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과 함께 웃음을 건네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잠버릇이 요란했다. 사람마다 다양한 잠버릇이 있겠지만, 내 잠버릇은 잠꼬대.
거의 매일 꿈을 꾸는데, 불이 나고, 이가 빠지고, 똥을 싸기도 하고 밟기도 하고...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 그런데 그런 꿈들이 나에게 일확천금을 안겨준 적도, 불행을 가져다준 적도 없으니 그냥 ‘개꿈’ 일뿐이다. 문제는 그 개꿈을 꾸면서 소리를 질러댄다는 것.
그래서 수학여행을 가면 은근히 걱정됐다. “혹시 옆자리 친구들 앞에서 잠꼬대를 하면 어쩌지?” 대학생 때 MT에선… 결국 진짜 그랬다.
나는 15살까지 언니와 방을 함께 썼다. 이미 내 잠꼬대에 단련된 언니였다. 고3이던 언니는 책상 앞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나는 벽을 보고 자다가 갑자기 욕을 했다고 한다. 온갖 동물의 새끼들을 부르짖던 내가, 언니가 이름을 부르자 태연하게 “응” 하고 대답하곤 다시 잠들었단다. 아마 언니가 수능을 잘 못 쳤다면, 내 잠꼬대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언니가 대학에 가면서 집을 떠난 뒤엔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잠꼬대를 실시간으로 듣는 사람은 없었지만, 방문을 뚫고 나갔는지는 알 수 없다.
결혼 후엔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남편에게 욕을 하면 어쩌지? 싶었는데, 올해로 결혼 10년 차, 남편은 이미 언니처럼 단련된 지 오래다. 내가 욕을 퍼부으면 그는 “스트레스 많나 보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옆으로 돌아눕는다. 언니와 남편이 만나면 가끔 이런 대화를 나눈다.
“00이 잠꼬대 진짜 심하지 않아?” 그러면 서로 자기가 겪은 에피소드를 풀어놓는다.
아 몰랑. 나는 모르는 일인걸?
아들과 얽힌 일도 있다. 꿈속에서 아들이 “엄마!” 하고 불러서 내가 “왜?” 하고 대답했는데, 대답이 없길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 소리에 진짜 아들이 놀라서 깨어났다. 부스스 눈을 뜬 아들이 “엄마, 왜?” 하고 불렀다. 엄마야, 아들아 미안, 얼른 다시 자라...
지난주엔 본가에서 언니와 20년 만에 같은 침대에서 잤다. 낮에 잠깐 ‘회초리’라는 말을 스쳤는데, 그게 꿈에 나왔다. 꿈속에서 나는 회초리를 들고 골프채 휘두르듯 풀스윙을 했는데, 그와 동시에 눈을 떠 보니 곤히 자던 언니를 때린 것이었다. 언니는 자다가 날벼락을 맞아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나는 다급하게 언니의 이마를 문질렀다. (사실은 손목을 맞췄다고 한다.)
“언니야, 미안해 미안해...”
언니는 얼떨떨한 얼굴로 “어... 괜찮아...” 하고 중얼거리더니 무의식적으로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상황 파악이 된 나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아 꾹 참고 반대쪽으로 누웠다. 끅끅 웃음을 참다 겨우 다시 잠에 들었다.
아침에 눈이 마주친 우리는 결국 한참을 웃었다. 30년 묵은 원한을 꿈에서 풀어낸 걸까? 언니는 “제부가 불쌍하다”는 말을 남겼다. 아마 앞으로 언니와 나란히 누울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 잠꼬대 덕분에 가족들과 웃을 일이 하나씩 생기니,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내 꿈은 여전히 이 모양이지만, 언니와 깔깔 웃으며 하루를 시작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