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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Feb 27. 2024

Day1 생장 to 론세스바예스

산티아고 순례길 첫날


이 글은 과거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를 걸어서 완주 하고 남겼던 글이고, 미래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시 갈때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작성한 아주 개인적인 사담 가득한 글 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하기 이전에 나는 지리산 둘레길을 혼자서 여행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구나 하는 감정을 심하게 느꼈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길을 걷고, 혼자 숙소를 찾아다니며 나를 지나쳐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혼자가 아닌 둘 또는 셋으로 무리지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큰 부러움을 느꼈고, 나도 누군가와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하게 된다면 꼭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현실과 싸워가며 하루 하루 살아가던 나는 불현듯 회사를 그만다니고 긴시간 동안 여행을 가고 싶었고 무슨 자신감 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직서를 내고 버킷리스트 였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고자 마음 먹게 되었다.


"여보 우리 산티아고 같이 가자"

"응? 거기가 어딘데? 그게 뭔데?"

"내 버킷리스트야"


내말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어떤 곳인지 알아본 아내는 나에게 혼자 갔다 오라며 손사례를 쳤다. 힘들기도 힘들겠거니와 이제 막 시작한 한 가정의 일상을 져버리는 결정을 쉽게 하지는 못했다. 당시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자고 했던 시기는 결혼한지 6개월 밖에 안된 아주 신혼인 상태였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서 서로가 고민하고 나아가야하는 시기였었다. 아내는 쉽게 내 제안을 받아 들이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아내에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곤 결국 OK 하는 대답을 얻어냈다. 그렇게 우린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아내와 나는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발을 내디뎠다. 여행을 가기 까지에 과정도 너무 재미있었고 준비하는 시간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여행은 준비과정 부터가 여행이기에 그부분은 모두 독자의 재미를 위해 남겨 두고 여기서부터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있었던 일들을 글로 풀어보고자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 아내와 나는 여러 루트 중 프랑스길을 선택하여 걷기로 했고, 그 시작점인 생장의 아침부터 기록해 보겠다.




산티아고 순례길 1일 차(생장-론세스바예스)


아침 일찍 아직 동이 트기 전인 깜깜한 새벽 아내와 나는 순례자들이 묵는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남들보다 빠른 시간인 아침 6시부터 알베르게 문을 열고 순례길의 시작 대망의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이라는 설레임과 신기한 감정에 아직은 해가 뜨지 않아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나선 우리는 누구보다 좋은 기분으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길의 첫 번째 일정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야 하는 험난한 코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례길 전체 일정 중 첫날이 가장 힘든 코스라고 얘기를 한다. 하지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잠도 푹 잤고, 컨디션도 최고였으며, 첫날이라는 설렘에 엔도르핀이 온몸을 감싸는 날이었다. 가는 길에 사진도 찍고, 풍경도 감상하며 재잘재잘 떠들면서 길을 걸었다.


사실 순례길 첫날까지도 사실 마음 한편에는 엄청나게 큰 걱정이 있었다. 혼자가 싫고 아내와 함께 하고 싶어 아내를 설득해 이 길에 올랐지만 평소 운동도 잘 안 하고 여리여리한 몸으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게 되면 분명 아내는 지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상황은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한다" 라는 생각에 당연히 받아들이겠지만 그것만큼은 나에게 짐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생각은 역시나 1시간도 되지 않아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오빠 조금 쉬었다 갔으면 좋겠어"

"응?"

"숨이 좀 차네 조금만 쉬었다 가자" 


나는 아직 더 걸을 수 있는 체력이 있었고, 걷다 보니 나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빠르게 제쳐 가고 싶었지만, 아내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 보다 늦게 출발한 순례자들이 나를 앞질러가고 그 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아 나도 빨리 저들과 같이 걸어가야 되는데..."라는 생각만 곱씹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약간 후회스러웠다 시작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아내의 "쉬었다 가자"는 말이 내 발목을 붙잡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좋았던 아침의 기분은 정말 잠시 뿐이었고, 그 쉬는 시간 잠깐에 여러 가지 감정이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앞으로 30여 일을 걸어야 하는데 이렇게 아내의 속도를 맞춰주기만 하면 안 될 텐데..." "나는 빨리 걸어가고 싶은데..." 또 한편으로는 "이러다 아프게 되면 어떡하지? 아내 배낭의 짐을 내가 덜어줄까?" 짧은 시간 만에 오기 전부터 유일하게 걱정했던 부분이 생겨버리니 머릿속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잠깐을 쉬고 또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 나란히 서서 서로 재잘재잘 거리며 걷던 우리는 어느새 앞뒤로 거리가 벌어졌고, 내가 조금씩 먼저 걸어가면 아내가 뒤에서 따라오는 형상이 돼버렸다. 그렇게 아내는 내 뒷모습만 보며 따라왔고, 나는 앞서가다 멈춰 서서 따라오는 아내를 쳐다보고 다시 걷다 멈춰 서서 뒤를 쳐다보며 오만가지 생각을 했었다. 뒤에서 오던 나만 졸졸 따라오던 아내는 또 한 번 나를 불렀다. 


"오빠 한 번만 더 쉬었다 가자"


"아... 이제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는데 또쉬자고?" 하지만 쉬고 싶다는 아내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이 먼 곳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단순히 내 말 몇 마디에 여기까지 따라와 줬는데 "그래 함께 해야지 데리고 가야지"라고 생각해가며 잠깐을 쉬고 다시 길을 걸었다.


그렇게 두세 시간을 걷다 보니 피레네 산맥의 위엄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경치는 정말 아름답지만, 이제 나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으며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허벅지는 터질 것 같이 아파왔다. 그런데 이때부터 아내는 오히려 나보다 잘 걷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을 거침없이 올라갔으며, 나보다 앞에 서서 "오빠 힘내"라는 말을 하며 나를 이끌어줬다. 


처음 시작 무렵 뒤쳐지는 아내를 보며 힘내라는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쳐다만 보고 "빨리 와"라고 보채기만 했던 나였는데 "오빠 힘내"라는 말 한마디가 나를 정말 미안하게 만들었다. 방금 전까지 나는 아내가 '짐' 이 되는 것 같아 싫었고, 내가 힘들어지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아내가 나 때문에 걷지도 못하고 나를 이끌어주고 있는 게 내가 정말 잘못 생각했구나 내가 아내에게 '짐'이 되는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 들을 반성하게 했다. 속으로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새겼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일들로 인해 첫날부터 오만했던 나의 생각을 고쳐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길을 걷고 걸어 우리는 무려 9시간을 걸어 첫날의 목적지 였던 론세스바예스 마을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를 출발할때는 가장 빠른 시간에 출발 했지만, 도착한건 당시 순례길을 걸었던 인원들중 가장 후반부 쯤에 도착을 했던것 같다. 


800km 를 걸어야하는 일정중에 고작 20km 수준을 걸었던 단 하루 만에 나에게는 정말 많은 감정의 변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오만했던 나를 돌아보며 반성을 했고 첫날부터 이런 일이 벌어져버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짐이 아녔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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