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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Oct 02. 2024

마음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김화진 著, <나주에 대하여> [단편소설집]


- 제목 : 나주에 대하여

- 저자 : 김화진

- 출판사 : 문학동네



바로 전 주에 발행했던 글도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이었는데, 이번에도 문학동네의 작품이다. 출판사마다 발행하는 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비슷한 면은 있지만 문학동네는 유독 작가들의 개성이 뚜렷한 느낌이다. 표지를 먼저 보거나 안에 수록된 작품을 읽다가 '어, 이거 왠지 문학동네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출판사를 확인하면 정말 문학동네였던 경우가 꽤 있다. 물론 틀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나주'가 전라남도에 있는 지역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람 이름이었다. (지역) 나주가 아니라 (사람) 나주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책 제목을 보고는 나주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분명하다며 섣부르게 뻗은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괜히 머쓱해지고 말았다.


제목의 '나주'를 '마음'이나 '사람'으로 바꿔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책의 제목이 <마음에 대하여>나 <사람에 대하여>가 되어도 이 책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나주에 대하여가 아니라 마음에 대하여, 혹은 사람에 대하여가 제목이라면 뭔가 힘이 부족한 느낌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 혹은 이야기 속에 담긴 마음을 극대화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살짝 맥이 빠진다. 너무 뻔한 느낌도 들고, 호기심이 가지 않고, 그저 그런 밋밋함과 심심함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나주에 대하여>가 제목이라서 다행이다.


이 책에는 마음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과 이별, 동경과 질투, 원망과 용서, 외로움과 상실감, 애정과 우정 등 수많은 감정과 마음, 그것들의 흐름과 변화, 그로부터 발화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어떤 책이 그렇지 않겠느냐만은 이 작품은 유독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는 갈등과 해소와 모순들을 솔직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중점적으로 다룬 것 같다는 감상을 느꼈다.


책은 총 여덟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독후감에는 세 개의 단편만 쓴다. 그리고 모든 줄거리와 결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불친절하고 지나치게 솔직한 독후감이다.



1. 새 이야기


화자인 '나(진아)'와 '천희'는 어느 빈티지 옷가게에서 만났다. 그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옛날 영화 상영회를 열어 손님들이 음료와 다과를 가지고 와서 먹으며 감상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나에게 천희가 자신이 가져온 간식을 건네주면서 인연은 시작되었다.


나와 천희는 인연을 찰나로 끝내지 않고 관계로서 이어간다. 천희와 만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의 마음도 천희에게 서서히 기운다. 호감과 호기심이 생긴다. 신기할 정도로 소리가 없는 천희, 추위를 별로 타지 않는 천희, 온화하고 다정하고 느긋한 천희와 더 가까운 사이가 되는 상상도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천희는 나에게 도쿄에서 옷가게를 낼 생각이라고 말한다. 여자친구가 도쿄에 살고 있다면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말을 "일본은 제주도 같아서 왔다 갔다를 오백 번도 할 수 있지만 결국 돌아가는 곳은 일본일 거"라고 말하는 천희 앞에서, 나는 슬픔이나 절망감을 느끼기도 전에 인생에서 가장 세련되게 실연당한 것 같은 마음에 천희의 말을 어딘가에 적어 놓는다.


천희에게서 받은 이별 선물은 대파였다. 나는 그 대파를 열심히 키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대파의 목소리를 듣는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대파가 사람처럼 말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꼭 환청처럼. 귓바퀴를 타고 흘러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두개골 안쪽으로 곧장 들어오는 듯한 대파의 목소리! 나는 비명을 지르거나 우왕좌왕하는 대신 대파와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 다양한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대파를 조금씩 잘라 먹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자정 넘어 파를 잘라 음식을 해 먹는 일이 밤의 정기 행사가 될 정도다.


나는 웹툰 작가지만 유명하거나 인기가 많지는 않다. 주인공들이 이어지지 않는 로맨스 만화를 그리면서 독자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한다. 재미없는 만화를 그려서 걱정이 된다는 독자의 진심 어린 댓글을 받기도 한다. 과연 그건 좋아해야 할 일인가. 나 역시 아주 미미하게나마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기에 안다. 나를 염려하는 댓글은 대부분 작품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달린다. 그마저도 달리지 않을 때가 훨씬 많지만.



