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들에서 흰 꽃이 나온 이유
천우신조(天佑神助)란 ‘하늘이 돕고 신이 도왔다’는 뜻으로, 일반적으로는 ‘위기 상황을 간신히 모면할 때’ 쓰나 넓은 범주로만 보면 ‘성사되기 어려운 일이 성사된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성어이다. 오늘은 붉은 꽃을 가진 완두콩끼리 교배했더니 별안간 하얀색 꽃을 가진 완두콩이 나온 이상한 일을 설명하며 천우신조를 익혀보고자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00년대 오스트리아의 성직자였던 멘델의 실험을 이해해야 한다.
중세시대부터 사제는 생계노동에서 벗어나 예배 일 외에는 여가 시간이 많았으며 고등교육을 받아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즐겼다. 연구도 그중 하나였다. 유럽의 맥주와 와인 중 다수는 중세 수도원에서 만들어졌으며, 성당에서 일하던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했고, 다윈은 시골 사제로 있던 시절 진화론을 정립했다. 멘델은 널널한 시간을 활용해 완두콩의 유전을 알아보는 실험에 착수했다.
먼저 그는 한 그루의 식물 안에서 자신의 꽃가루를 이용해 혼자 짝을 짓는 자가수분을 완두콩을 가지고 수차례 반복한 끝에, 특정 유전형질이 고정된 일종의 순종 완두콩을 얻었다. 그는 경험을 바탕으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7가지 기준을 정했다.
이중 꽃의 색만 보고 말해보자. 당시 상식으로는 부모의 유전형질이 자식에게 섞여 나타난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붉은 꽃 완두콩과 하얀 꽃 완두콩을 교배하면 2세대 완두콩은 둘의 중간색인 분홍색이 나왔어야 했다. 그렇지만 정작 나온 꽃은 붉은색이었다.
붉은 꽃 완두콩은 RR인자, 하얀 꽃 완두콩은 ww인자를 가지고 있다고 쓰자. 여기서 대문자로 적은 것은 우성, 소문자로 적은 것은 열성이다. 그렇다면 이 둘의 교배결과 나온 2세대 완두콩은 모두 Rw 인자를 가진다. 그런데 R인자가 w인자보다 우성이기 때문에 R인자만 발현해 붉은색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멘델이 발견한 유전의 3법칙 중 ‘우열의 법칙’이다. 우성 형질과 열성 형질이란 대립되는 속성의 형질끼리 교배할 경우, 두 형질이 섞이지 않고 우성만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제 2세대 Rw인자를 가진 붉은 꽃 완두콩끼리만 가지고 교배하면 인자가 RR, Rw, ww로 1:2:1의 비율을 가진 채 나타난다. 이 경우 우성인자인 R인자를 가진 RR, Rw를 가진 완두콩은 붉은색 꽃을 가지지만, 열성인 w만 가진 ww 완두콩은 흰 꽃을 가진다. 즉, 붉은 꽃끼리 교배했지만 흰 꽃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비율은 3:1로 일정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Rw인자를 가진 꽃의 색깔만 보았을 때는 붉은색으로만 보여 유전자가 섞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R과 w인자가 각각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분리의 법칙’이라고 한다.
멘델은 7가지 기준으로 실험하면서 유전 인자가 별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외에도 중요한 사실을 알아낸다. 둥근 콩, 주름진 콩처럼 하나의 대립 형질만 가진 것이 아니라 둥글고 노란 콩, 주름지면서 녹색인 콩 같이 두 쌍 이상의 형질이 아래 세대로 유전될 경우, 각각의 대립되는 형질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씨의 색과 모양의 경우만 따져 본다. 모양에 있어 우성은 둥근 씨(R), 색에 있어서는 노란색(Y)이다. 열성은 울퉁불퉁한 씨(r), 녹색(y)이다. 이에 따라 둥글고 노란 씨를 가진 것(RY), 둥글고 녹색 씨를 가진 것(Ry), 쭈글쭈글하고 노란 씨를 가진 것(rY), 쭈글쭈글한 녹색 씨를 가진 것(ry) 4가지 종류의 완두콩 씨가 나온다.
다시 이 4가지 종류의 완두콩만 가지고 교배하는 경우 4*4의 경우로 16가지 경우가 나타난다. 이 경우 색과 모양이 모두 우성인 경우가 9개(R_Y_), 색만 우성인 경우가 3개(rrY_), 모양만 우성일 때가 3개(R_yy), 둘 다 열성일 경우가 1개(rryy)로 나타난다.
이렇게 2세대 잡종 교배 과정에서 R과 r이 분리되는 것, Y와 y가 분리된 뒤 우성이 우선으로 발휘되는 것 모두 각각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를 '독립의 법칙'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형질은 독립적으로 '우열의 법칙'과 '분리의 법칙'을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멘델의 완두콩 실험은 유전자가 혼합되지 않고 각각 따로 입자성을 가지고 분리된다는 것과 생물학이 통계적으로 예측이 가능한 과학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멘델은 신이 도운 것 같은 사람이었다. 완두콩은 보기 드물 정도로 유전형질이 단순하고 명확한 식물이었다. 다윈을 포함한 많은 학자가 다른 동식물로 같은 실험을 했을 때는 그다지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멘델조차도 그 후 조밥나물을 가지고 같은 실험을 작용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수도사에게 유전의 비밀을 캘 수 있게 하늘이 도와준, 천우신조가 아닐까?
출처
오후,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웨일북 출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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