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감추고 싶은_
나는 새치가 많다. 내 새치를 스스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20대 중반 무렵이었다. 침대에 누워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내 머리를 쓰다듬던 엄마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너 새치가 나네.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나 보다.”
그러다 이내, “아휴, 나도 새치가 많은데, 이걸 닮았네.” 하고 웃었다. 왜 자식이 나의 좋은 점보다 안 좋은 점을 닮았을 때 더 크게 보이는 걸까. 나도 자식을 낳아보니, 아이에게서 보이는 어렵고 힘든 것이 나로부터 왔음을 깨달을 때 마음이 참 힘들다.
언젠가부터 내 머리카락 속에서 제법 큰 자리를 차지한 새치. 새치가 늘고 나서는 미용실에 가기가 망설여졌다. 미용사들이야 새치 손님을 워낙 자주 맞이하니 별생각 없겠지만, 막상 가면 나는 괜히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는다.
한 번 새치를 드러내고 나면 그 미용사와는 이상한 내적 친밀감이 생긴다. 그래서 몇 달 후 다시 그에게 나의 은밀한 새치를 들이밀러 가게 된다. “아휴, 오랜만에 와서 많이 났죠!” 하며 인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미용실의 스몰토크가 참 버거운 나이지만, 잔뜩 난 새치 앞에선 괜히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게 된다.
양치를 하다 세면대 앞 거울을 보면 정수리에 흰 머리카락이 슝 솟아있다. 내 새치는 머리 안쪽에 많이 나는 편이라 염색한 지 한 달 정도는 잘 안 보이다가, 그 시기를 넘기면 슬그머니 존재감을 드러낸다. 숨을 때는 머리를 굳이 쓸어내리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이렇게 나 여기 있어— 하고 나올 때면 내 눈엔 그것밖에 안 보인다.
매달 미용실에 가서 염색하기엔 시간도, 비용도 만만찮다. 저렴하고 간편한 방법을 찾다 한동안 셀프 염색도 해봤지만, 모든 직업에는 이유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미용실로 향했다. 버스에서 앞자리 사람의 뒤통수에서 흰머리를 발견하면, 괜히 내 뒤통수가 저릿하다. 내 뒤에 앉은 사람은 솟아있는 내 새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그리고 결론은 항상 같다. ‘그만 미루고 미용실 예약해야지.’
블로그에 내 인생의 온갖 것이 기록돼 있다. 시각장애인 남편, 임용시험 합격, 임신·출산·육아, 우울증, 출판 후기까지. 그리고 이제는 새치 이야기까지. 참, 이렇게까지 써야 하나 싶지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유롭고 싶어서.
글로 써두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마법. 물론 아직 새치를 아무것도 아닌 듯 내려놓으려면 멀었다. 나보다 30년은 더 산 엄마가 이제야 더는 새치 염색을 안 한다니, 나도 아마 30년은 더 이럴 테다. 그래도 조금은, 빳빳하게 솟아나는 새치를 눌러볼 용기가 생긴 것 아닐까.
조금만 버티자. 그리고 2주 후에 염색을 하자. 9월이면 복직을 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