26p - 애정어리고 조심스러운 말에 사람이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놀라웠다.

책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여담이지만, 이 문장이 제법 눈에 밟혔다.


어조가 다정하고 어투가 부드럽다고 무례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긋나긋하게 다가오는 말이 더 쓰리게 느껴질 때도 있는 법. 게다가 사람은 본래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어서, 내가 한 말에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 그것을 미안하게 여기기보다는 "네가 걱정되어서 한 말인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혹은 "내가 너한테 쌍욕을 한 것도 아닌데,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따위의 날 선 반응이 겉으로는 속으로는 나오기 마련이다. ― 혹시 나만 그런가? ―


하지만 말과 행동은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존재. 의도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청자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발언은 수없이 존재하고 그건 상황에 따라 옳을 수도,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걸 일일이 따지며 검열하기도 불가능하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줌과 동시에 상처를 받으면서 산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그걸 가만히 손 놓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누군가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더라도 '어차피 다 그러고 산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도 되는 것일까.


내가 한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뱉은 적은 무수하다. 심지어 일부러 상처를 주기 위해 내뱉기도 했다. 말을 하고 나서야 아차, 한 적도 있다. 상대방이 상처받은 것을 눈치챘지만 모른 척한 적도 있다. 혹은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이 상처 입을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을 꺼낸 적도 있다. 어떤 말을 꺼냈을 때 마음이 후련해지면 나를 위한 것이고, 마음이 불편해지면 남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자가 화자의 마음까지 가늠할 이유는 없다. 어쨌든 날카로운 말은 날카로울 뿐이다. 아무리 애정어리고 조심스러운 말이라고 해도.


애정이 담겨 있기에 옳은 일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부모, 자식, 가족, 친구, 연인, 동료 등 세상의 모든 관계에는 그런 착각이 존재한다. 하물며 반려인과 반려동물 사이도 그렇다. 반려인은 반려동물을 생각해서 한 일이 되레 반려동물에게는 큰 고통이 될 수도 있으니. 속마음을 알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반려동물 행동 교정 전문가나 동물 심리학자가 아닌 이상, 그들의 일생을 책임지는 인간은 불가항력으로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올바른 애정은 '상대방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닐까. 설령 상처를 받게 된다고 해도 그걸 방치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곁에서 살피며 보듬어주는 책임감.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반드시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매일 밤마다 떡볶이나 닭발 같은 음식들을 먹어서일까, 천희가 떠나고 미래가 불안하고 무엇 하나 편안하지 않은 생활에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아서일까, 나의 몸 상태는 점점 나빠지다가 급성 위장염으로 병원에 실려가게 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나는 대파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사실 천희는 일본에 간 것이 아니다. 천희는 여자친구도 없다. 천희는 사람이 아니다. 바로 오리다. 천희는 내가 다니는 학교 호수에 살던 청둥오리였다. 천희는 오리였던 시절부터 나를 좋아했다. 그러다가 내가 더는 나타나지 않자 사람이 되어 나를 찾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나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는 대신, 그동안 조금 특이하다 생각하며 넘어갔던 천희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언제나 느리고 세상 물정에 서툴러서 한없이 해맑기도 했던 천희, 편의점 신상품을 신기해하고 그런 것들을 들어올려 구경하다가 꼭 하나씩 떨어뜨려 주변의 걱정을 샀던 천희, 우유를 사면서 빨대 대신 나무젓가락을 챙겨 왔던 천희, 커피 하나를 사면서 터무니없이 큰돈을 내거나 거스름돈을 잘못 챙겨도 몰랐던 천희, 젓가락질도 못하고 고기도 잘 못 굽고 택시도 잘 못 잡고 지하철 노선도 모르고 무서워해야 할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무서워했던 천희, 고방오리와 흰뺨검둥오리를 구분하고 서울을 천(川) 중심으로 알고 있었던 천희…. 그의 수수께끼는 모두 그가 사람이 아닌 오리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해소된다. 천희는 오리였기에 인간 세상이 낯설고 신기하고 한없이 서툴렀던 것이다.


