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수저를 든 남편
남편은 “뭐든지 다 좋아” 스타일이다. 분명 모양이 있지만, 아닌 척하며 자신의 모양을 상대에 맞추려 한다. 동그라미도 되었다가, 세모도 되었다가 하면서. 그런 남편이 예전엔 편하고 좋았는데, 이제는 “나 다 좋아. 네가 좋아하는 거 해.”라는 말이 가끔은 답답하게 느껴진다.
10년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나는, 그가 좋아하는 것이 분명히 보이면서도 하나둘 새로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아, 나이가 드는구나’ 하고 세월을 실감하곤 한다.
그 오랜 관찰 끝에 확실히 알게 된 게 있다. 남편은 달걀을 정말 좋아한다.
우리 냉장고엔 늘 달걀이 있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주 먹기도 하지만, 그 모든 걸 빼고 봐도 남편은 순수하게 달걀을 좋아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취향 하나에 대해 써보려 한다.
보통 집을 오래 비울 땐 카레나 곰탕을 끓여놓고 나간다고들 하지만, 우리 집은 다르다. 달걀장조림을 만들어둔다. 남편만 집에 남겨두고 나갈 일은 거의 없지만, 가끔 친정에 나 혼자 내려가거나 저녁 약속으로 함께 식사를 못 하는 날엔, 나는 달걀 한 판을 사 와 장조림을 만들었다. 달걀을 삶아 그에게 건네면, 그는 껍질을 벗긴다. 그 달걀로 장조림을 만들어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으면, 외출 준비 끝이다.
혼자 있으면 밥도 잘 안 챙겨 먹는 그지만, 밥과 달걀장조림만 있으면 만사 해결이다. ‘알아서 먹겠지’ 싶다가도, 평생 아버지 밥을 챙기던 엄마를 보고 자란 탓인지, 달걀장조림 없이 나온 날엔 괜히 신경이 쓰인다. “남편 밥은?” 하고 묻는 이들도 한몫했다.
식사 준비 전 “뭐 먹고 싶어?” 하고 물으면, 늘 “다 좋아.” “김치만 있어도 돼.”라고 말하던 사람이다. “정말 김치만 먹어볼래?” 하고 되물었던 적도 많다. 그런 남편이, 단 한 번 정확하게 말한 것이 있다.
“달걀장조림 먹고 싶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 이건 진짜구나.
그런데 그는 단지 밥반찬으로 달걀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언젠가 밥솥으로 구운 달걀을 만든 적이 있었다. 우리는 늘 있는 재료로 대충 아침을 먹는 편인데, 그 구운 달걀을 무척 맛있게 먹기에 한동안 아침 식사로 정착됐다. 하지만 매일 만들긴 부담스러워 인터넷에서 주문해 봤더니, 그는 매일 아침 두 알씩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지겹지도 않은지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나도 한 번 꽂히면 계속 먹는 편이라 이해는 가지만, 질릴 때도 있다. 이제 다른 걸로 바꿔볼까 고민도 했지만, 까치집 머리를 하고 달걀을 까는 남편을 보면 차마 그러질 못한다.
그런 아빠를 보며 아들이 묻는다.
“아빠는 달걀이 그렇게 좋아?”
“응, 아빠는 달걀 먹을 때 행복해.”
“왜?”
“그냥. 너도 먹어봐.”
“난 자꾸 먹으니까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아.”
심지어 달걀이 행복이란다.
어릴 땐 달걀 하나만 먹는 게 당연했다는데, 지금은 두 개를 먹으면 사치 부리는 것 같단다.
무슨 기분인지 나도 안다. 우리 둘 다, 달걀 두 개가 사치이고 낭비였던 그런 어린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이겠지.
꽤 오랫동안 구운 달걀을 주문해 먹다가 문제가 생겼다. 실온 보관을 권해서 그렇게 했더니, 기온이 오르며 달걀이 상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문제는 곰팡이나 냄새 같은 걸 시각장애인인 남편이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이 남자는 눈도 문제지만 코도 심각하다.) 몇 번 그런 일이 생기고 나선, 도저히 계속 주문할 수 없었다.
달걀은 남편의 행복인데, 어쩔 수 없지. 그래서 아침마다 내가 달걀을 삶는다.
달걀 삶는 기계를 하나 샀다. 새벽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남편이 미리 꺼내 씻어둔 달걀을 기계에 넣는 일이다. 내가 늦잠을 자는 날은, 남편이 그 ‘행복’을 먹지 못하고 출근하는 날이 된다. 물론 남편도 혼자 할 수 있다. 하지만 괜히 내가 챙겨주고 싶다.
오늘도 살짝 늦게 일어나, 바로 수영장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달걀을 삶느라 조금 늦었다. 그런들, 뭐 어떠랴.
남편은 오늘도 달걀을 먹었고, 나도 수영장에 갔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너에게 수억을 벌어다 줄 순 없어도, 매일 난각번호 1번 달걀을 사다 바치진 못해도,
달걀은 끊이지 않게 삶아줄게.
달걀 수저를 든 남편을 위해, 오늘도 달걀을 사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