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들의 교실에서 알뜰시장이 열렸다.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 10개를 가져가서 팔고, 한 학기 동안 활동을 잘했을 때 선생님께서 주신 칭찬도장을 모아 원하는 것을 샀단다. 작은 손에 칭찬도장을 쥐고 물건을 고르던 아이의 얼굴은 뿌듯함으로 반짝였겠다. 사 온 것들을 모아보니 정말 하찮은데 귀여운 것들이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땐, 차려둔 밥만 잘 먹어도, 응가만 해도 “잘했다, 잘했어” 하고 칭찬을 해줬다. 그게 그 시기의 아이에게는 가장 큰 과업이었으니까. 하지만 자라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은 칭찬의 대상에서 점점 제외된다. 대신 ‘더 잘하길 바라는 것들’에 대한 기대만 커진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칭찬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보다는 타인의 눈길에서 오는 것.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칭찬을 받을 기회는 줄어들고 만다. 밥 잘 먹고 똥 잘 싸는 것도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 일로는 더 이상 사랑의 눈길조차 받지 못한다.
이제는 뭔가 ‘특별한 성과’가 있어야 “잘했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렇다면 매일을 평범하게 살아내는 어른들에게는, 누가 스티커를 붙여줄까?
나는 오늘 알람 소리에 바로 일어났고, 다시 눕지 않았다. 새벽 수영도 다녀왔고,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잘 보냈으며, 헬스장에도 다녀왔다. 집에 와서는 청소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화장실까지 말끔히 닦았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미뤄두었던 병원 진료도 다녀왔다. 점심을 챙겨 먹고, 남편의 서랍장을 정리하고, 저녁 메뉴를 챗GPT와 상의하기까지 했다. 복직을 앞두고 이런저런 수업고민도 해본다.
이렇게 나는 오늘 내가 설 자리를 지키며 잘 살아냈다. 곧 돌아올 아이들도, 한 학기를 보내고 방학을 맞이한 남편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오늘 저녁, 서로에게 칭찬과 격려, 응원을 건네야겠다.
어른에게도 칭찬 스티커가 필요하다. 매 순간 누군가 붙여주지 않더라도, 나라도 나에게 칭찬해 주면 어떨까. 나는 오늘 헬스장에 가서 근력운동을 해낸 내가 자랑스럽고, 햄버거가 먹고 싶었지만 참은 것도 대단하다고 느낀다. 내비게이션 없이 도서관과 병원을 다녀온 것도 말이다.
잘했어, 오늘의 나. 스티커 여러 장 붙여주고 싶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