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올해 7살이 되었다. 어느새 7년 차 부모가 된 우리. 다음 달이면 36개월이 되는 둘째도 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우왕좌왕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 돌봄이 손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육아 만렙이라 할 순 없지만 아빠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나가는 것이 걱정되지는 않는, 시각장애인 아빠의 요즘 육아생활은 어떠할까?
신혼 때부터 요리부터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모두 내 몫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내 몫이다.
그런데 한창 연수가 많아서 저녁 육아를 남편에게 맡겼던 어느 가을 아이의 하원 길에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아들: 엄마는 요즘 왜 자꾸 늦게 와요?
나: 응, 선생님들이랑 공부하는 게 있어서~
아들: 엄마가 늦게 오면 엄마가 하는 일을 아빠가 해서 아빠가 힘들잖아~
아이의 말을 듣는데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래 개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분리수거, 여름엔 제습기 겨울엔 가습기 담당, 그리고 청소 정도는 남편이 해왔다. 나는 그 모두를 포함한 집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를 총괄하고 있으니 내 일이 맞긴 하다만... 사실 내가 하는 게 편하고 더 나아서 후딱 해치웠던 것인데 아이들에게는 <집안일=엄마의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편이 집안일 업무분장에 있어 나에 비해 적은 일을 담당하는 것은 맞으나 어느 정도 협의된 일인 데다 해달라고 하고 그 방법을 알려주면 자신이 하는 것에 큰 불만을 느끼는 편은 아니기에 내가 집안일을 더 하는 것에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녀석들이 커서 알아서 집안일을 할 리가 만무겠지. 조금 더 크면 엄마의 일을 그저 '도와준다'라고 생각하겠지. 나중에 결혼하면 아내에게 이게 왜 내 일이야? 하겠지!!!!! 이렇게는 안된다. 이렇게는 안된다!!!!!
그렇지만 집안일 업무분장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맞벌이 부부이기에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씩 조용히 계산적으로... 넘겨보기로 한다. 그래서! 첫 번째는 주말 하루 점심 준비하기. 외출을 하지 않는 토요일 또는 일요일의 점심만큼은 아빠가 준비해 보기로 한다. 불 조절을 잘하지 못하는 남편은 계란 볶음밥을 해보겠다고 하다가 파를 다 불태운 지옥에서 온 계란 볶음밥을 만들기도 했고(나는 파가 김인 줄 알고 먹음), 얼마 전 내가 독감에 걸린 날 떡국 피자를 만든다고 하다가 다 태워먹고 불 낼 뻔했던 전적이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려는 의지가 있고 나도 주중에 하던 식사 준비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에게 넘겼다. 어느 정도 만족스럽다.
그래! 육아하는 아빠라면....! 냉장고 속 음식으로 아이들 식사 정도는 챙겨줄 수 있어야지!
남편이 가장 잘하는 것은 아이들과 역할놀이하는 것이다.
나는 역할놀이에 가장 쥐약이다. 너무 재미가 없다!!!! (얘들아 미안)
그렇게 놀이를 하다 보면 자꾸 해야 할 일들(집안일)이 생각나 자리를 뜨기 일쑤.
그에 비해 남편은 아이들과 짝짜꿍을 잘 맞춰 손님도 되었다가 사장님도 된다.
기타를 치면서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고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난닝구 미안해요
책도 열심히 읽어준다.
이제 한글을 잘 읽는 아들은 아빠에게 책도 읽어준다.
(잘 못 받지만ㅋㅋㅋ) 캐치볼도 공놀이도 하고 자전거 코치도 한다.
아이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일도 많지만 이젠 아이가 자신 앞의 세상을 하나 둘 설명해 준다.
아빠가 잘 안 보인다는 걸 눈치로 깨달은 둘째는 이삿짐센터 차가 들어온다고 주차장에 설치해 둔 줄을 보고 아빠에게 조심하라고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