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직장수필 15화

퇴임사 해설

살며시 떠난 이들을 위하여

by 화상 바오로

선배는 다음과 같은 카뮈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퇴임사를 남기고 떠났다. “빗속에서 담배를 나눠 피울 때 우리는 동지애를 느낀다.” 나는 담배를 끊은 지 좀 되었기 때문에 그의 동지가 될 자격이 없는 자인가 잠시 고민했으나, 다행히도 그는 나와 같은 이를 배려하여 덧붙였다. “선배들의 수많은 편지가 휴지통에 버려졌”으나, “... 만약 제 편지를 끝까지 읽으신다면, 카뮈의 말처럼 우리는 동지가 되겠지요.” 이건 간접흡연도 흡연으로 취급해 주겠다는 얘기다. 그는 글쓰기와 흡연 모두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삶을 깊이 빨아들였다가 허공에 내뿜는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내뿜는 글은 연기와도 같아 어디로 흩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그리고 날숨의 꼬리가 입술을 더 이상 자극하지 못할 즈음 또다시 빨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빨아들인 연기는 폐에서 직조되어 언어로 토출된다. (이쯤 쓰니 나 또한 한 때 골초였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언어의 바다에서 빛처럼 잘게 반짝이던 단어들은 낚싯배에 올려진 갈치의 비늘처럼 곧 퇴색된다.


선배는 퇴임사를 쓰는 대신 퇴임식장에서 다리 꼬고 앉아 담배나 꼬나물었어야 하는데.

이후 이어지는 글의 내용은 책 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무협지와 홍콩영화를 좋아했던 선배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소소한 일화, 소소한 변명, 그리고 퇴직 후 해보려는 소소한 일거리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의 글은 조직의 임원으로서 강제된 무거움과, 무거움을 본능처럼 거부하는 그의 가벼움이 버무려져 닭강정과 같은 맛이 났다. 닭강정의 맛을 어색해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간장과 고추장도 함께 내놓았다.

어쨌거나 그의 글은 맛있었다. 그가 등기임원이 되었다면 아마도 그의 글은 그가 평소 존경하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퇴임사와 비슷했을 것이다. 반대로 그가 임원이 아닌 평직원으로 직장생활을 마무리했다면 그의 글은 달고나 같은 맛이 났을 것이다. 그는 정통 후라이드 치킨을 내놓는 치킨집 사장이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고, 평생 튀겨온 치킨의 자존심 때문에 달고나를 파는 좌판에는 앉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닭강정을 만들어 팔았는데, 잘 팔렸다. 그의 퇴임 후 몇몇 직원들을 만나 물어보았더니, 간만에 재밌는 퇴임사 읽었다고 이구동성이었다.

그러나 내가 오늘 쓰려고 하는 글을 그의 퇴임사에 대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의 독특함이 아니라 그가 아닌 이들의 심심함에 대해 쓰려한다. 나는 그가 아닌 이들이 남긴 퇴임사의 prototype을 재구성해, 마치 정철의 사미인곡을 해설한 수험용 고교 참고서와 같은 글을 쓰려한다. 선배의 글은 꽤 오래 남겠지만, 선배가 아닌 이들의 퇴임사는 물기 없는 11월 낙엽처럼 윈도우 쓰레기통으로 바스락거리며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사라졌고, 앞으로 사라질 많은 평범한 이들에 대한 글이다.

내가 재구성한 우리 회사 퇴임사의 prototype은 아래와 같다.

사랑하는 OO 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지난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정든 둥지를 떠납니다. 회자정리라는 말이 있지만, 막상 떠날 시간이 실제로 도래하니 떨리고 두렵습니다.

1988년 A부서에 신입직원으로 첫 발을 내디딘 후 B부서, C부서, 그리고 D부서에서 보낸 시간들이 지금 이 순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특히 E국 정부와의 막후 협상을 위하여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야간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순간, 낯선 정글의 넝쿨보다 혼란스러운 좌절의 순간에 기적처럼 찾아온 협상 타결의 소식에 동료를 얼싸안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퇴임하는 오늘날까지 대과없이 맡은 바 임무를 마치고 떠날 수 있는 것은 따뜻한 선배님들의 배려와 부족한 저를 묵묵히 따라준 후배님들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는 세계 정치경제의 격랑 속에서, 그리고 변하는 금융환경에서 시장을 뒷받침하고 때로는 견인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또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묵묵히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저 또한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었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자랑이자 자부심입니다.

