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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pr 16. 2024

꿀벌과 봄과 할아버지와 나



다시, 봄이 왔습니다. 그 풍경은 익숙한 듯하지만 미묘한 낯섦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의 레이어가 봄의 세상을 얇게 덮었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지나간 봄의 층위를 우리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그림책 속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말이죠.


할아버지는 이른 봄, 너무 일찍 세상에 찾아온 어린 꿀벌을 발견합니다. 꿀벌은 날개에 이는 초봄 바람에 몸을 떨고 있었죠. 할아버지는 그런 꿀벌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밉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당신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것은 올해의 봄, 지금의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몸짓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꿀벌에게 물을 주고 벌 옆에 예쁜 꽃도 한 송이 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창밖을 보는 것을 좋아할까 싶어,

새 그림책을 넘기는 것을 좋아할까 싶어. 꿀벌에게 봄의 풍경과 봄의 그림을 선물했습니다.


창밖을 보는 것을 좋아하던, 새 책을 보는 것을 설레던. 하지만 더는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바삐 떠난 자신의 아이를 생각하면서 말이죠.


할아버지는 꿀벌과 봄의 세상을 돌아봅니다. 한때는 아이와 함께 바라보던 봄의 세상을 돌아봅니다. 그 풍경은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꽃이 있던 자리에는 꽃이, 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나무가, 집이 있던 자리엔 집이, 벤치가 있던 자리에는 벤치가…. 여전히 있었습니다.


사라진 것이라곤 하나뿐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가 어찌나 큰지…. 파스텔 톤으로 가득 칠해진 봄의 세상이 어쩐지 너무 허해 보입니다. 마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것처럼.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할아버지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앞으로 몇 장의 레이어가, 몇 번의 봄이 지나면 채워질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도 우리도. 아직 이 질문의 답을 찾기엔 시간이 더 필요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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