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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pr 19. 2024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cm.

이것은 빠른 속도일까요, 느린 속도일까요. 이 질문의 답은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라 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벚꽃 떨어지는 거리를 걷고 싶은 이들에게는 거북이처럼 느린 속도일 테고,

주말까지 이어지는 업무를 마치지 못한 채, 아이와 벚꽃을 보러 가겠다 약속한 부모에게는 너무나 빠른 속도겠죠.


이렇듯 속도는 상대적입니다. 그렇기에 기다림도 상대적입니다. 신카이 마코토 기자의 애니메이션 <초속 5cm> 속 주인공 소년 타카키는 영화 속에서 수없는 기다림의 순간을 마주하는데요.

그때마다 속도는 다르게 흘렀죠 .


짝사랑하는 소녀 카나에의 편지를 기다리는 시간은 도무지 가질 않았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전철을 타고 먼 길을 갈 때는 그 빠른 전철이 나무늘보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카나에를 만나고 밤을 새우던 새벽의 시간은 질투의 신인 바늘을 돌리는 듯, 빠르게. 또 빠르게 흐르기만 했습니다.


그 하루의 시간이 끝나자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 그 시간은 몹시도 오래 걸렸습니다.

두 사람이 어른이 되고, 회사에 가고, 또 다른 사랑하는 이를 만날 때까지. 재회는 아주 오래 걸렸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철길을 하나 두고 마주한 두 사람. 그 사이로 아주 빠르게 한 대의 기차가 지나갑니다. 타카키는 맞은편에 선 그녀가 정말 그녀일지 생각하며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렸죠. 한없이, 또 하염없이.


전철이 이토록 느린 존재였나? 타카키는 생각합니다. 그 야속한 시간이 가고 마침내 기다림의 끝. 기차가 철길에서 사라지자, 그 위로 벚꽃이 떨어집니다.


과연 타카키는 긴 기다림의 끝에서 원하는 속도를 마주할 수 있었을까요? 질문의 답은 찾기 위해 우리도 함께 전철이 다 지날 때까지, 벚꽃이 다 떨어질 때까지 타카키와 함께 서 기다려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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