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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이 Sep 07. 2022

우울이 뭐냐는 질문

개인적인 우울감을 정리해보자면


우울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너무 잘 알아서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말문이 턱 막혔다. 알게 된 지 두 달 남짓한 동료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진지하게 애써 설명하면 밥 먹다가 서로 체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가볍게 넘기기도 싫었다. 괜찮냐는 질문이었다면 그저 웃으며 응, 하고 넘어갔을 텐데 그게 무엇이냐는 질문은 난감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상한 의무감에 속박되었다. 잊기 전에 내 이십 대를 먹어치운 그 개 쉐기의 흔적을 기록해야 했다. 밥을 먹으면서, 샤워 거품을 내면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면서 내가 겪은 우울이 어땠는지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우울은 지난 십여 년간 스멀스멀 일상을 파고들어 이미 뗄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감각을 설명하는 정도로는 제대로 묘사할 수가 없다. 겨우 잠잠해진 것을 것을 슬쩍 들춰보려니 발을 헛디뎌서 어이없게도 다시 구덩이 속으로 굴러 떨어질까 두려웠다. 그러던 와중에 어느 날 속사포가 터졌다.


'나라고 믿었던 모습을 하나하나 포기해 가는 과정. 포기하려는 힘과 포기하고 싶지 않은 힘 그리고 지켜보는 눈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개입할 수 없이 바라만 보는 눈은 끝없는 절망에 빠진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 엉뚱한 곳에 삽질을 하는데 방향을 바꿀 수 없는 것. 내가 문제라고 굳게 믿는 것. 닥쳐오는 일들에 무방비로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 쩔쩔매는 상태로 방치하는 것. 스스로 손을 놓아서 보살핌 받지 못하는 자신과 살아가는 것. 집 안팎에서 점점 변해가고 자신감을 아예 잃는 것. 그 상태로 사람들 앞에 가면을 세워두고 최대한 멀리 거리를 두는 것. 원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 소통이란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것. 처음에는 굴러 떨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늪 또는 구렁텅이로 더 깊게 내려가는 것.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저항할 수 없는 것. 파멸하고 싶은 충동을 다루는 것. 종국엔 깊은 절망을 향하는 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 그리고 이전의 모습을 잊을 만큼 오랫동안 그 속에 머무는 것. 그곳에 익숙해지는 것.


문득 길거리 유리창에 비친 자신이 죽도록 실망스러운 것. 미워서 죽여버리고 싶은 것. 그 자리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은 것. 스스로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 때 심장이 박살 나는 것. 그들을 혐오하는 것. 일상에서 부딪히는 것들을 보지 않고 덮어두는 것. 자꾸만 쌓여가는 짐에 숨이 막혀 살아갈 자신이 없어지는 것. 그러다 어느 날 주위를 둘러보며 끝없는 자괴감에 빠지는 것. 더 이상 손쓸 수 없다고 느끼는 것. 죽을 용기도 살 용기도 없는 채로 내버려 두는 것.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 믿지 않는 것. 믿음과 실망을 반복하다가 기대도 안 하는 것. 어떠한 희망도 품을 수 없는 것. 점점 죽을 용기가 커지는 것. 제어할 수 없는 것.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것. 모든 것이 내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살 자격이 없는 것.


모든 것에 무뎌지는 것. 점점 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폐 증상이 나타나거나 미쳐버릴 까 봐 두려운 것. 눈을 떠서 잠들기 직전까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향한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는 것. 스치는 옷깃에도 증오심이 일어나는 것. 세상이 뿌옇게 보이는 것. 사람이 두려운 것.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유해한 것. 지나치며 나를 비난할 것 같은 것. 과거를 파고들게 되는 것. 했던 생각을 또 하고 또 하는 것. 탓할 대상을 찾는 것. 살아있는 1분 1초가 괴로운 것. 늘 울음이 가슴에 가득한데 눈물은 안 나오는 것.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 마비되는 것. 세상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것. 살아온 시간을 전부 부정하는 것'


우울감은 시기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 위에 적힌 것들은 이십  초반  년간 겪었던 증상이다. 도저히 벗어날  있을  같지 않은, 타인과 공유할  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기를 통과하고 나면 배움도 함께 온다. 타고난 기질과 성질은 존재하지만 애초에 나도 남들도 세상도  순간 변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애초에 고정된 내가 없기 때문에 그저 살면 된다. 그걸 받아들이고 나면 사는    편안해진다. 이십  전체가 우울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으로 흔적도 없이 홀라당 날아간  같다가도 어디선가 구석구석 박힌 별들이 빛을 내어주었다. 이제는 갑자기 어두워지더라도 별을 보며 방향을 잡을  있다. 어둠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젠 적어도 어둠 속에서는 길을 잃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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