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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Feb 28. 2024

Day3 수비리-팜플로나

고마워요 태권소녀

산티아고 순례길 3일 차(수비리-팜플로나)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셋째 날이 밝아왔다. 어제는 무리가 안 될 정도의 편한 길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 보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생각과 몸은 따로 노는 것 같다. 왠지 피레네 산맥의 여파가 하루 지나고 나타나는 것 같았다.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으로 달래 보고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일정인 수비리 에서 팜플로나 로 가는길은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 일정중에 극히 초반이었고, 언덕이 많지 않은 아주 완만해서 걷기 좋은 코스중 하나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꼈던 감정은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생각해도 까미노 길을 걷는 중 가장 힘든 하루 중 하루였다. 


아내와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기 전에 일주일 정도 파리 여행을 하고 순례길의 시작인 생장 으로 넘어왔었다. 순례길 일정은 고작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여행을 시작한지는 벌서 10일이 지난 상태여서 그랬는지 몸이 지쳐 있었던 것 같기도 했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침부터 컨디션이 썩 좋지 못하기도 했다. 안 쓰던 근육들을 쓰고 해 보지 읺았던 걷기 운동을 한 탓인지 아내도 나도 온몸이 찌뿌둥 하니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는 못했다.  

이렇게 깜깜한 새벽에 출발~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해가 뜨는 12시 이후의 시간에는 햇볕이 너무 강해서 걷기가 힘들기 때문에 새벽 5~7시에 출발해서 12~1시 사이에는 그날의 여정을 마치고 그 이후에는 씻고 빨래하고 다음날 여정을 준비한다. 특히나 여름에는 낮에 너무 더워서 걸을 수가 없어 야간 순례길을 걷는 일도 많다고 하는데 그때 보이는 별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야간 순례길을 걸어본 적이 없고 순례길에서의 별빛을 보지 못해서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우리는 오늘도 새벽같이 알베르게를 나섰다. 한국에서는 잠이 많았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큼은 아침형 인간이 되고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우리의 산티아고 동지들은 항상 아침일찍부터 일정을 시작하는 우리를 두고 얼리버드 커플이라고 별칭을 붙여 주기도 했었다. 


팜플로나를 가는 길 새벽길에서는 리사 이후로 사귀었던 우리의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친구 마빈을 만났다. 마빈과 우리 부부는 우리가 길을 걷다가 조금 쉬어갈때는 마빈이 우리를 앞질러 걸었고, 마빈이 쉴 때는 우리가 마빈을 앞질러 걸어 나갔다. 처음 마빈과 우리는 서로 부엔 까미노 라며 서로의 길을 응원 해주기만 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어두컴컴한 보이지 않는 길을 마빈과 우리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열심히 걸었다.


아내와 나는 둘 다 영어를 그리 잘하지 못한다. 외국인에게 먼저 말을 건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무슨 용기가 났는지 발걸음의 속도가 비슷해졌을 때 마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올라~ 부엔 까미노"

"부엔 까미노"

"너 어느 나라에서 여행 왔니? 

"난 과테말라에서 왔어 미안하지만 난 영어를 잘하지 못해"

"괜찮아 나도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 인걸?"


마빈은 과테말라에서 왔으며 피레네 산맥에 대한 악명을 듣고 겁이나서 론세스바예스부터 출발했다고 했다. 과테말라는 영어를 쓰지 않는다며 마빈도 우리도 중학생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다. 덕분에 오히려 더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었고 우리는 마빈과 한 시간은 넘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길을 같이 걸었다. 어느 정도 서로의 소개와 인사를 나눈 우리는 또다시 각자의 페이스대로 길을 걸어 나갔다. 길을 걷다 보면 만나고 각자의 속도에 의해서 헤어졌다가 또다시 마주치면서 반가움을 표현하는게 이 길의 묘미였다. 

팜플로나 도시모습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무래도 도시가 아닌 시골풍경을 보면서 걷는 코스가 대체로 많은 편이다. 때문에 계절에 따른 자연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게 펼쳐진다. 우리가 걸었던 시기는 봄날씨가 만연한 4~5월 이었다. 길을 걸으며 옆으로 보여지는 풍경은 봄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초록 초록한 세상이었다. 밀가루가 주식인 스페인의 순례길 옆으로는 끝없는 밀밭이 펼쳐져 있다. '우리가 봤던 초록 초록한 이 밀밭은 가을이 되면 황금벌판으로 변하는 풍경을 보여주겠지...' 상상을 하며 길을 걸었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은 어제와 그제에 비하면 완만하여 코스 자체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목적지인 팜플로나에 도착하기 직전 마지막 한 시간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팜플로나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첫 번째 대도시이다. 도시 초입에서 알베르게 까지 걸어가는 마지막 1시간 정도의 길은 그간 걸었던 산길 흙길이 아닌 아스팔트 길 시멘트길 돌바닥 길이었다. 


매일 산길, 흙길로 다니다가 아스팔트, 돌길을 한 시간을 걷고 있으니 발바닥이 너무 아파왔다. 나는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앉아서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 같았다. 하지만 쉬어 갈수가 없었다. 길을 걷다 보면 나름의 흐름 이라는게 생기는데 만약 너무 힘들어서 여기에서 앉아 쉬어버리면 그대로 퍼져 버려서 못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픈 발과 다리를 부여잡고 그저 고통을 참으며 걸어가는게 최선 이라고 생각해서 쉬지 않고 계속 길을 걸어 나갔다. 아침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길을 걷기도 했고 어느덧 시간이 점심시간을 훌쩍 지나버린 상태였기에 배가 고파 점심을 먹자는 핑계를 삼아 쉬어 가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마저도 쉬었다 가면 더 이상은 전진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우리는 일단 알베르게에 먼저 도착을 하고 다음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고통을 참고 아픈 발바닥과 다리를 매만져 가며 꾸역 꾸역 길을 걸어 팜플로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팜플로나 에서도 우리는 공립 알베르게에 머무르기로 했다. 대도시여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팜플로나 알베르게는 공립알베르게 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깨끗하고 준수한 시설을 갖춘 알베르게였다. 


