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어디 안 나가실까요?

시각장애인 아빠의 공동육아

by 루시아

아이를 남편과 함께 보내고, 나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

그건 엄마에게 주어지는 가장 사치스러운 선물이다.


나는 혼자 있으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편이다. 그런데 아이와 24시간 붙어 있으면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는 금세 바닥을 친다. 그래서 가끔, 아니 사실은 자주,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줬으면 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시각장애인인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나가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운전을 못 하니 드라이브도 어렵고, 대중교통도 한계가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집에서 노는 걸 답답해할 즈음, 코로나까지 겹쳤다. 가까운 가족의 집에 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시기였다.


당시 나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지쳐 있을 때, 남편이 아이와 자신의 본가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당신 좀 쉬어." 그 말에 진심이 느껴져 고마웠지만, 정작 시댁에서는 썩 반가운 방문이 아니었던 듯하다. 주 6일 일하시는 시어머니는 유일한 휴일에 찾아온 손주와 아들이 부담스러우셨나 보다.


어머님의 입장이야 이해된다.

하지만 그땐 내 코가 석자였다.

그 후로 나는 뒤뚱거리며 아이 손을 잡고, 마스크를 쓴 채 놀이터를 돌았다.

그날 어머님의 말이 문득 떠올라 이렇게라도 글로 한번 투덜대본다.


그래도 남편은 집 안에서도 아이와 잘 놀았다.

함께 책을 읽고, 블록을 쌓고, 하루 종일 역할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네 식구가 찐하게 붙어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주변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주고, 글자와 숫자를 읽어주는 게 자연스러워졌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변화가 하나 더 있었다.

남편에게 육아 동지들이 생긴 것이다.


첫 번째 그룹은 어릴 적 친구들이다.

같이 학원을 다니고 오락실을 누비던 이들이, 모두 2n년생 딸을 낳으며 다시 뭉쳤다.

셋 다 아무 일도 없는데 굳이 만나자고 하진 않는다.

뭉치는 날엔 늘 공통점이 있다.

<아내의 부재>


“와이프가 어디 간대. 00일에 뭐 하냐?”

이 한마디로 각자의 집에서 몇 번의 공동 육아가 이뤄졌고, 마침내 1박 2일 여행까지 성사됐다.

주말에 어디 갈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정말, 땡큐땡큐땡큐베리머치.


두 번째 그룹은 남편의 직장 동료들이다.

함께 일했거나,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는 분들.

그중엔 나와 함께 근무했던 분도 있다.

이들은 모두 아들을 키우고 있고, 나이 차이는 두 살씩.

세 아빠와 세 아들이 함께 물놀이장에 가고, 눈썰매장도 간다.

같은 직업이다 보니 주로 방학 때 자주 뭉친다.

가끔은 이쪽도 “와이프가 어디 가서” 만나게 되는 경우라,

나는 속으로 그들의 아내분들께도 늘 감사를 보낸다.


4월엔 남편이 첫 번째 그룹과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아이 없이 잤다.

이틀 전에는 두 번째 그룹 친구들과 물놀이장에 다녀왔다.

아이들의 방학으로 탈진해 있던 나는,

아주 조용하고 기쁜 하루를 보냈다.



남편의 육아 동지들과,

그들의 아내분들께 고한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런데 혹시...

다음 주말엔 또 어디 안 나가실까요…?

아님,

이번엔 제가 나갈까요?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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