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이야기, 안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 편해지기까지

by 루시아

안녕하세요. 오늘은 잠시 브런치 글쓰기를 쉬어갑니다.

대신 지난주 제가 썼던 글에 대해 남편의 이야기가 궁금해 물었더니, 짧은 글을 하나 써서 주었네요.

https://brunch.co.kr/@brunch-of-lucia/92


늘 남편의 동의 없이 그의 상황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웠어요.

상황상 필요한 이야기였지만, 사실 제가 필요해서 그랬기에 그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 저의 물음에 돌아온 그의 답은 이 글이었습니다.

오늘 글은 남편의 이야기로 대체할게요. :)



나는 내가 장애인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어느새 인생의 절반 이상을 장애인으로 살게 되었다. 과연 나는 내 장애를 얼마나 인정하며 살고 있는가?

어쩌면 이제는 안 보이는 것이 너무 당연해져서, 그냥 내 소개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처음 장애인 등록을 하고 나서는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 지하철에서 복지카드를 내밀고 경로우대권과 똑같이 생긴 지하철표를 받아 타는 것도 부끄러웠다. 한동안은 돈을 내고 지하철표를 사다가, 돈이라도 아끼자는 마음으로 복지카드를 내고 지하철표를 받았다. 이렇게 지하철표를 직접 역무원에게 받아서 다니던 시절도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긴 했지만...


그렇게 지하철표 하나 받는 것도 낙인찍히는 것 같아 불편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눈동자나 외관에서도 그렇게 티가 나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장애를 설명하지 않으면 잘 몰랐다. 그래도 지금보다 시력이나 시야가 더 나쁘지 않았어서 보행이나 행동에서 티가 많이 안 났기 때문에, 내가 안 보이는 상황에 대해서 더 많은 설명을 해야 했다.

기차를 탈 때 승강장을 찾고 내가 타야 할 기차의 칸까지는 찾아서 탈 수 있었지만, 기차의 좌석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그때는 좌석을 일일이 손으로 세어가며 대충이나마 내 자리를 찾았다.

지금은 기차를 타러 가면 당연히 이동 도우미를 요청하러 간다. 내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정확한 플랫폼과 기차의 칸, 자리까지 앉혀 준다. 심지어는 내릴 때가 되면 오셔서 플랫폼까지 내려 주시고, 그곳에서도 역무원이나 사회복무요원이 나와서 친절하게 역 주변 행선지까지 안내해 준다.


이제는 안 보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편하다.

그만큼 장애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되기도 했을뿐더러, 내 눈도 예전 같지 않다.

이제는 병원이나 상점, 길거리를 가도 내가 시각장애인인 것이 티가 난다. 나의 보행과 행동을 보면 누군가가 ‘이 사람이 왜 이러지?’라고 의아해했다가도, 나의 눈을 보면 “아, 안 보이세요?”가 자연스럽게 된다.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이젠 내가 안 보여서 불편한 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도 안 보이는 내가 불편할 수도 있다.

이제는 그 불편함을 줄여가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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