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콘텍스트 상황에서 로우 콘텍스트로의 변화

쉽지 않고 지치기 쉽다

by 오늘의 나

한국은 하이 콘텍스트 사회라고 한다. 단일 민족으로써 '아' 하면 '어' 하고 알아듣게 되는 상황이 많았던 사회였다. 그래서 '그려? 기, 거시기' 같은 말이 쓰였고 아무 문제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다.


세대 간에 있어서도 유교사회에서의 소통은 엄격하게 예를 따라야 했기에 계층 안에서 혹은 세대 안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양방향이거나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둘째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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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내 나이 30 언저리까지 나는 하이 콘텍스트 분위기에서 지내왔던 것 같다. 그것은 효율적이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불필요한 소통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선택의 결과였기도 했고, 그 때문인지 내 나이에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수준이 높았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IT 직업의 특성상 지속적인 공부가 필요했는데, 나는 그 직업을 임시로 생각했지 내 <분야>로까지는 여기지 못했다. 그래서 내 분야로 생각되는 작가가 되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게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이야...


직장생활을 거친 30대 후반의 나이에 20대 중후반의 어린 학생들과 협업을 해서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그 상황은 로우 콘텍스트의 모든 나쁜 경험을 가능케 했고, 회사생활보다 더 질 떨어지는 정치질을 하는 일부 교수들 덕분에 대학원 졸업 때는 거의 항암치료 중인 환자처럼 비썩 말라있었다.


이후, 프로젝트 매니저로써 인도인들과 몇 번 일을 하게 됐는데, 그 소통의 어려움은 따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이기에 따로 다루고자 한다.


어쨌거나 그러한 몸살 어린 소통을 끝내고 올 1월부터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던 나는 이제 치매끼 있는 부모와의 소통을 하면서 가족 모두와 소통을 전면적으로 시작해야 했는데, 이건 뭐...


지난 어떤 소통의 어려움이건 그것을 훌쩍 능가하는 종류의 핵폭탄이었다.

그 특징을 살펴보자면,


1. 직설표현 필요

어떤 일이건 로우 컨텍스여야 소통이 됨. 가령,

'이 카톡방을 나가는 이유는 내가 모든 질문에 답할 의무와 여력이 없기 때문이야' (어떻게 한 프로젝트 안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한국과 인도의 거리보다 가족 간에 더 먼 거리감을 느꼈다)


2. 구조화

우선순위 안에서 간결한 표현을 해야 함. 가령,

'A인지 B인지 골라' (누군가 총대를 메고 이렇게 안 하면, 그날의 일정은 결코 끝날 수 없다)


3. 반복

어떤 일이건 반복이 필요. 가령,

'병원 가는 날은 수요일 오후야' (다들 정신이 없어서, 묻고 묻고 또 묻는다. 심지어 나도 그런다)


한마디로, 로우 콘텍스트 상황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종류의, 사람을 소모시키는 상황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병원 종사자가 결국 번아웃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내 생각엔 부모가 치매 상황이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소통은 설명을 곁들인 직설표현이 많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게 되는 복잡한 사회 -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으면서 어렵고 복잡한 이슈를 다루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럼 지금 이 프로젝트의 관리자는 연봉이 얼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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