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베야는 한참을 고민하다 짓에게 말했다. 자신이 요즘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를.
"몽유병? 그게 뭐야?"
짓은 처음 듣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짓는 표정으로 베야를 바라봤다.
"잠을 자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거지. 그리고 나도 모르게 돌아다니는 거야."
베야가 말했다.
"돌아다녀? 어딜?"
"모르겠어."
짓은 미간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러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자동으로?"
베야도 그것이 궁금했다. 꿈을 꾼 날, 베야의 발은 더러웠다. 마치 길거리를 맨발로 돌아다닌 것처럼. 그것은 명백한 증거였다. 하지만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또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침에 깨면 더러워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조차 잠든 채 거리를 걸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하지만 잠든 채 거리를 걷지 않아다는 증거로도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베야는 가설을 세웠다. 탈리아와 이름모를 여인의 꿈을 꾸는 날. 왜 그런날엔 몸이 더러워진 채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꿈이 아니지 않았을까? 탈리아의 노랫소리도 이름모를 여인의 흐느낌도 전부 현실인 것은 아니었을까? 의식은 없었지만 실제 그곳에 가서 그 모습을 목격한 것은 아니었을까? 베야의 첫 번째 가설은 이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의 분기가 생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일까? 베야는 어떤 가설로도 이 분기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의식 없는 채로 갔으니까 의식 없는 채로 돌아올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베야의 가설을 듣던 짓은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실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너 혹시 가죽 가게의 케말을 알고 있어?"
"그 뚱뚱이?"
"맞아. 케말은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어. 가죽에 특별한 염료를 사용해 빛의 수를 놓을 수 있는 능력이지. 더 놀라운건 그 빛의 자수를 볼 수 있는 건 어린 아이들 뿐이라는 거야."
짓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맞아! 그거 때문에 애들 데리고 온 손님들이 줄을 섰더라니까. 자기들은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 비싼 돈을 주고 마구 사더라고."
베야는 조심스레 가방을 열어 통 하나를 꺼내 보였다. 짓은 왠 빈병이냐는 표정이었다.
"뭐야, 넌 안 보여?"
짓은 헛기침을 했다.
"아아~ 그 염료구나. 난 또 뭐라고."
베야는 의심스런 눈으로 염료를 흔들어 보였다.
"무슨 색이야 이게?"
짓은 작은 개미라도 본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글쎄? 하얀색?"
짓은 염료를 보지 못했다. 그렇다는 것은 짓은 어른이라는 말이었다. 베야가 알기에 짓은 자신과 별 차이가 없는 줄 알았는데, 어른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아무튼 이게 그 염료야."
짓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너? 그거 어디서 났어? 산 거야?"
베야는 다시 가방에 염료를 집어 넣으며 말했다.
"그럼 샀지. 너처럼 훔쳤겠어?"
짓은 어깨를 으쓱했다.
"수메르 램프 하나와 바꾼거야."
"수메르 램프? 그거 엄청 비싼거잖아. 나도 훔치고 싶어서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어쩐지 람바 할아버지 가게에서 안보이더니만. 그럼 케말네로 가봐야겠군."
베야는 이 와중에도 도둑질 계획을 세우는 짓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이걸 잠들기 전, 신발에 발라뒀어."
"신발에? 왜?"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했으니까."
베야는 신발에 빛이 나는 염료를 발라두었다. 그러면 걷는 내내 염료가 바닥에 묻을 것이고, 다음 날, 염료를 따라가면 꿈 속의 장소가 나올 것이었다.
"그래서, 거기가 어디였어?"
짓은 베야의 곁에 조금 더 붙으며 물었다. 그런 짓을 보며 베야가 말했다.
"벽."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