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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선고와 암 선고

그냥 커피와 찐한 커피, 그 이상

by 사랑예찬

선고하다.

‘선언하여, 널리 알리다.‘


왜 암은 선고를 할까요.

선고‘씩이나’ 해서

비장한 마음을 갖게 할까요.


건강검진 후 전화로 외래진료를 오라는 말을 듣고,

많은 것들을 검색하고 찾아보고,

그렇게 그 날 밤은 지나고,

아침은 밝아오고,

아이들은 아침에 아빠가 있으니 좋아했지만,

그걸 보는 아빠의 눈은 자꾸 촉촉해지던

암 선고 들으러 가던 날 아침,

그 서늘하고 비장했던 마음은

잊지 못할 거에요.


어떤 일이 오든,

보호자는

정신 차려야 해요.

울고 있을 시간은 없어요.

챙길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

.

.




작년 연말만 해도,

대학병원에 들어가려면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어요.

환자와 보호자, 모두요.


아이들을 등원시켜놓고,

함께 병원으로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외래 진료를 기다렸어요.


그 시간 동안,

슬퍼지지 않기 위해

아이들 사진 보면서

웃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나, 한번씩

슬픈 기운이 감도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요.


둘다 아닌 척,

괜찮은 척 하며

진료 순서를 기다렸어요.




이름을 불러요.

진료실에 들어가요.

담당의는 여러 수치들과 영상들을 보여주면서,

이 부분이 ‘암’이라고 콕 집어 이야기해줘요.


꽤 컸어요.

얼핏보면 핏빛 꽃 모양 같기도 했어요.


2년 전 건강검진에선 나오지 않았다고 하니,

유전자 검사를 하자고 해요.

혹시 유전적인 인자로 발생하는

암인지 여부를 확인하자고 해요.


암 앞에 선 우리들은

‘네, 그러겠습니다.‘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오늘 바로 입원 가능하세요?”


걱정하던 일이 진짜 일어났어요.

바로 입원할 수도 있으니

금식하고 가라는 친정언니의 말을 들은 게

잘한 일이었어요.


“네. 그러겠습니다.”


입원 수속을 하기 위해

2층 진료실에서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 접수실로 이동해요.


1층에 내려와 정면에 있는

자동판매기 옆 코너에

남편이 얼굴을 숨겨요.


진료실에서 내내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나봐요.

키와 덩치가 큰 남편의 등이

들썩거려요.

처음 본 눈물이었어요.


암 앞에 선 부부는,

10개월 된 둘째와,

세 돌이 갓 지난 첫째와,

부모님들이 떠올라

아주 잠깐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마음을 추스려요.




마음을 추스리고

돌아보니,

제 손에는

남편과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달려있어요.


이제 암을 만난 남편,

한참 손 많이 가는 아이들,

늦게 아이들을 낳아 노산으로 출산한 지

이제 10개월 된 컨디션,

아들의 암에 충격받으셨을 시부모님,

사위의 암에 기도로 밤을 새우실 친정엄마,

업무적으로도 목표하는 바가 있었던 사회적 자아.


그래도

‘암’ 앞에선

우선순위가 쉽게 나뉘어져요.


생명이, 사랑이 우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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