내게는 뼈를 발라 살만 골라 숟가락 위에 얹어주셨다. 물론 동생은 뼈에서 살을 기막히게 발라낼 수 있는 능력의 보유자라서, 개인의 능력에만 맡겨두면 분명 시장실패가 발생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개입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믿지만 말이다. (무협지 표현을 빌면, 어머니는 나를 대할 때에는 손 속에 사정을 두셨지만 이미 강호의 고수로 등장한 동생을 상대할 때엔 내공을 십 할로 끌어올리셨던 것이다)

또한 내가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동생에게는 같은 논리가 적용되지 않았다. 동생의 눈망울에선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과, 부모님에 대한 순종의 마음이 멍울져 흔들리고 있었다.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언젠가 예산이 고향인 대학 여자 동기가 “정말 벗어나고 싶었다”라고 얘기한 때다. 그녀는 지긋지긋한 논두렁을 넘어, 삽교천 넘어 멀리 가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녀가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삽교천과 논두렁이었는지, 동네 신자 다 모여봤자 수십 명에 불과했고 눈 씻고 찾아봐도 멋진 오빠 하나 없었던 시골 성당이었는지, 노래방 옆에 우시장이 있었던 작은 시내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땐 그저 촌구석이 싫은가 보다 싶었다.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살면서 동생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일이 동생의 상경을 적극적으로 찬성한 것이다. 오빠가 이미 서울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 같이 살면 된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어쨌거나 오빠란 존재는 아빠가 부재하면 (엄마가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가장’이 되는 공식이 유효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어쨌거나 그 결과 동생은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과로 진학했고, 원하는 직업을 가졌으며, 원하는 순둥이 스타일 남편과 잘 살고 있다.

이걸로는 변명이 불충분했는지, 여전히 82년생 김지영 씨에 대하여 미안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 속으로 이렇게 항변했다 – 나는 보기 드문 밥하는 남편이다.


우리 집은 맞벌이 가정이기 때문에 나는 매우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한다. 그중 내 전공은 주방 살림인데,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주방 살림이란 단순히 밥하는 것을 넘어선다. 주방 살림이란 식사 준비에는 필연적으로 설거지와 같은 귀찮은 일이 수반된다는 정도를 인식하는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가족, 특히 희한하게도 집밥이 제일 맛있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이 있는 가족의 먹는 일에 대한 총괄기획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개별 식사와 간식 프로젝트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집안일의 핵심 영역이다. 가족의 다른 말이 괜히 '식구'인 것이 아니다. 게다가 주방 살림을 소홀히 할 경우에는 베란다 한 켠에 무심코 놓아두었던 양파 궤짝에서 초파리들이 단체로 짝짓기를 하는 꼴을 목도하거나, 쌀이 떨어진 줄 모르고 있다가 보리밥을 해 먹고 수없이 방귀를 뀌어댈 수 있다. 그러니 김지영 씨, 퇴근 후 귀가하면 부엌데기 삶을 사는 나를 좀 용서해 주시오.

이런 나에 대하여 동료들은 “이야~ 화상 팀장은 이 시대의 진정한 페미니스트야”라고 한다.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러한 농담이 불편하다. (물론 예전에는 신세대 남편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 뿌듯해하기도 했다) 페미니즘이 뭔지 몰라서도 그렇지만, 와이프가 아예 요리를 안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발전산업에 있어 나는 기저발전, 와이프는 첨두발전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어 와이프도 엄연한 중앙급전 지시를 받는(아이들이 배고프면 떼쓰는 대상이 되는) 발전기(밥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사노동 분담을 공적으로 하여 페미니스트 작위를 받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더욱이 어두컴컴한 골방 담배연기를 따라 피어오르는 사상이나 이념적 소재로서의 페미니즘은 내 체질이 아니다. 나는 세탁기를 발명한 이와 같은 이들이 많아지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큰 문제는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Paul Kalanithi처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편을 선호한다: "You can't ever reach perfection, but you can believe in an asymptote toward which you are ceaselessly striving."(When Breath Becomes Air)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두 딸의 아빠로서, 나의 딸이 나와 같은 정도로 사회생활에 있어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페미니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나는 페미니스트일 것이다. 얼마 전에 가졌던 팀 회식에서 한 여성 팀원은 다음 생엔 남자로 태어나 안전에 신경 쓰지 않고 혼자 멀리 여행을 가보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이 말에 동의하는 이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아직도 떨어지는 낙화암의 꽃을 떠올리며 검을 부여잡는 계백의 마음에 닿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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