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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타면

암을 만나면 대문자 F가 더 큰 대문자 T가 되기도.

by 사랑예찬

건강검진에서 용종이 발견되고,

조직검사를 보내고,

그 결과를 안내받으며

외래진료를 잡고,

외래진료를 받은 그 순간

입원결정을 하고.


순식간에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어요.

오늘부터 당장,

집에는 혼자 가야 하고,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고,

원가족들에게도 알리고

기도를 부탁드리고,

위로를 드려야 해요.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탄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암 소견은 확실하고,

크기가 큰 만큼

기수가 어떨지는 수술을 해 봐야

안다고 했어요.

기수는 전이여부를 보는 것이라

또 다른 영역이었어요.

암 1기, 2기, 3기, 4기의 의미를

이 때 검색해 보고 알았어요.


수술을 먼저 하고,

기수를 보고,

항암을 할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해요.


공교롭게도, 입원을 한 날이

둘째가 태어난 지 300일이 되던 날이었어요.

그 주 주말에는 결혼기념일이었고,

그 다음주에는 저의 생일,

그 다음주에는 남편의 생일이었어요.


연말에는 이런저런 기념일들로

행복하고 부산스럽게 보냈는데

올해는 전혀 달라요.


그런데,

감정적일 틈이 없어요.

아이들에겐 제 손이 필요하고,

갑작스럽게 암 선고를 받고,

입원을 하고,

각종 검사를 하면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남편도

제 손이 필요해요.


어릴 때부터

감성이 풍부하고 눈물이 많았던 저는

아직 울 때가 허락되지 않았어요.

제가 울면,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져요.


어차피 벌어진 일은 바꿀 수 없고,

제 손에 달려있는 것들은

저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에요.


그랬더니, 많이 감성적인 제가

굉장히 이성적으로 일들을 처리하고 있어요.

돌이켜보니 조금 낯설어요.

차분하게, 담담하게,

해야 될 일들을 해내고

허락하신 잠을 자요.

꿈 속에서도 울지 못했던 시간이

흐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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