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직장수필 18화

달려라, 아비/김애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직후의 독서

by 화상 바오로

첫째 날은 속이 메슥거리고 술에 취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주사를 맞은 어깨 주위로 견딜만한 욱신거림이 있을 뿐이었다. 밥 해 먹고, 청소하고, 샤워하는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괜찮냐고 카톡 연락을 해 온 동료에게 이 정도면 페어웨이에 안착한 정도라고 답했다. 평생 직장인인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표현은 '좀 무리는 되지만, 업무는 볼 수 있는 정도'의 괴로움이었다.

문제는 둘째 날이었다. 메슥거림은 사라졌고 술 취한 느낌도 옅어졌지만, 대신 감기몸살 증상이 찾아왔다. 우선, 온몸의 힘이 빠졌다. 사지가 끈 떨어진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축 처졌다. (바닥에 닿는 몸의 면적이 넓어졌다.) 그리고 어깨, 무릎, 허리 등 평소 불편한 곳부터 차례로 아파왔다. 은근히 기분 나쁜 정도의 두통도 찾아왔다. 그러나 체온은 정상이었다. 익숙한데 낯선 괴로움이었다. 이 정도 컨디션이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침대에 드러누워야 하는데,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지점과는 아직 약간의 거리가 남아있었다. 대신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걸쳤다. 몸이 느끼는 불편함은 점심때를 조금 지난 시점에 정점을 찍었다. 다시 한번 직장인의 표현을 쓴다면 오전에는 머리를 싸매고 업무를 볼 수 있을 정도였으나, 오후에는 어쩔 수 없이 '저어 부장님, 아무래도 휴가를 좀 써야 하겠습니다. 몸이 너무 안 좋네요'라고 할 수밖에 없는 컨디션이 되었다. 밥 해 먹고, 청소하고, 샤워하는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겼다. 타이레놀 한 알을 삼켰다.

그러나 모든 부정적인 사태에는 긍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마침 나보다 2주 전 백신 접종을 완료한 와이프는 그 느낌 잘 안다는 눈길로 나를 집안일에서 자유롭게 해 줬기 때문이다. 잠시 딴 얘기. '집안일에서 자유롭게 되었다'를 금융용어로 바꿔 쓰면 '집안일을 해야 하는 의무(obligation)를 면제받았다(waived)'가 된다. 나는 곧잘 농담 삼아 팀원들에게 '프로젝트 회사에게 waive 해줄 수 없는 사안은 스스로에게도 허용하지 말라'라고 얘기한다. PF의 생활화라는 훈육 명분이다. 구체적으로 이런 방식이다. "팀장님, 프로젝트 회사가 사내대출 한도를 늘리고 싶다고 연락 왔는데요... 이거 말이 되나요?" "그래, 말이 안 되지... 그런데 자네는 왜 우리 회사 사내대출 한도 늘리는 데는 쌍수 들고 환영했나?" 나는 나아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불문율을 상기시키며 친절하게도 무료 인생 상담을 제안하지만, 팀원들은 시차를 두며 개망초 같은 어색한 미소를 하나씩 피워낸다. 주일 교회에서 들을 설교를 당겨 듣는다고 해서 교회에 갈 의무(obligation)를 면제받는(waived)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잡소리에 브레이크를 걸 타이밍이다.