그리고 대파는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청둥오리 수명은 길어야 삼십 년인데 천희는 꽉 차게 살아서 길어 봤자 이제는 사오 년이 생의 전부이고, 천희는 죽으러 나의 곁을 떠난 거라고. 대파는 천희가 남긴 마음이다.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했던 마음이자 나와 함께 할 수 없어서 남기고 간 미련. 내가 대파에게 "내가 천희를 보고 싶어 하면 나도 새가 될 수 있냐"고 묻자, 대파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35p - 아니. 너는 너무나 사람이구나.

너무나 사람이라는 말은 무엇일까. 같은 사람이어도 정말 흠잡을 데 없이 사람인 사람, 조금 어설픈 구석은 있지만 일단 사람인 사람, 딱히 사람은 아니어도 어쨌든 사람인 사람이 있는 걸까? 인간스러운 마음은 어떻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사회적인 기준을 따르면 역시 상식과 붙임성이 '사람'의 기준이 될 것이다. 눈치가 없거나 서글서글하지 못하면 조금 덜 된 사람이다. 양심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 같다. 양심이 있고 정직한 사람이 되레 무식하고 우직하다며 소외당하는 장면은 자주 목격할 수 있으니. 인간의 덕목은 인간성이지만, 인간성을 가장 무시하는 존재도 같은 인간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사회적인 기준이 아니라면?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사람이어서, 완벽하게 인간으로 태어나서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 이것 역시 같은 사람들은 알 수 없다. 사람은 같은 사람을 바라볼 때 가장 어둡고 무식해진다. 같은 종족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대파는 사람이 아니기에 알아본 것이다. 나는 절대 청둥오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36p - 다른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척하는 것은 싫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던 걸까, 다른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웹툰을 그리면서 처참한 별점 평가와 댓글을 받은 나는 결국 작품 연재를 중단한다. 그것이 정신적 트라우마가 되자 결국 나는 인터넷을 끊고, 새로운 이야기도 구상하지 않고, 평범하게 출퇴근하는 직장을 목표로 삼고, 신경정신과에 주기적으로 들르게 된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절대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건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나를 벗어던지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이긴 할까. 그건 다른 사람이 된 게 아니라 그저 지금까지 드러내며 살았던 모습이 아닌, 나의 속 어딘가에 은밀하게 숨어 있었던 다른 면모를 꺼내 뒤집어쓴 것이 아닌가?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변하고 싶은 것이었다. 현실의 내가 겪었던 내적 갈등도 이런 류가 아니었을까. 나는 완전히 변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변하지 않고 지금의 나로서 살고 싶은 건지. 결국 본질에 가까운 천성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이야기 말미에 나는 천희와 재회한다. 천희는 자신처럼 사람이 된 새들을 위해 사람처럼 사는 방법을 알려 주는 방송을 하고 있었다. 하긴, 새로 태어나 새로 살다가 갑자기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삶이 복잡하고 미묘하고 힘들어졌을까. 사람이 되어버린 동물들을 위한 강의도 분명 필요할 것이다.


이 단편은 동화 같은 소설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에 사람이 된 청둥오리라는 설정이 가미되어 조금 더 환상적이기도 했다. 나와 천희가 언제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까. 나와 천희가 둘 다 사람이었다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천희는 사람이 아니어서, 사람이 된 청둥오리여서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속의 '나', 진아가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가면 좋겠다는 희망을 본다. 진아 옆에는 새가 있고, 그 새는 진아를 사랑하고, 그래서 새 이야기도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2. 나주에 대하여


책의 제목으로 선정된 대표작이다. 지금껏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는 많다. 소설 속 인물에게 이입하듯 몰입하면서 읽은 적도 꽤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어떤 인물에게 '정'이 간 적은 많지 않다. 정(情)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 따뜻한 마음, 풍부한 사랑, 친근한 유대감, 우정과 동질감, 같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무언가…. 모든 게 해당되면서도 정확한 정의로는 내릴 수 없다는 점이 재미있다.


