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혼자 있는 시간

순간을 소중히

by 산뜻

2025년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되었다.


2025년 3월 21일 어도어와 전속 계약 분쟁 중이던 그룹 뉴진스는 어도어의 승인 없이 독자적인 활동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가수 송대관, 패션 디자이너 김리을, 배우 김새론, 가수 휘성, 정치인 장제원 등… 이번 연도에 유난히 사망한 유명인과 공인이 많았다.


어디서나 시간은 흐르고 인생의 밤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밤이란 누군가에게는 끝, 누군가에게는 이별, 누군가에게는 고통일 것이다.


내 인생에서도 밤처럼 어두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중 한 시절, 나는 강남의 원룸에서 혼자 살았다. 사실 강남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어느 곳을 돌아보아도 대기업만 가득한, 아기자기한 맛이 없고 정 없는 비즈니스 도시. 나에게 강남은 그런 인상이었다.


그랬던 내가 그 도시에서 하나둘씩 추억을 쌓으며 점점 정을 붙이게 되었다. 크고 깨끗한 건물들, 24시간 열려있는 약국들, 밤이 되어도 불이 켜져 있는 붉은 벽돌의 교보타워, 여러 사람들의 출퇴근으로 바쁘게 시작되는 아침 시간,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밤의 시간, 언제든지 대여할 수 있는 따릉이를 타고 누볐던 신사의 가로수길과 인덕원의 로데오 거리… 어느새 나에게 강남은 자유로움, 부지런함, 흥겨움, 편리함이 떠오르는 곳이 되었다.

강남대로 (출처: 핀터레스트)

그리고 그 모든 추억을 함께한 사람과 이별했을 때, 나는 밤에 홀로 남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주 6일씩 하루에 11시간 동안 서서 식당의 홀 서빙을 했다. 일이 끝난 밤에는 슬픔에 잠겨 놀이터에 앉아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나서 집에 돌아가고는 했다. 내가 살던 원룸은 여기저기 고장 난 것 투성이었는데, 나는 무엇 하나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원룸에 있던 싱글 침대는 어느 날 무너졌다. 침대 밑의 받침이 일부분 부서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이 박스로 침대 밑을 대충 받쳐 놓았고 부실한 받침 덕분에 침대가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화장실에는 어딘가 물이 새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날이 갈수록 규칙적으로 똑똑 떨어지는 소리의 속도가 빨라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는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발자국 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겁쟁이인 내가 그 모든 상황에 관심이 없었다. 물 떨어지는 소리도 아무렇지 않았고, 허리가 아픈지도 몰랐고, 귀신 소리든 뭐든 간에 내 관심을 끌만한 것은 없었다.


이별 후 한두 달이 지났을 때, 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강을 찾아갔다.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들고 강가의 넓적한 돌 위에 앉아서 강물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노래를 틀어 놓고 하염없이 바라보다 보니 밝았던 하늘이 점차 어두워졌다. 불빛에 반짝이며 넘실거리는 강물이 내 마음을 고요하게 어루만지는 듯했다. 하늘과 강물이 점차 남색으로 짙어져 가는 그 풍경이 아름다워서 나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 그 사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 사진이 되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서도 나름 좋았던 부분이 있었다. 홀로 아파하며 견뎌냈던 그 시간, 그 공간, 그 공기… 아픔도 추억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어느새 단단해졌다. 그리고 살다 보니 어떤 상황이든지 좋은 것들만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치 조개의 상처가 시간이 지나 진주가 되듯이, 가마에서 뜨거운 열기를 견뎌내고 반짝이는 도자기가 되듯이.

그 날의 한강


한강 사진을 보면 내가 좋아하는 명곡 offonoff의 photograph가 생각난다. 이 곡은 무려 9년 전 노래임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뮤비와 함께 보면 감동이 아직도 여전하다. 뮤비는 참 간단하면서 아름답다. 여행하며 찍은 듯한 아름다운 영상이 노래에 맞춰 계속 나온다. 마치 사진첩을 넘기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뮤비를 보고 있자면 무언가를 추억하는 기분이 든다.

´offonoff-photograph’ MV의 한 장면

순간을 소중히 하자. 혹시 지금 힘들고 지쳐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오늘의 순간도 언젠가 어제가 된다. 지치거나 아프거나 힘든 순간도, 행복하고 기쁘고 벅찬 순간도 다 지나고 나면 내 기억 속에 영영 살아있는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홀로 견디는 밤에는 사색, 영감, 치유를 얻기도 한다. 그러니 혹시 지금 다 놓고 싶다면 조금만 시간이 흐르도록 둬 보자.


오늘을 버티는 당신을 응원하며 오늘의 생각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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