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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Jan 04. 2024

올해 달라진 내 모습을 칭찬합니다

나의 이해

작년 하반기, 이런저런 일을 계기로 본격 심리검사를 하면서 나 자신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에도 계획성, 인내력, 추진력이 뛰어남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을 수치화하여 도표로 나타내니 단순한 성향을 넘어서서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관임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나 잘 참는다는 것, 힘든 일도 참고 견디고, 더럽고 치사해도 버텨내는 것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주요한 특성이자 강점이기도 했다. 나를 보호하고 지지해 줄 아무런 방패막, 보호막이 없는 상태로 이제 막 사회에 나가 조직의 룰을 하나씩 배워가야 하는 사회 초년생 시절의 인내력은 큰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과거에 내가 참고 인내했던 것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원만한 결과를 가져왔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를 괴롭히던 상사는 시간이 지나서 조직에서 알아서 도태되었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며 좋은 평판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새인가부터 불편한 상황을 빨리 종료시키기 위해, 모두에게 원만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 억울함이 가슴에 쌓였다. 그리고 밤마다 이불 킥하게 되면서 '그때 그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 싫다는 표현을 했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한 마디도 못했어!'라며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흐르면 그 사건이 계속 떠오르면서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커져갔다.   

어느새 억울해도 혼자 울음을 삼키며 참고 이겨내기만 하는 시기는 지났다.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인내심 많은 나를 기특하게 여기고 그로 인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2,30대와는 달리 지금의 나는 지켜야 할 또 다른 존재가 생겨난 것이다. 그건 내 아이일 수도 있고 후배일 수도 있고 내가 가꾼 자그마한 보금자리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참는 것은 도움이 되었지만 이제는 나도 누군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필요에 따라 쌈닭과 테러리스트가 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최근 1,2 년 사이에 이제는 달라져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더랬다. 하지만 평생을 참는데 익숙해져 있다 보니 적절한 타이밍에 반응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바로 이번주에 있었던 에피소드는 나름 발전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뿌듯했다.

1.1부터 입사 20주년 기념으로 싱가포르-발리 여행을 왔다. 발리 호텔을 예약할 때 네이버 카페를 통했고 3박 이상 예약 시 무료 공항 픽업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발리 여행은 두 번째지만 픽업서비스는 처음 이용하는 것이기에, 공항에서 운전기사를 제대로 만날 수 있을지, 혹시나 어긋나면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할지 긴장이 되었다.
출발지가 한국이 아닌 싱가포르여서인지 공항은 한산한 편이었고 모든 짐을 핸드캐리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출국 심사를 마치고 공항 밖으로 빠져나왔다.
카페지기 말로는 운전기사가 대기장소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다던데 그런 사람이 30명은 되는 것 같았다. 두 바퀴를 돌면서 혹시 놓쳤을까 봐 모든 피켓을 꼼꼼히 읽었지만 내 이름이나 호텔이름, 카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혼자라면 차분히 앉아 기다려보겠지만 옆에 남편과 아이가 짜증 낼 기미가 보이니 내 마음도 다급해졌다. 생각보다행동이 빠른 신랑은 빨리 포기하고 택시를 알아보자며 운전기사와 택시비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차분히 기다릴 상황이 아니길래 카페지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다행히 보이스톡이 바로 왔다. 카페지기는 한국에 있던 것이 아니라 발리에서 상주하고 있었기에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한 것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아니 카페 공지 사항도 제대로 안 읽어 보시면 어떡합니까? 지금 어디에 계신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기분이 나빴지만 덥고 배도 고픈 상황에서 소리를 지를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카페 공지사항 읽었고요. 운전기사 대기석 같은 곳에서 0000피켓을 찾았는데 안 보여서 연락드린 거예요."
'다른 데 계신 거 아니죠? 좀 더 찾아보세요. 저도 확인해 볼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한 명의 기사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막 도착한 것이었다. 이제 기사 만났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승용차에 탑승했다.

캐리어 3개와 백팩 3개를 제대로 실었는지 혹시 지갑이나 여권, 휴대폰을 빠뜨린 것은 아닌지 모든 준비물을 확인했다. 택시 안은 이미 켜져 있는 에어컨 덕분에 시원했고, 기사가 생수도 3병이나 주었다. 이제 긴장을 늦추고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 편안히 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오토바이와 승용차, 닭과 돼지를 싣고 가는 트럭이 뒤섞인 도로를 보며 조금 전의 상황을 복기해 보았다. 나는 공지사항을 숙지하고 가이드를 따랐으나 운전기사가 늦게 와서 내가 기다린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나인데 오히려 카페지기가 나에게 버럭질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제는 빠르게 해결되었지만 나의 실수나 착오가 전혀 없는데도 여행 첫 시작부터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느낌이 왔다. 이런 내 마음을 무시한 채 지금 이 순간 넘어가면 나는 오늘 밤 뒤늦게 찾아온 분노와 후회, 자책으로 감정은 부글부글 뒤끓고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리라는 것을.

비록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그리고 타이밍이 살짝 늦었지만 나의 불편한 마음을 인지한 순간 바로 카페지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카페지기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정말 작은 해프닝이지만 도전과제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의 20주년 여행을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다.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소중한 순간인데 누군가의 감정받이가 되어 그 순간을 망칠 수는 없다. 내가 남을 배려하는 만큼 타인 또한 나를 같은 태도를 가져주면 좋겠지만 동료도, 친구도, 가족도 아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매번 그럴 수 있겠는가. 나를 지키는 것은 나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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