소설 속 '나주'에게는 정이 갔다. 곁에 두고 몇 개월 정도 건너다보던 사람처럼 살며시 기우는 정이 있었다. 이런 마음까지도 '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높은 광대와 낮은 코에 콤플렉스가 있고, 꽤 산뜻한 미소와 진중하고 조심스러운 성정을 가진 나주. 나주와 내가 비슷한 구석이 있으면서도 결국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더 눈길이 갔다. 나의 외모 콤플렉스는 나주와 다른 부분에 있고, 나의 웃음은 무척 어색하거나 우스운 꼴이며, 나는 딱히 진중한 성정도 아니다. 생각이 많고 내향적인 모습 뒤로 경박함과 우유부단함을 애써 숨기려 할 뿐이다.


화자인 '나(단)'는 나주로부터 죽은 애인 '규희'를 본다. 나주와 많은 부분이 비슷하며, 나주의 전 애인이기도 한 규희. 나와는 정반대에 가까운 성격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던 규희는 연애를 하면서도 특유의 유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나를 종종 외롭게 만들었다. 연인인 나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았던 규희는 내면의 소통과 정서적인 대화를 훨씬 중요시하게 여겼기에, 이따금 나는 규희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64p - 사이란 건 그 선을 조정해가며 우리 둘이 만들어가는 걸 텐데 너는 이미 선이 있고 항상 단호하고 나는 선이 있던 적이 없으니까. 늘 한쪽만 맡는 일이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미리 선을 긋고 시작하는 관계는 자연히 겉돌며 평행할 수밖에 없다. 선을 그은 사람과 억지로 이어가는 관계는 외롭고 일방적이다. 가끔은 내가 억지로 이 사람을 끌고 돌아다니는 것 같은 불유쾌함까지 느껴진다. 단이 규희에게 느꼈던 서운함과 외로움을 보면서 내 마음도 뜨끈해졌다. 부끄러운 쪽으로 열이 가해졌다. 나 또한 인간관계에 있어 상당히 선을 두는 편이고, 그 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가족들의 접근도 내키지 않아서 자주 벽을 치기도 했다.


나의 특성을 상대방에게 이해하라며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순간, 그건 더는 조정하지도 못하고 더욱 깊게 나아가지도 못하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그런 관계만을 유지한다면 훗날 나의 곁에 누가 남아줄까. 이해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이해하는 게 올바른 접근법이 아닐까.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모든 관계에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마음과 소통이 필요하고 그건 노력이나 인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니까.


나는 나주를 직장 후배로 만나기 전부터 나주의 SNS를 자주 살피며 나주에 대해 알아갔다. 규희와 닮은 나주를 질투하다가도 나주를 향한 궁금증과 호기심, 그리고 알 수 없는 호감과 미움을 품었다. 이 책의 해설을 쓴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소설 속 '나'가 나주를 궁금해하는 것은 곧 떠난 규희에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규희를 향한 그리움이 그의 전 애인이었던 나주의 일상을 몰래 살피고 탐독하는 행동으로, 더 나아가서는 인간적인 호기심과 애정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나주에게 품은 마음이 단순히 규희와의 이별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규희가 있었다면 나는 나주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을까? 그저 평범한 직장 후배라고만 여기며 지냈을까? 그렇지만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주와 친해지고 싶어 했고, 동시에 그의 여리고 건강한 마음을 망가뜨리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 그것은 부러움, 질투, 동경, 미움, 애정이 모두 뒤섞여서 본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된 감정이다. 나는 나주가 규희와 자신의 관계를 눈치챈 듯한 기색을 느끼고도 여전히 나주를 생각한다. 그건 미움만이 아니고 또한 애정만은 아니다. 미워하는 동시에 애정하는 마음. 질투하면서도 동경하는 마음. 인간 마음의 모순을 내달리는 것이다.


