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었을까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서

by 산뜻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었을까?’


어느 날 카카오톡에서 학생 때 생활통지표를 열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나의 학생 시절이 궁금해져서 초등학생, 중학생 때 생활통지표를 열어봤다. 새삼 놀란 점이 있는데 나의 장래희망이 줄곧 ‘작가’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글을 쓰고 싶다. 고등학생 때는 운이 좋아 문예창작 수업을 일주일에 한 번 들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지원한 수업이었는데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진행하였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학교가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문예창작 커리큘럼이 있는 고등학교였다. 우리는 시와 소설을 쓰고 합평을 하기도 했다. 안양예술공원에 설치된 현대미술 작품을 설명 들으면서 야외수업도 했다. 그 야외수업은 나에게 고등학생 시절 중 가장 즐거웠던 추억이다.



어느새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나는 공부를 못하면서 미련하게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너무 졸릴 때면, 교실 맨 뒷 공간에 놓여있던 스탠딩 책상을 자주 찾았다. 그러고 나서 말처럼 서서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내 교과서를 본 반 친구들은 남자 글씨인 줄 알았다고 놀릴 만큼 내 글씨는 악필이었다. 물결 치듯 삐뚤빼뚤한 글씨로 필기를 했고, 곳곳에는 그마저도 아닌 구불텅한 지렁이가 기어 다녔다. 꿈속에서 필기를 하느라 그랬다. 졸음과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책상에 엎드려서 자기도 했다. 그리고 왜인지 그때는 교과서가 아닌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탈북자들의 사진이 담긴 책과 색채심리학 책, 와인 책, 철학 책, 세계 고전, 무협 소설 등을 읽었다. 그 즈음에는 수능은 포기했고 수시 논술 전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능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두려워졌다. 만약 논술 전형에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내가 재수를 할 수 있을까? 만약 문예창작과를 가더라도 내가 쓸 만한 이야기가 없다고 느꼈다. 글을 쓰려면 그만한 경험이 쌓여야 한다고 그렇게 합리화를 했다. 그래서 나는 수시도 포기했다.



그 대신에 내가 선택한 곳은 친구를 따라가게 된 직업전문학교였다. 나는 식음료 전공, 친구는 요리 전공이었다. 신입생일 때 커피가 왜 좋냐는 커피동아리 회장 선배의 질문에 재빨리 적절한 답변을 생각하고서 “냄새가 좋아서요”라고 대답했다. 사실은 매캐하고 방귀 냄새처럼 구수한 향이 생소해 속으로는 찌푸리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커피를 입에 달고 살게 될 줄은. 20대의 나는 대부분 카페에서 일했지만, 그 외에 옷 판매, 서빙, 치킨집 조리 등의 일을 해봤다. 보통 서비스직이면서 몸을 쓰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어쩌다 보니 숙박업소 즉 모텔을 관리하고 있다. 주로 카운터 일을 하는데 요즘은 커피를 보통 하루에 3잔은 마신다. 밤새 마신 커피로 속이 쓰린 다음날 아침에 또 커피를 마시면서 ‘내 피는 커피로 이뤄진 거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모두가 잠든 밤에 항상 깨어있으면 사람에게는 많은 일이 생긴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조금씩 변화한다. 나는 항상 수면 부족에 시달렸고, 잠을 깨기 위해 밤에 자주 음식을 먹었다. 혹은 마음이 허해서 먹기도 했다. 야식이 잦아지자 몸이 처지고 살이 붙었다. 20대 초반에는 아무리 먹어도 167cm의 키에 53kg을 유지했지만, 10년의 세월 동안 몸무게도 10kg이 늘었다. 물론 이 일을 시작한지 10년이 되지는 않았다. 밤에 일하기 시작하고서 몇 kg이 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일을 하고 나서 인생 최고 몸무게를 갱신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우울함이 자주 찾아왔다. 어떤 날은 충분히 잤음에도 계속 잠이 왔고, 충분히 먹었음에도 허기졌다. 게다가 나는 개인적 공간과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인데, 매니저로 일하게 되면서 아예 거주공간을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집과 직장의 경계가 사라졌다. 우울함은 나의 행동과 사고에도 영향을 미쳤다. 방금 전에 확인한 손님의 신분증에 적혀 있던 생년월일조차 1초 만에 까먹을 정도였다. 또한 무언가 말하려 해도 단어가 바로 기억나지 않아 버벅거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2025년부터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의 영상 콘텐츠를 보는 시간을 줄이고 독서와 사색, 글쓰기의 시간을 가져야 겠다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솔직히 학생 때 작가가 꿈이었던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의 이유는 알겠다. 나에게 글쓰기의 의미는 이렇다.


•내 삶을 지탱해 주는 수단이다.

•상처받은 내 영혼을 자가치유 하는 방법이다.

•우울과 싸우는 생존의 기록이다.

•나만의 고유한 공간이자 요새인 ‘치타델레’를 만드는 과정이다.

•고립된 나를 사회와 연결해 주는 동아줄이다.

•나의 존재에 대한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리고 나의 글로 인해 누군가의 지친 마음이 따뜻해지기를 소망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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