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외래, 항암결정
건강검진과 수술까지
약 2주간 정신없이 지나왔어요.
돌이켜보니 오히려 빠르게 지나와서
힘든 시간이 적지 않았나
싶을 정도에요.
수술을 마친 후,
간호간병통합병동에 들어간 남편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어요.
볼 수 없어 속상하고 걱정되지만,
틈틈이 주고받는 전화로
상태를 짐작해요.
수술 후 3일 정도 지나,
폰을 볼 기력이 생기자,
아이들을 너무너무 보고 싶어 해요.
만나서 안아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너무너무 보고 싶어 해요.
이때,
CCTV가 큰 역할을 했어요.
첫째 태어났을 때,
한 산후도우미가 신생아를 학대했다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 무렵에는 대부분의 산모들이
집에 CCTV를 설치했었는데요.
그게 집에 있었던 거죠.
설치하고 연결해서,
아이들이 둘다 거실에 있는 순간에
남편이 아이들 이름을 불러요.
첫째는 그 기계의 원리를 알지만,
둘째는 알기엔 너무 어렸어요.
돌도 되기 전이었으니까요.
두돌이 가까운 지금,
둘째는 아직도 CCTV를 보면
‘아빠’를 불러요.
그 안에 아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 카메라 앞에서
머리 위로 손하트 그리며
남편을 응원했던 시간,
느리게, 또 빠르게 흘러갔어요.
퇴원 후,
아이들이 수술부위를 건드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까닭에,
요양병원을 알아보다
어머님께 신세를 지게 되었어요.
장성한 아들,
결혼 후 출가해서 애 둘 낳은 아들을
다시 거두시는 어머님께
죄송하고 감사했어요.
어머님은 어머님의 아들을,
저는 저의 아들들을 건사했어요.
가까이 살아 참 다행이었어요.
외래진료를 가서
실밥을 풀고 소견을 들으니
‘전이는 없지만,
고위험군이므로 항암을 8차 하자.‘고 해요.
항암…
무섭고 두려운 일이
2주 후로 잡혔어요.
애써 외면하고 싶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항암이
예정되었어요.
외래 이틀 후,
항암 전 보양을 하기 위해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식당에 갔어요.
크리스마스 직전이라
분위기도 좋았어요.
실로 오랜만에 맛있게 먹는 남편을 보고
또 힘을 내보기로 했어요.
그래도 물론 여전히 무섭긴 해요.
항암이라는 것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