두 사람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어쩌면 이것만이 가장 완벽한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 침묵의 사자


사자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창문 너머 멀리 보이는 건물 사이로 커다란 사자가 나타났다. 오후 햇살이 저물며 가장 강하게 내리쬐는 시간에 사자는 주로 나타난다. 붉고 따뜻한 기운을 내뿜는 사자가 나타난 이후로 꽃샘추위도 힘겨워하던 '나(지영)'는 유난히 추위를 타지 않았다.


사자는 자유로운 존재다. 누구도 사자를 보지 못한다. 사자는 자유자재로 몸을 늘였다가 줄이면서 빛처럼 여기저기를 마음대로 넘나든다. 사자는 나의 책상 아래에 꼭 맞춰 몸을 작게 만들어서 웅크리는 걸 좋아했다. 그러면 나의 종아리와 무릎 전체를 사자의 체온이 감싸 덥혀 주었다. 사자는 나에게 따뜻한 존재였다.


나는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 탓에 대충 하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사주를 받기도 한다. 사자가 나타난 날에는 지하철에서 머리에 새를 얹고 다니는 남자를 보기도 했다. 남자는 새가 예쁘다는 나의 말에 기뻐했다. 보는 사람이 많이 없다면서. 그 남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을까? 내 곁에 사자가 있는 것처럼, 남자의 곁에는 새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에게 "소수는 외롭지만 그렇기에 외롭지 않고, 반대로 외롭지 않을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외로워지기도 한다"는 말을 남긴다. 외롭지만 그래서 외롭지 않고, 그렇기에 외로워지는 소수의 사람들. 현실의 나는 나에게만 보이는 동물이 나타난다면 어떤 동물일지 궁금했다. 이왕이면 귀여운 토끼나 호기심이 많은 펭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268p - 아이들은 무섭다. 손아귀에 누군가가 잡히면 쥐고 흔들고, 편가르고 내쫓는 일에 순수하게 재미를 느낀다.

나는 아이들의 무해를 동경하고 순수한 유해를 무서워한다. 그것은 나 또한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겪었고 또래 아이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생활했던 시간이 있기에 그렇다. 다른 아이와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내가 저 아이보다 더 나은 점을 발견하면 안도감을 느끼며 그것을 양분 삼아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마음이 있다. 어른들보다도 무서운 예리함을 품고 있다.


누군가가 무리에서 소외당하면 걱정이나 죄책감보다는 소속감과 안도감이 우선으로 생겨난다. 나는 저 사람처럼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았어, 나는 추방당하지 않았어, 그런 생각으로 나의 자존심을 치켜세우는 동시에 나의 마음을 스스로 갉아먹는다. 얼마나 한심한가. 하지만 사춘기 시절에는 무리에 소속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친구 관계가 갑을 관계가 되는 경우도 부기지수니까. 정말 무섭다. 사람은,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 자체로 정말 무서운 존재다.



사자는 나의 외로움이자 죄책감이자 원망이자 불안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뜨겁게 녹여 종국에는 증발시켜 줄 구원의 존재이기도 했다.


나의 외로움은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혼자가 된 일에서 비롯되었다. 멋진 친구를 향한 동경과 우정이 일종의 집착이자 강박으로 자라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사람은, 특히나 어린 시절에는 언제나 애정과 소속감을 바라고 쉽게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동경한다. 그리고 그것을 숨기거나 억제할 힘이 부족하기에 어느 순간 누군가를 따라 하거나 졸졸 따라다니는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만큼 상대방의 정서나 상황을 이해할 마음 또한 부족하고, 노골적으로 어떤 아이를 소외시키며 얻는 희열과 우월감을 좋아하는 면도 있다. 하필이면 나와 친구들이 모두 조건에 부합하면서 결국 완벽한 배척과 균열이 생겨나고 것이다.


