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여어.”
“여어.”
뭐가 신났는지 짓은 요리조리 점프를 하며 다가왔다. 베야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 뒤, 그가 던져준 사과 한 알을 의미없이 돌려본다.
“제사 지내세요? 어서 한 입 드시죠?”
짓은 사과를 시원하게 한 입 베어불며 말한다. 베야는 사과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허나 아침을 거른터라 한 입 베어문다. 짓은 장난칠 일이 생각났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베야를 쳐다본다.
“맛있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맛. 이 녀석은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사과를 가져오는 걸까? 베야는 애써 대답을 피하며 한 입 더 사과를 베어먹는다.
“이번엔 누구 가게에서 훔친거야?”
짓은 도둑이자 장사꾼이었다. 팔 수 있는 건 뭐든지 파는 ‘바자르’에서 그는 팔 수 있는 물건을 훔치고 그것을 되팔았다. 모든 것이 엄격한 ‘바자르’지만 사고 파는 일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했다. 팔고자 하는 목적의 행동이면 대부분 눈을 감아주었다. 도둑질도 그 중 하나였다. 훔치는 이가 그것에 가책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될 것은 없었다. 짓은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쪽이었다.
“이건 말하자면 순환이지, 순환.”
짓은 도둑질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베야에게 ‘순환’이라는 단어를 꺼내 놓았다. 사실 그것은 베야가 알려준 단어였다. 짓은 아는 단어가 많지 않았다. 도둑질에 단어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야를 만나고난 뒤로 짓은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것에 재미가 들렸다. 물론 그 중 대부분은 “너같은 샌님한테나 필요한거지.” 라는 놀림 혹은 경멸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베야는 모르지 않았다.
“또 그 눈! 눈!
짓은 가늘게 뻗은 내 눈을 양 손으로 더 찢으며 말했다.
“오늘은 우리 골목을 위해 형님께서 이 한 몸 붙태운거니까. 고마워하면서 먹기나 하셔. 그딴 요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고.”
베야는 답하지 않고 눈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한 입 더. 사과를 베었물었다.
“우리 골목을 위한다는게 무슨 말이야? 네가 그런 선행을 할리가 없잖아.”
짓은 선행이라는 단어를 모르는지 잠시 뚱한 표정으로 베야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아무렴 어떻냐는듯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이게 그 무시무시한 66번 바자르에 있는 사과가게에서 훔쳐온 사과란 말씀이야.”
“66번 바자르?”
66번 바자르은 13번 골목인 베야의 바자르와는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베야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고 대부분 바자르 사람들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시장 사람들은 평생 자신의 바자르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는데 필요한 것은 모두 바자르 안에 있었다. 필요한 모든 것이 충족되는 이상 애써 다른 바자르를 향해 미로 골목을 나설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랜드 바자르의 거대한 '닫힌 문'은 시시각각 위치가 달라진다고 한다. 같은 문을 통과해도 그 너머가 자신이 원래 왔던 곳이라는 확신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 먼저. 문이 어디있는지 알 수 없어 헤매는 것이 당연한 곳이었다. 닫힌 문. 그 거대한 것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람바 할아버지의 특별한 호롱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자르 내에서 단 두 사람. 람바 할아버지와 짓 뿐이었다. 람바 할아버지는 호롱을 만들고 파는 일을 했으니까 당연했지만 짓은 알 수 없었다. 베야가 아무리 물어봐도 그것만큼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좋은 거래가 있었다 말할 뿐이었다.
"그게 있으면 다른 바자르에 갈 수 있는 거야?"
베야가 물었다.
"그런 셈이지. 물론 이것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야. 왜 너가 예전에 뭐라 그랬더라. 막 불끈불끈하고 그런거?"
"... 용기."
"그래, 용기. 그것도 필수지."
짓은 과장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그럼 안되겠군."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베야는 시선을 멀리 했다.
"어설퍼."
사과를 한 입 더 베어문 짓이 말했다.
"뭐가?"
"네놈의 연기. 그런 눈을 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누가 믿어주냐. 넌 어째 장사한 지 몇 년인데 아직도 눈빛 관리가 안되는 거야?"
교활, 능청, 탐욕, 계략... 바자르 사람들은 그런 단어를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쉽게 그것을 드러내고 또 감출 줄 알았다. 본능 같은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베야는 그런 표정을 짓지도 그런 마음을 품지도 못했다. 그런 베야를 보며 람바 할아버지는 "그게 너란 사람이니까." 라며 베야를 나무라지 않았다. 제대로 장사를 하지 못하는 것쯤은 별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럴때마다 베야는 생각했다.
"왜 상관이 없는거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