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날, 아이가 본 아빠의 눈

함께 걷는 길, 아이에겐 조금 무거운-

by 루시아

남편의 대학병원 진료 날이다. 그는 6개월에 한 번 이곳에 온다. 나도 함께 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번엔 아들도 함께 왔다.



남편이 진료받는 날은 대학로 데이트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연애 전, 썸을 타던 시절 함께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네 컷 사진도 찍곤 했다. 늘 방학 때 오니, 덥거나 혹은 춥거나. 그런데 이제 아들이 합류했다. 3년 뒤면 초등학생이 될 딸도 곧 따라오겠지.


진료 전엔 검사실을 돌며 그날 정해진 검사를 받아야 한다. 남편 혼자서도 어찌어찌 찾아가긴 하겠지만, 대학병원이라는 낯선 곳의 복잡한 흐름 속에서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늘 내가 함께 온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곳 안과엔 시각장애인은 잘 오지 않는 걸까. 남편은 이곳에서도 ‘시각장애인’ 일뿐이다. 검사실 문 앞에선 더듬더듬 손을 더 뻗어야 하고, “여기에 서세요”라는 말에 잠시 머뭇대면 “여기요, 여기요—”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이 안과라는 사실은, 왜 그들의 말투엔 빠져 있을까. 문득 <폭삭 속았수다> 속 애순과 관식이 대학병원을 찾던 장면이 떠올랐다.


다행히 오늘은 검사 항목이 적어 금세 진료실 앞에 도착해 앉았다. 진료는 지연되어 30분 넘게 기다렸다. 남편과 담당 교수님은 벌써 2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다. 두 사람은 6개월마다 서로의 얼굴에 묻은 세월을 확인하며 만난다. 나도 어느새 이 교수님을 10년째 보고 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란다.


아기띠에 안겨 있던 아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셨던 교수님은 훌쩍 자란 아들을 보며 놀라워하셨다. 아빠가 기계에 눈을 대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본 아들은 "나도 해보고 싶다"라고 했다. 교수님은 흔쾌히 아이도 의자에 앉히고 눈을 봐주셨다. 여덟 살짜리 아이의 장단을 맞춰주신 그 마음이 참 따뜻했다. 덤으로 아이의 눈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는 말씀까지. 물론 정밀검사를 한 건 아니지만, 녹내장 전문이신 교수님의 눈으로 큰 이상이 없어 보인다 하시니 남편과 나는 또 한숨 돌렸다.


아들은 아빠가 잘 안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는 모른다. 어쩌면 당연하다. 10년을 함께 살아온 나조차도 다 알 수 없으니까. ‘잘 안 보인다’는 말로는 그 삶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보이지 않아 불편한 것은 단지 앞의 물건이나 사람을 볼 수 없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터치스크린으로 된 출입문은 혼자 통과하기 어렵고, "여기까지 오세요"라는 안내에 '여기'가 어딘지를 몰라 길을 헤맨다. 놀이터에선 다른 아이의 손을 잡을 수도 있고, 남들이 스크롤 한 번이면 후딱 넘길 화면도 그는 글자 하나하나 더듬어 내려간다. 때로는 ‘보이지 않아 위험하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하기도 하고, 보험조차 가입이 어렵다. 내가 모르는 불편은 아마 더 많을 것이다.


아들은 아빠가 잘 안 보인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아빠의 손을 꼭 잡아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게 여덟 살짜리 아이에겐 조금 무겁고 버거운 일일 수 있다. 나는 그런 아이가 이 감정들을 감내하고 조금씩 소화해 내길 바란다. 그렇게 키워왔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마주하면 마음이 복잡하다. 눈앞의 일들을 처리하는 데 급급한 나날들 속에서,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찜찜함. 그저 바람이 있다면— 이런 경험들이 다른 아이들이 겪지 못할 소중한 자양분이 되어주길.



날이 더웠고, 아침부터 아이는 내 신경을 잔잔하게 긁었다. 물론, 그것을 유하게 넘기지 못한 내 탓이 크다. 그래서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아이와 남편은 늘 한결같은데, 나만 이렇게 변덕스러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며칠째 ‘혼자 있는 시간’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말했다.

“나 00번 타고 도서관 갈게. 너희 둘은 000번 타고 집으로 가.”


눈앞에 00번 버스가 보여 충동적으로 말하고 후다닥 타버렸다.

휴— 그래, 잠깐 떨어져 있자.


하루가 지나고 나니, 그 순간 나를 이겨내지 못했던 내가 부끄럽다. 나 때문에 상처받았을지 모를 남편과 아이가 “엄마 왜 저래~” 하며 둘이 하나 되어 웃고 있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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