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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항암, 두고두고 잊지 못할.

항암기간, 부부 간 티키타카를 포기하다.

by 사랑예찬

수술까지 무사히 마쳤어요. 퇴원도 했어요.

이 기간에 평소라면 없었을 일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요.


우선, 차에 시동을 켠 채 주유를 한 적 있어요.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으니,

평소에 단 한번도 그런적 없었는데

시동을 끄지 않고 주유를 했고,

그걸 깨닫자마자 너무 놀라서 부랴부랴

폰을 열어 검색을 했어요.

(다행히 별일 없었어요.)


둘째 분유를 몇 스푼 넣었는지 자꾸 잊었어요.

10개월쯤에 이 일이 벌어졌기에,

둘째는 아직 분유를 먹던 때였는데요.

네 다섯 스푼 먹던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 스푼, 두 스푼 넣다가 꼭 까먹어서

다시 쏟아붓는 일이 여러 번 있었어요.


아, 그리고

당시에는 스마트워치를 이용했었는데요.

(지금은 구치소 접견 갈 때마다 불편해서

일반 시계를 이용해요.)

중심정맥관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떤 혈관을 잡아야 하고,

간호사도 이건 좀 아프다고 했었어요.

그 관 잡을 때 저도 긴장했었는지

심박수가 166이 나왔고,

스마트워치가 경고했어요.

펄떡이며 관으로 들어가는 핏줄기를 보니

많이 놀랐던 것 같아요.

심박수가 갑자기 지나치게 높게 나오면,

스마트워치가 경고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남편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놀랐다가 진정했다가 하는 일들을 겪으며

첫 항암을 기다려요.


약이 독해서

항암 8차 동안 혈관주사로 진행하면

혈관이 다 상한다는 주치의의 권고로

케모포트 시술도 받았어요.


혹 항암으로 쇼크가 올까봐

2박 3일 입원하여 첫 항암을 해요.


항암을 하기 위해

남편은 새벽에 공복으로 가서

필요한 검사를 받아요.

전 아이들 등원을 한 후,

부지런히 운전해서 병원에 가요.


하필, 첫 항암하는 날,

집에 잘 걸려있던 액자가 쿵 떨어져요.

천만다행으로 저와 아이들은 다치지 않았고

바닥만 흠이 생겼어요.

왠지 마음이 불안해져

깊게 숨을 쉬어요.

아무도 안 다쳤으니 그것으로 됐다. 후...


항암은

수술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에요.


수술은 그래도 시작과 끝이 있는데,

항암은 (가능하면) 3주 간격으로

총 여덟 번을 받아야 하고,

항암제를 투여하고, 항암약을 먹는 2주간은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기간었어요.


약을 먹어야 하니 뭔갈 먹긴 해야 하는데,

입맛도 전혀 없고,

음식 냄새에 민감해지는 그런 시기였어요.

그래도 잘 먹으려고 해야 해요.

안 먹으면 그 다음 항암을 못 맞을 수도 있어요.


항암은 맞기 싫지만,

또 못 맞게 되면 그만큼 상태가 안 좋다는 뜻이기에

제 때에 맞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배우자가 말하기도 했어요.



이 무렵, 보호자인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들 키우고,

먹을 만한 것 찾아서 해놓고,

기분을 맞춰주는 것 정도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동갑내기 부부이기에

평소 대화가 많고, 대화가 즐거웠는데,

말 장난, 티키타카를 모두 포기하고

그저 모든 것을 맞춰주겠다 선언하였어요.


“토 달지 않을게.”


결혼생활하면서,

실은 '내가 더 많이 하는 것 같다'는 생각

몇 번은 했었는데요.

암을 겪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요.

'내가 더 많이, 아니 다 해도 되니,

살아만 있어라.

손 많이 가도 되니,

살아만 있어라.'라고 생각하며

첫 항암 입원 2박 3일을 마친 남편을 데리러 가요.


하얀 편이던 피부색이 검게 변했어요.

차가운 공기에 소스라치며 아파해요.

손끝 저림을 어찌할 바를 몰라요.

겨울 항암은 특히 더 힘든 것 같아요.


이제 일곱 번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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