죄책감은 그토록 아픈 시절과 볼품없이 부서진 우정을 지나쳐서 만나 하나뿐인 친구가 된 지은에 관한 것이다. 지은이 자신을 질투하는 남편과 이혼하고 영국으로 떠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녀의 고독이나 상처나 상실감 등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왜 그깟 일로 무너지려 하냐며, 왜 내 곁에서 떠나가냐며 아이처럼 생떼를 썼다. 오죽하면 항상 나를 이해하고 포용했던 지은이 "너는 내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는다"며 화를 냈을 정도다. 나는 시간이 지나 지은에게 그 일을 사과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려 하지 않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차가운지 알게 되었으니까.


원망은 내가 문학상을 수상하고 첫 책을 출판했을 당시, 마케팅팀 막내 사원이었던 출판사 직원을 향한 것. 그는 회사가 싫다는 이유로 가짜 계정을 여러 개 만들어서 온라인 서점에 등록된 나의 도서 페이지에 악성 댓글을 여러 개 달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다시 마주친 그는 죄책감은 물론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나에게 사과를 전했다는 언급도 없을뿐더러 나를 마주쳤을 때도 잠깐 놀라기만 할 뿐, 이내 아무렇지 않게 형식적인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으므로. 나에게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만들어 놓고 정작 자신은 여전히 회사에서 일하면서 멀쩡하게 잘 사는 그를 향한 감정이 커다란 사자의 형상을 만들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불안을 그 모든 감정이 총체적으로 집합된 존재다. 수많은 외로움, 죄책감, 원망이 모여서 만들어진 존재. 사자는 나의 감정, 지영의 감정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극대화되어 아예 형체를 이루어 나타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차갑게 식은 지영의 등에 뭉근하게 퍼지는 뜨뜻한 햇볕과 노을빛을 타고 나타났으니까. 지영에게 전혀 위해를 가하지 않고 책상 밑 다리를 따뜻하게 감싸주다가 사라지곤 했으니까.


사자는 지영의 친구 지은을 닮기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영을 밀쳐내고 떠나지 않는다. 때로는 부딪히고 싸우고 갈등을 겪어도 결국에는 지영의 편이 되는, 지영의 곁에서 사라지지 않고 온기를 간직하는 친구처럼. 지영은 지은이 어미새 같다고 말한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해도 절대 둥지 밖으로 밀어내지 않으니까. ― 지영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지은을 친구로 만난 것 같다. ― 사자는 지영의 등을 토닥이듯이 혹은 그루밍하듯이 어루만지다가 지영의 마음에 조금씩 새살이 돋는 걸 확인하고는 이제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작별한다. 영원한 안녕이다. 정말 영원히 재회하지 않을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사자가 지영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두 번 다시 지영을 만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마음이 없을 수가 없다. 존재하지 않을 리도 없다. 마음은 아주 예민하고 섬세한 존재라서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부드럽게 흔들리다가 순식간에 두꺼운 가시를 잔뜩 내비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정작 같은 사람의 마음은 전혀 알지 못해서 매번 애를 먹고 어려워하고 지겨워하고 이내 마음을 떠난다. 이별하고 그리워하고 외로워하면서 또 그렇게 그럭저럭 산다.


마음, 마음, 마음…. 생각할수록 참 이상하고 오묘하고 아이러니한 것. 마음과 생각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감정은 뇌에서 반응하는 화학 물질이자 생체적 반응에서 비롯된 것이라지만, 그건 그것대로 신기한 일이다. 인간의 감정이 모두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라니! 사랑, 두려움, 외로움, 동정심, 유대감, 행복감, 원망, 분노, 슬픔을 비롯한 그 수많은 감정들이 전부 두개골 속에 있는 뇌에서 만들어진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반대로 뇌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발화도 좋다. 아직 인간의 지성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좋다. 어떤 것이든 마음이 존재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증거다.


마음이 얼어붙은 사람, 마음을 잃어버리거나 스스로 버린 사람이 무수히 많은 세상에서도 따뜻한 마음 또한 어딘가에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이 책처럼 한 인간의 복잡 미묘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의 내면을 담백하게 그려내는 작품들은, 인간의 마음이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단순히 뇌의 발달로 인한 작용이라고 단정하기엔 너무 밋밋하다. 명확하고 건조한 지식 외에도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별과 행성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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