코로나 상황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수많은 위기를 맞겠지만, CEO님을 중심으로 임직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친다면 어떠한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DNA인 것입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따뜻한 봄날, OO 가족 모두 건강하고 소망하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길 빕니다.”

퇴임사의 기본 골격은 「사랑고백-파노라마-조직사랑-은근뿌듯-잘하세요-이젠안녕」이다. 물론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 골격은 우리 회사만의 고유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정년퇴임을 맞이하는 누군들 이와 다른 마음가짐일 수 있을까. 카뮈를 인용한 선배의 퇴임사 또한 캐논(cannon)에 대한 인벤션(invention)이지, 푸가(fuga)의 영역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 꽤나 심한 변주가 돋보였지만 그의 글은 여전히 강력한 캐논의 중력장에 갇혀있다. 임원이라는 체면을 벗어버리고 담배나 꼬나물었다면 푸가를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인데.

퇴임사 해설이라는 본질적인 과업에서 살짝 벗어날 뻔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밑줄 친 부분에 대한 해설을 해 보도록 하자.

사랑하는: 형용사는 명사를 수식하지만(거들뿐이지만), 이 문장에서는 형용사가 명사를 지목한다. “사랑하면” 다음에 나올 수 있는 단어는 단 하나뿐이다 - “OO 가족”. 그 외 대안이 있을 수 없다. 아마도 그 또한 울림이 있는 단어를 선택하고 싶었을 것이나, 퇴임을 앞둔 그의 벅찬 마음은 사랑 이외의 단어는 충분치 못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아, 그러고 보니 “OO 가족”이란 말은 얼마나 사랑스러운 것인가! 나비가 꽃에 포개지듯 두 단어는 서로에게 깃든다. 첫 단어는 첫 문장을 결정짓고, 첫 문장은 첫 문단을, 첫 문단은 전체 글을 호령한다. 즉, 이 글을 사랑고백이 될 수밖에 없다.

OO 가족 : 우리 회사의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용어이다. 이 단어는 마지막 문장에서도 반복된다. 잘 살펴보면 글의 중간 지점에도 가족지향적 단어가 숨어있다. “DNA”가 그것인데, 이 DNA의 특징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우성 DNA는 선배에서 후배로 전달되어야만 한다. 최근 조직에 팽배해있는 냉소주의에 대한 일갈임을 알 수 있다. 조직이 게젤샤프트(Geselleschaft)로 변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족보 타령하느냐는 탄식이 나올 수도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가령 심수봉 노래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감수해야 할 비난(성적 이기심에 가득 찬 남성주의자 추물)과 비슷한 면이 있다. 심수봉의 노래를 듣노라면 여성으로서의 결핍의 애절함에 의해 남성으로서의 자신의 결핍을 깨닫게 되어 그녀의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것뿐인데 말이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 그러므로 이는 장엄한 선언이다 - 후배야, 설령 네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노라. (다만, 나는 이제 집을 나가야 하는 입장이니, 집이 있는 니가 가끔씩 밥 좀 사주면 고맙겠다.)

지난 30년 : 철밥통의 제1차 성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직장인으로서의 그의 정체성을 결정짓는다. 이것은 주어진 것이다. 철밥통으로서의 2차 성징은 복지부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기술을 마스터하면 그는 어미 오리를 떠나 홀로 땅에 배를 붙이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가끔씩 그는 큰 날갯짓으로 저 높이 날아오를 때가 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떨쳐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파고드는 저 낯선 넝쿨의 끈질김을 끊어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보통 윗선에서 “지금까지 뭐하고 자빠졌어?”하는 힐난과 함께 펼쳐진다. 분명 먼저 자빠졌던 이는 내가 아니라 거래 상대방인 E국 공무원이었고, 그가 마침 옆자리가 비어있다면서 친절하게도 자신의 담요를 빌려준 것에 응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나 나라의 녹을 먹는 이로서 어찌 궁색한 변명으로 자리를 보전하려 한단 말인가? (할많하않) E국 공무원 얼굴이라도 보고 오라는 호통에 다음 날 새벽 비행기를 잡아 타고 열대 삼림에 착륙했다. 이후 안전벨트도 없는 사륜구동 Jeep을 타고 수십 킬로미터의 로데오를 펼친 끝에 (아... 엄마, 나 토할 것 같애. 엊저녁 먹은 햄버거 때문에 탈났나봐) 만난 E국 공무원은 나를 보며 연신 인샬라를 외친다. 니가 이곳으로 올 걸 신이 알고 있었나 봐, 인샬라. 마침 어제 우리 정부가 계약을 체결하기로 최종 결정했거든, 인샬라! 인샬라! 아아, 나 또한 인샬라, 그럼 계약서 좀 보여줄 수 있겠니? 물론이지 마이 프렌드. 헤이, 그런데 이거... 서명일이 지난달로 되어있는데? 선자여, 뭣이 중헌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너와 내가 만났다는 것이네, 나무아미타불. 이런 XXX가 있나...

