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구나, 살겠구나.’
이번 이야기는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해요.
저희 부부는 말을 예쁘게 하는 편이에요.
사랑 표현도 자주 하고요.
말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말을 예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동갑이에요.
스무 살에 만났고,
(저에게는 첫 남자친구였지요.)
삼심 대 후반에 우연히 다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경우라서,
‘친구 모드’와 ‘부부 모드’가
골고루 섞여 있어요.
수술하는 날은
아침부터 일단 ‘대기’에요.
금식을 하고, 수술 순서를 기다려요.
위급한 수술부터 먼저 하고,
앞선 수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잘 모르는 게
수술시간이었어요.
언제 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에
해 뜨기 전에 병원으로 갔어요.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10개월 된 둘째가 ‘엄마’ 하며 살짝 깼어요.
얼른 다시 누워서 토닥토닥하며
다시 재워요.
심장은 두근두근해요.
내가 도착하기 전에 수술실에 들어가면
어떡할지 걱정해요.
다행히 둘째가 금세 잠들었어요.
조용히 나와서 간단히 준비하고,
어머님과 이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깜깜한 새벽,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요.
깜깜해요.
병원까지는 6킬로미터,
안 막히면 10분 정도 걸려요.
그 10분이 100분 같았어요.
혹시나 도착하기 전에 수술 들어갈까봐,
조마조마했어요.
두려움이 실체가 느껴져요.
‘엄습’이라는 단어가 살아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얼른 깊게 숨을 쉬어요.
제일 불안하고 초조하고 무서울
환자 앞에선 이 감정을 보여선 안 돼요.
수술 대기 시간이 길어졌어요.
오후로 넘어갔대요.
긴장이 조금 내려지고,
오히려 ‘빨리 수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남편에게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
암 충만한 시간이 아닌
추억, 장난, 희망으로 시간을 채워요.
수술 끝나면,
퇴원하면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요.
그리고, 갑작스럽게
수술실로 이동했어요.
철저히 각자 혼자인 시간이 되었어요.
남편은 수술실 안에서,
저는 수술실 밖에서,
각자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이었어요.
수술실 밖에서 대기하는 많은 보호자들 가운데,
저는 젊은 편이었고, 혼자였고,
세상 슬픔을 혼자 짊어진 것처럼
쉴 새 없이 눈물만 흘리는
철없는 보호자였어요.
수술실 안의 많은 환자들 가운데,
남편은 젊었고, 혼자였고,
세상 아픔을 혼자 짊어진 것처럼 아플 수 있는
근육량이 많은 젊은 남자 환자였어요.
그 날, 수술실에선 사망환자가 나왔고,
대기실의 많은 보호자들이
불안해했어요.
집도의는 수술을 끝낸 후
“근육량이 많아 통증이 심할 수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보다 젊은 남성환자가
더 아픈 경우가 있어요.“라고 말해주었어요.
아,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어요.
수술 후 처치가 마무리되었는지,
남편 이름을 불러요.
용수철처럼 튕겨져서 남편 침대 옆으로 가요.
아파서 진통제 버튼을 누르고 있는 남편에게
의사가 전해준 말을 해요.
“여보는 근육량이 많아서
더 아플 수 있대요.
수술 잘 마쳤대요.
개복수술까진 안 가고
복강경으로 마무리했대요.“
남편이
‘더 아플 수 있다’는 말에
진통제를 누르던 손으로
저에게 손가락 욕을 해요.
가운데 손가락이 저를 향했어요.
‘살아있구나.‘
‘살겠구나.‘
남편의 손가락 욕에
많이 울어서 벌게졌던 눈에
웃음이 살짝 묻었어요.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이제 간호간병통합병실로 가기 때문에
퇴원할 때까지 남편을 못 보는데
수술 직후 보여준 ‘친구 모드’에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집에 올 수 있었어요.
새벽에 나갔는데,
집에 돌아오니 또 깜깜해요.
어머님과 이모님 덕분에 아이들은 잘 지냈고,
엄마아빠 둘다 없으니
둘째는 자꾸 문 앞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대요.
내일은 더 많이 안아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