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상처를 마주할 때
상처는 누구에게나 생긴다. 다들 이런저런 상황에서 크고 작게 다친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인 남편은 유독 더 많이 다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남편의 상처에는 내가 더 욱신거리는 걸까.
신혼 때였다. 동네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온 남편은 안경이 휘어지고, 미간과 코가 까진 채였다. 코가 안 부러진 게 기적이라며 태연하게 웃는데, 나는 손을 벌벌 떨며 울먹였다. 전봇대와의 정면충돌. 누가 봐도 남편이 졌다. 놀란 나를 보며 그는 실없이 웃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그 얼굴이 더 속상했다. 그 웃음 안에는 ‘미안’과 ‘익숙함’, ‘어쩔 수 없음’이 묻어 있었다. 그는 얼마나 많은 전봇대들과 이기지 못할 싸움을 해왔던 걸까. 그의 몸보다, 그 마음이 더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지난달엔 첫째 손을 잡고 둘째를 데리러 가다, 학교 앞 돌에 정강이를 부딪혔다. 아들은 재잘재잘 무언가를 설명 중이었고, 남편은 그 돌을 보지 못했다. 속마음으론 다리를 부여잡고 뒹굴고 싶었을 것이다.
아들은 이제 아빠 손을 이끌며 앞에 있는 장애물을 알려준다. 사고가 나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상처를 살핀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시각장애인 아빠와 함께 걷는 임무가 아이에게도 막중하다는 걸 깨닫는다. 시행착오 끝에 아들은 점점 ‘작은 안내인’으로 자라나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아빠의 상처는 계속 늘어난다.
그저께는 싱크대에서 수건을 잡으려다 식기건조대 모서리에 눈을 찧었다. 그 눈은 유일하게 ‘보이는’ 왼쪽 눈이었다. 조금만 빗맞았어도 큰일이었다. 속으로 백 번은 외쳤다. '으아 이제 제발 그만!!!' 며칠 전엔 옷걸이에 찔린 그 눈이었다. 옷 정리를 하다가 흰자에 피가 고였다. 남편의 왼쪽 눈은 늘 바쁘다. 유일하게 보이는 눈이니 이것도 보고 저것도 하다 보니, 더 자주 다친다. 아 맞다, 지난 설엔 8년째 드나드는 친정집 대문에 부딪혔다. 안경알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고, 흰자엔 또 피가 고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좀 더 봐줬어야 했나’ 싶은 마음이 먼저 올라오고, 곧 ‘이걸 내가 다 어떻게 봐줘’ 하는 억울함이 따라온다. 그리고 그 감정은 엉뚱하게도 남편에게 튄다. 정작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남편에게 ‘눈’은 단순한 시력이 아니다. 나에게도 그렇다. 그 눈은 우리를 잇고, 서로를 확인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 눈이 다칠 때마다, 나는 무너진다. 그래도 함께 한 지 10년이 지나며 이제는 조금 덜 호들갑스럽다. 아이들 앞이라 내색도 줄였다. 다치지 않길 바라면서도, 다쳤다면 얼른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약상자를 꺼낸다.
가끔은, 남편의 남은 한쪽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될 날을 상상한다. 그의 질환은 진행성이기에, 그런 상상은 괜한 걱정만은 아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그런 날이 오면, 나는 또 얼마나 미안해하고 죄스러워할까. 그 상상을 밀어낼 누군가가 “네 탓 아니야. 괜찮아.”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지겹도록 자꾸 듣다 보면, 정말 괜찮아질지도 모르니까.
오늘도 남편의 상처에 후시딘을 바르며 “조심 좀 해!” 쓸모없는 말을 던진다. 이 말도 언젠가는 죄책감이 되어 나를 찌르겠지. 그러니 오늘 저녁엔, 조금 더 다정하게 발라줘야겠다. 그리고 그의 눈, 부디 오래오래 무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