회자정리 : 안타깝게도 퇴임사의 문학성을 크게 훼손하는 단어이다. 대한민국 상류사회의 연설문에는 사자성어가 반드시 요구된다. 그러나 그만큼 잘 골라야 한다. Cliché 소리를 들을 만큼 쉬워서도 안 되며(예컨대, 화이부동), 도대체 이게 뭔 소리야 할 만큼 어려워서도 안 된다(예컨대, 당동벌이). 청자들로 하여금 그 뜻을 어림짐작할 수 있게끔 하면서도 끝끝내 완벽한 뜻풀이에는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어야 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당시 재정경제부 1차관)의 퇴임사에 나오는 사자성어는 '엽공호룡'이다. ‘엽공의 용 사랑’이란 뜻이다. 엽공은 온 집안을 용 그림으로 꾸밀 만큼 용을 좋아한 자칭 최고의 용 전문가였지만, 실제로 하늘에서 용이 내려오자 자신이 생각했던 용의 모습과 너무 달라 이를 보고 기절해 버린다. 이 사자성어는 무릇 행정가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책상물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고명한 뜻을 담고 있다. 여튼 이처럼 적절한 사자성어를 고르는 일은 콩고 강바닥에서 사금을 캐는 것만큼 고된 작업이기 때문에, 정계와 관가의 책꽂이에는 반드시 사자성어집, 유사어·반대어 사전, 그리고 속담사전이 꽂혀있다. ‘회자정리’란 그러한 의미에서 안타까운 선택이며, 그의 업무가 글 쓰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다못해 무림용어사전(예컨대, 침어낙안)이나 38계(예컨대, 주위상계)를 참조했더라면 B급이라는 평가를 받을지언정 퇴임사 문학의 독보적인 존재로 남을 수도 있었을 텐데.

‘파노라마’라는 단어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브라질 주유소 강도 사건(옆구리에 총을 느꼈어!), 남아공 자동차 납치 사건(이번엔 총을 내 눈으로 봤어!), 대한민국 국회 인간능멸 사건(술 사주고 뺨 맞아봤니?) 모두 그가 직접 경험한 사건은 아니다. 이는 구전으로 전수되는 집단적 기억이 소폭을 돌리는 과정에서 개인화된 미메시스일 뿐이다.

대과없이 : 스테인리스 철밥통은 크롬/니켈 함량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대과없이’라는 말은 요컨대 나는 SUS304 등급 정도는 된다는 얘기다. 즉, 식기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대과라는 말의 정의가 없는 까닭에, 이는 회사일로 중징계를 받은 일이 없다는 정도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수없이 저질렀을 소과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모름지기 철밥통의 윤리란 자신의 순도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식기의 본분, 즉 밥을 받드는데 소홀함이 없는지 늘 살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찌 밥이 식었느냐는 꾸중을 듣게 되거든 밥보로 스스로를 뜨겁게 감싸지 못했음을 반성해야지, 식은 밥 쳐드셔도 안 죽거든요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과없이’는 분명 클라이맥스가 존재하지 않는 그의 직장 생활의 클라이맥스이다. 공공기관 직장생활의 클라이맥스가 반드시 뾰족할 필요는 없다. 뾰족한 삶을 추구하다 대과를 저지른 후, 조직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다는 비난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은둔자의 삶을 사는 선배들도 꽤 있다. 그의 클라이맥스는 광활한 세석평전이다. 그는 대과없이 졸업한 무리에 섞여 낙엽들과 함께 빗속에서, 추억으로 젖어가고 싶을 따름이다.