나는 대낮부터 소파에 드러누워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마침 더블헤더가 있는 날이다.) 왜냐하면 아픈 직장인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나의 법정 대리인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둘째인 이반이다.) 한동희가 살아나면서 롯데가 올해 최초로 시즌 스윕을 달성했다. 그것도 리그 1위인 KT를 상대로 말이다. 롯데는 항상 뒷심이 딸리고 어이없는 실책으로 손쉽게 점수를 내준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므로(Youtube에서 '야, 이 계란빵 진짜 달다'를 검색해 보라.), 며칠 전 서튼 감독이 프랑코를 불펜으로 내린 전략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현대 야구는 불펜 싸움이지, 암. 나는 간만에 제 몫을 해 낸 젊은 한동희의 득의양양한 뻐드렁니 웃음이 좋고, 말년 병장같은 느낌의 이대호가 내야 안타를 치고 아슬아슬하게 1루 세이프되면서 짓는 쑥스러운 웃음도 좋다. 선두타자를 출루시켰지만 안정적인 투구로 9회를 마감하고 시즌 30 세이브를 달성한 김원중의 상기된(그리고 잘생긴) 얼굴도 보기 좋다. 1-2점 리드하고 있으면 오히려 불안했던 마음은 이제 구승민-최용준-김원중으로 이어지는 트리오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되었다. 10월이니 이미 가을야구를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진짜 가을야구를 향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기분은 좋아졌지만 아직 소파에서 일어날 정도의 컨디션을 회복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책을 집어 들었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 와이프의 추천작이다. 머리가 지끈거렸기 때문에 잘 읽히는 책이어야 했다. 해서 우선 작가의 나이부터 살폈다. 1980년생이다. 같은 학교를 다녔다면 수업시간에 만났을 수도 있는 나이다. 다행이다 - 정서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게 많겠지. 게다가 그녀는 95년,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상경투쟁에서 전경에게 맞아 머리가 깨진(그리고 청테이프를 붕대처럼 사용한) 전남대생이나 조선대생을 학교 정문에서 직접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96년, 학내에 헬기가 날아들었던 제7차 8.15 범민족대회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제대 후 만났을 법한, 선배보다 열심히 공부하던(나는 이를 세기말적 현상이라고 느꼈는데, 이게 다 IMF 때문이다.) 후배쯤 되는 나이다. 그녀와 나는 같은 세대로 묶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1996년을 겪은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인생관 사이에는 단층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1996년의 경험은 우리 사회의 거대담론에 대하여 얼마나 진지해질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 진지해지거나 그렇지 않은 반응으로 피아 구분을 쉽게 갈무리해 줄 수 있는, 투과성 낮은 막이다. 1996년의 사태는 대학생으로서 내가 느꼈던 한 시대의 붕괴였다. (1997년은 군대에서 보냈다. 비유하자면 쓰나미가 덮쳤지만 나는 수중 30m 지점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다행이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하여 집어 든 책에서 어쩔 수 없는 불쾌감을 동반하는, 삼키지 못하고 결국 토하고 만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봉중근의 '야구공 실밥 터지는 소리'를 읽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집어 든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끔씩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을 잊지 않으며 책장을 넘겼다. 번역하면 '나 아직도 많이 아프니, 와이프야, 점심에 이어 저녁도 좀 지어줄래? 나는 책 읽으면서 계속 요양할게'이다.

단편의 주인공들은 아버지 부재의 부정적인 경험을 아버지를 시원하게 유목시키는 방식으로,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길을 잃었다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그러니까 주객전도 방식을 통해(이 책의 해설자는 이중부정 방식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나는 이러한 해설에 동의하기 어렵다. 부정이 여러 번 이루어지긴 했지만 다차원적 벡터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선형적인 이중부정이라고 하기는 좀 곤란한 것이 아닌가 해서이다.) 아버지를 긍정한다. 잘못하면 정신승리로 읽힐 수도 있는 방식이다. 이러한 정신승리를 정신승리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 것은 다름 아닌 문학적 상상력이다. 나를 버린 아버지는 튼실한 하반신으로 내가 알 수 없는 세계 곳곳을 달리고 있거나 폭죽처럼 방출되는 우주적 에너지로 밤하늘을 수놓는 존재이다. 원시적 생명력의 찬미로 읽히기도 했고, 또, 잘못 읽으면 남성 우월론자의 글로 읽히기도 했다. '아비'란 단어도 내겐 아버지로 읽히지 않았다. 음운론적으로 유사하다는 것 때문에 집요정 '도비', 즉 해리포터에 의해 자유로워진 도비를 상기시켰다. Dobby is free! Abbie(Daddy) is also free! 아비는 자유로워진 도비와 마찬가지로 천지를 제 맘대로 유랑하고 다닐 것이며, 그가 머무는 곳마다 민들레 홀씨와 같은 생명을 피워 낼 것이다.

사실 작가는 아버지를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았고, 환유를 통해 심플하게 표현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를 긍정한 자신을 긍정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러브레터의 히로코처럼, 설산이 되어버린 이츠키에게 '오겡끼데스까'라고 물었을 뿐 아니라 '와따시와 겡끼데스'로 답까지 하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불과 20대의 나이에? 나는 그녀가 성숙한 것일까, 아니면 문학이 성숙한 것일까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면 여성이란 그냥 성숙한 존재인 것일까?

