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Sep 13. 2024

【소설】그랜드바자르 #3. 람바 할아버지

 3. 

 침대가 젖었다. 식은땀이었다. 꿈을 꾸고 일어날 때면 언제나 한기가 느껴졌다. 베야는 이불을 끌어 당겼다.

 

 “또 꿈을 꿨어요?” 


 옆 침대에 누워있던 스탄이 물었다.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쓰지 못한 스탄은 남들보다 적게 보며 자랐다. 그것이 분해서였을까? 스탄은 시야에 든 모든 것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베야도, 람바 할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스탄에게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다. 베야는 스탄의 모든 것을 모르는데 스탄은 베야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베야는 그것에 포근함과 오싹함을 동시에 느꼈다. 저 아이가 베야의 동생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후자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탄은 베야에게 있어 둘도 없는 동생이다. 스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 아이는 언제나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 믿음이 베야와 스탄을 함께 잠들게 했다. 


 “아침은 아직 멀었어요. 더 자도 괜찮아요.”


 옷을 갈아 입는 베야에게 스탄이 말했다. 스탄은 시간을 잘 아는 아이 중 하나였다. 

 시간. 아무리 연습해도 베야는 그것이 어려웠다. 바자르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가 없었다. 해가 들지 않아 그림자도 없었다. 쥐새끼가 분주해지면, 고양이가 기지개를 펴면, 어디서 들어왔는지 신기한 새들이 오가면 몇시쯤 되었겠구나 예측할 뿐이었다. 하지만 감이 좋은 아이들은 시간을 정확히 파악할 줄 알았다. 바자르 사람들은 그런 아이들을 두고 쓰잘데 없는 재주가 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부럽기라도 하다는 듯이. 아니면 애를 쓰기라도 한다는 듯이. 

 바자르의 어른들 중 시간을 정확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어른이 되면 퇴화되는 능력 중 하나가 그것이 아닐까 싶었다. 귀여움이나 순진함, 맑은 눈빛 같은 것처럼. 


 ‘저 아이도 언젠가 그 모든 것을 잃게 되겠지?’ 


 베야가 그런 생각을 할때면 혀 끝으로 불쾌한 신맛이 올라오곤 했다. 


 “이미 깨버렸으니 오늘은 조금 일찍 시작하지 뭐.” 


 스탄은 베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해도 좋다는 표정. 베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스탄은 이불을 끌어 올렸다. 베야는 방을 나섰다. 벽에 걸린 싸구려 조명을 켠다. 그러자  낡은 나무 계단이 모습을 보였다. 삐그덕 대는 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오르자 가게의 조명이 베야에게 인사라도 하듯 살짝 흔들렸다. 베야는 더듬더듬 몇 개의 전등을 더 켰다. 아무리 켜도 가게 밖이 보이진 않았다. 빛이 어딘가에 가로 막히기라도 한듯 밖은 언제나 캄캄했다. 그러다 빛이 일제히 밖으로 빠져나간다. 람바 할아버지였다. 


 “왜 벌써 일어났어?” 


 람바 할아버지는 예의 그 굽은 등으로 천천히 가게에 들어섰다. 할아버지의 손에는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푸른 호롱이 들려있었다. 할아버지는 호롱을 들더니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등이 꺼졌다. 


 “또 어딜 다녀오신 거예요. 체력도 없으신 양반이.” 


 베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활동 시간은 언제나 새벽이었다. 그렇다고 스탄이 말해주었다. 베야는 어린 시절, 뭐가 그리 불안했는지 밤잠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베야에게 매일 핀잔을 주곤 했다. 새벽까지 깨있으면 키가 안큰다는 둥, 그러다 귀신과 눈이 맞으면 잡아 갈거라는 둥… 어린 베야가 듣기에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물론 키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베야를 눈 감게 했다. 


 “새벽 부터 안자고 돌아다니시면 키 안커요 할아버지.”


 베야는 할아버지의 호롱을 받아 들면서 어린 시절의 복수라도 한다는 듯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자 람바 할아버지는 부쩍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나이에 더 크면 뭐할라고?  


 할아버지의 외투를 받아 정리하다가 문득 궁금해진 베야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몇 살이나 됐는데요?” 


 “…” 


 람바 할아버지는 답없이 허리를 펴더니 긴 하품을 했다. 


 “볕도 안드는 바자르 주제에 새벽에 움직이면 역시 피곤 하구나. 난 한 잠 길게 잘테니 가게 잘 보고 있거라.”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행동을 했을 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는 2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갔다.


“내가 맞먹을까봐 안 가르쳐주는 건가?” 


 바자르 사람들의 나이는 두 개의 합으로 정해졌다. 하나는 키, 다른 하나는 아는 단어의 갯수였다. 키가 크면 클수록 어른이었고, 아는 단어가 많을수록 어른이었다. 키가 크고 아는 단어까지 많은 사람은 바자르의 큰 어른이 된다. 람바 할아버지는 키가 무척이나 컸다. 그 키는 어린시절에도 비슷했다고 하니 할아버지는 꽤 일찍부터 어른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단어를 아는 것에는 크게 힘을 쓰지 않은 모양이었다. 람바 할아버지는 그것을 늘 부끄러워했다. 부끄러움의 마음도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베야가 알려준 뒤부터 들기 시작했다. 베야는 람바 할아버지와 반대였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아는 단어는 많았다. 그래서 또래로 추정되는 아이들에게서도 언제나 형이나 오빠 대접을 받았다. 단 한 녀석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 녀석을 생각할때면 베야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지끈 거리다’라는 말도 모를 녀석이어서 더 골치가 아픈 녀석. 베야는 고개를 저었다. 


“주제에 키는 커가지고….” 


-계속

이전 02화 【소설】그랜드바자르 #2. 꿈을 꾸는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