선배님/후배님 & 임직원 : OO 가족의 다른 표현이다. 가족에는 가장이 있기 마련인데, “CEO님을 중심으로”라는 말로 분명한 서열관계를 드러냈으며,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친다면”이라는 표현으로 동심원의 중심이 원심력이 아닌 구심력이 작용하는 지점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현실은...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김성모)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는 사정은 이해해 주기 바란다.

대한민국 경제발전 :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이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이며, 가슴 벅찬 영광이다.

그는 첫 해외출장에서 런던의 비싼 물가에 주눅이 들어 저녁 늦은 시간 혼자 맥도널드를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어느새 이제는 런던 한복판 레스토랑에서 후배들에게 스테이크를 쏠 수 있는 멋진 선배가 된 것이다. 대한민국 식당물가 만세! 밥상물가 만세! 난 앞으로 런던에서만 스테이크 먹을거야! 대한민국 경제발전 만세, 만세, 만만세! 그는 세계 금융 중심지에서 스테이크를 썰다 분출하는 아드레날린을 참지 못하고 대한민국 경제발전 만세를 만방에 외친 공로로 기획재정부 장관상을 받았다. (포상내역: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 이 곳은 백여 년 전 대한제국 황제가 파견한 주영 공사 서리인 이한응이 주권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러워 자결한 곳이다.


사실 대부분의 직장인의 퇴임사가 그렇듯, 우리 회사 퇴직자들의 퇴임사 또한 별도 해설이 필요할 만큼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재미없는 퇴임사를 더 자주 보고싶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분명 과거에는 대부분의 선배들이 퇴임사를 남기고 떠났다. 그러나 요즘 분위기는 좀 다르다. 퇴임사를 남기는 이들은 둘 중 하나의 부류에 속한다 - 임원이거나, 임원이 되진 못했지만 뒤가 잘 풀린 선배들이다. 이 두 부류에 속하지 못한 선배들은 퇴임사를 남기지도 않고 (물론 퇴임식도 없다) 조용히 떠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들을 종합해보면 아무래도 직장에서 명예롭게 퇴진하는 것이 예전보다 어려워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공무원 직급체계를 반영한 과거 5직급 체계에서는, 1급으로 퇴직하면 나름 명예로운 퇴직으로 인정받았다. ('1급은 아무나 하나?'라는 세간의 인식이 명예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여 년 전 느닷없이 분 바람은 직급체계를 3단계로 간소화했는데, 그때부터 우리 회사의 직급 체계는 간소화 취지와는 정 반대로 더욱 세분화되었다. 특히 1급은 사실상 1-5급(갓 1급 승진)부터 1-1급(등기임원 직전)까지 5단계로 분화되었다. (다행히도 아랫 직급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게다가 성장이 정체된 이후 이제는 1-4급을 넘겨 퇴직하기도 힘들게 되었다. 명예가 사라진 것이다.

명예퇴직도 쉬운 일이 아니다. 명예에 버금가는 금전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명예퇴직은 영어로 early/voluntary retirement인데, 나는 early나 voluntary가 어떤 과정을 거쳐 명예로 번역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체면을 중요하시는 유교 문화의 잔재인가. 그렇지만 볼장 다 본 것 같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체면은 무슨 체면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설마 돈이 명예라는 걸 끝내 외면하고 싶단 말인가. 사실 돈을 명예로 인정하지 않는 곳은 신용이 없는 곳이며, 자신의 미래도 더 이상 믿지 않는 곳이다. (‘돈의 지혜’, 파스칼 브뤼크네르) 조선 시대에도 주머니에서 잔돈푼 짤랑대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양반은 양반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돈 때문에 명예퇴직을 선택하지 못하는 선배들은 명예가 없는 선배들이 된다.

명예가 없는 선배들이 어떻게 퇴임사를 남길 수 있을까? 재미가 없는 퇴임사가 사라진 공간에는, 명예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히려 불명예의 대명사격인 이들이 당당하게 썩은 냄새를 풍긴다. 아, 나는 퇴임사와 관련해서만은 라떼가 그립다. '지난 30년간 대과없이' 직장생활 무사히 마친 선배들의 심심한 퇴임사를 읽다가 나 또한 때가 되면 심심한 퇴임사를 남기고 떠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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