그러나 아버지의 부재를 넘어 이제 성인으로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나이가 된 주인공들의 자취방을 둘러보면서 나는 목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반지하의 자취방이든, 옥탑방의 자취방이든, 등하굣길/출퇴근길에 일상적으로 마트를 들러야 하는 자취방이든 자취방에는 젊은 가난의 냄새가 배어있다. 그 냄새는 매일 아침 자취방 앞에서 마주치는 토사물(쾌활한 이들은 김치전이라고 표현했지만)이 풍기는 냄새와 같이 시큼하다. 나의 가난은 신경숙의 소설에서 나오는 여공의 가난과는 질감을 달리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난은 가난이다. 그러므로 가난은 문학이 피어나는 슬픈 이데올로기이다.

나는 자취방을 마련할 여유는 없어 두 명이 함께 쓰는 하숙방을 구했다. 그리고 주인공이 마트에서 물과, 화장지와 반찬거리, 그리고 여성용품을 샀듯 나는 물과 소주와 맥주, 그리고 값싼 안주를 샀다. 이것들이야말로 매일 빚어지는 시큼한 인생의 원재료들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하숙방은 꿈을 꾸게 해 준 공간이기도 했다. 그녀는 이제는 내가 완전히 잊어버린 젊은 날의 시적인 꿈을 종이 물고기로 되살려놓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벽을 꽉 채운 포스트잇은 프리즌 브레이크에 등장하는 마이클의 시크한 시카고의 고층 아파트였는데. 성공한 공학 전문가의 프라이빗한 공간이었는데.

"... 그는 그 방 전체가 하나의 종이비늘이 달린 물고기가 되어 부드럽게 세상을 헤엄쳐 다니는 상상을 했다. 마치 자신이 물고기 지느러미 옆에 붙어있는 것 같았고, 반대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도 느꼈다. 대체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바닥에 가만히 선 자신의 몸이 저절로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모든 것이 아주 생생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챠르르 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다시 차르르르 하는 기척이 들렸다. 방바닥을 내려다보니 여기저기 모래가 흩어져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방을 쓸어보았다. 진짜 바닷모래였다.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끔뻑였다. 수천장이 넘는 비늘 사이에서 모래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늘은 천천히 부드럽게 너풀거리며 그의 머리칼을 휘말리게 했다."('종이물고기' 중에서)

모래가 흘러내리는 지점에서 나는 물을 생각했다.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 벽지에 울긋불긋한 곰팡이 꽃을 피우고 벽지를 퉁퉁 부어오르게 만드는 물.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닥에서 차오르는 물. 물이 하숙방에 차오를 때 나는 메콩강을 꿈꿨다. 그곳은 메기와 사과를 교환할 수 있는 곳이었으며, 방향을 잘못 들어도 노를 저어 손쉽게 돌아나올 수 있는 곳이었다. 수위가 높아져 고립된 방과 방은 강물이 되어 서로 연결되었고, 나는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메콩강의 자유를 느꼈다.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의, 이전까지 대면 대면하게 인사나 나누던 옆 방 누나랑 새벽까지 소주를 마셨다. (마지막 안주는 알탕으로 기억한다.) 소주병에도 물이 차올랐는지 새벽까지 마시고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아침, 처음으로 밥 먹여주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집 정리하고, 대충 씻고, 스타크래프트 때문에 1학년 때 F를 받은 경제학 원론 교과서를 챙겨 들고 도서관을 향했다. 초록색 표지의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은 마치 금융업으로 유서 깊은 프랑스 백작 가문의 휘장에서나 볼 수 있는 교차하는 두 자루의 검으로 보였다. 돈 많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로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은행원이 되었다.

은행원이 된 지점에서 나는 사라진 것들을 생각했다. 하숙집도 사라졌고, 메콩강과 메콩강에 사는 메기도 사라졌다. 같이 술을 마셔주던 누나도 사라졌다. 그런데, 오늘 그녀가 종이물고기를 우리 집 어항에 슬쩍 풀어놓았다.

와이프가 좀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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