마지막 한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침대에 누워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샤워를 하고 빨래를 마치고 나니 언제 다리가 아팠느냐는 듯 바깥 구경이 하고 싶었다. 점심도 먹어야 했고 대도시인 팜플로나 그냥 지나 칠수 없어서 휴식 보다는 관광을 위해 또 도시 이곳 저곳을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역시 큰 도시라서 그런지 숙소에서 나와서 조금만 걸었는데도 상점도 많고 아이스크림 가게, 약국, 옷가게 등등 없는 것이 없었다. 


"우리 대도시 에 왔으니깐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사 먹자"

"좋아! 우리 맛있는 음식을 먹자"

"가까운 곳에 중국 식당이 있는데?"

"좋아 가자!"


너무 고된 하루를 보냈다며 보상을 줘 야한다는 그런 보상 심리에 우리는 맛집을 검색하게 되었고, 그렇게 찾아낸 것이 중국식당이었다. 그간 지나왔던 론세스바예스, 수비리 는 시골 한적한 마을에 순례자들을 위한 알베르게 정도와 마을사람들을 위한 레스토랑 1곳 정도 뿐이었지만 대도시인 팜플로나는 누릴수 있는게 정말 많았다. 


그렇게 중국식당을 검색해서 가게를 찾아 들어갔고 들어가자마자 인테리어에 한 번 압도당했다. 정말 스페인 속의 중국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 식당 안에서는 내가 중국에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볶음밥에 고기볶음 군만두까지 사람은 두명인데 메뉴는 3개를 주문해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시장이 반찬인 건지 정말 음식이 맛있었던건지 모르겠지만 나름 맛이 괜찮아서 만족스러웠다. 특히 군만두는 식감이 쫄깃쫄깃한 것이 아주 맛이 있었다. 하긴 중식당을 찾은 시간은 아침도 제대로 못먹고 점심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늦은 오후였던 3시 무렵이었다.  


식사를 하러 나오기 전에 알베르게에서 만난 한국인 에게 근처에 신라면을 판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팜플로나에 있는 대형 마트에 들어가서 내일 아침으로 먹을 만한 것들을 조금 사고 또 한국의 맛이 그리웠기에 신라면을 샀다. 순례길을 걸은지 3일만에 그리고 여행을 떠난지 10일만에 신라면 이라니 정말 신이 났다. 진짜 이 기분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도시를 구경하고 돌아온 알베르게에서 우연히도 첫날 피레네를 넘을 때 인사했던 한국인 태권소녀가 우리 바로 옆 침대에 배정을 받아 반갑게 웃으며 인사했다. 태권소년은 피레네를 넘을 때 태권도 도복을 입고 산을 넘었는데 원래 태권도를 하다가 무릎을 다쳐 이제 더 이상 운동을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다친 무릎 때문에 무릎에는 늘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던 소녀였고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떠날 때 사실 준비랄 것도 없이 무작정 순례길에 도착해서 닥치는 대로 새로이 경험하고 있었는데 태권소녀는 한국에서부터 엄청난 준비를 해왔었다. 매일매일 갈 곳을 사전에 정해놓고, 노트에 기록했으며, 우리는 있는지도 몰랐던  한국인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에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많이 알아와서 우리한테 어느 정도 팁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내와 내가 태권소녀를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혹시 이 비빔밥 필요하세요?"

"네? 이거 한국에서부터 힘들게 들고 온 거 아니에요?"

"맞아요 사람들 나눠 주려고 가지고 왔어요"

"그래도 이 귀한걸 저희한테 나눠 주셔도 괜찮으세요?"

"나눠 주려고 가지고 온 것이니 괜찮아요 필요하면 가져가세요"

"그래도 귀한 한국 음식을 그냥 나눠주시는 건..."

"괜찮아요 드세요"


한국음식들이 그리워질 만한 시점에 만났던 신라면이 주는 행복을 채 다 누리기도 전에 눈앞에 나타난 천사같은 태권소녀는 본인의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그러니 짐을 비우는 차원에서 나눠준다며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비빔밥을 비롯한 각종 한국 음식 과 간식들을 너무나 흔쾌히 나눠주었다. 처음에는 괜찮다며 손사례를 쳤지만 결국 한식을 먹고싶다는 욕망을 이길 수는 없었다. 


저녁에 아내와 한 얘기지만 사실 이때 나는 태권소녀가 주는 호의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나름대로는 완만하게 거절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비빔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혹시 완전히 거절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했었다고 했다. 비빔밥과 간식들을 그냥 받기에는 미안해서 우리도 아까 마련했던 라면을 나누어 주는걸로 타협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때 배낭이 주는 무게를 최소화 하기 위해 종이 한장도 버려가며 배낭을 꾸리는게 보통인데 꽤나 무거운 편에 속하는 음식을 배낭에 짊어지고 가뜩이나 다리가 좋지 않아 절뚝거리며 피레네 산맥을 넘어오는 모습을 이미 봤었기에 그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20km~30km 사이를 걷는다. 대부분 매일 같이 그 거리를 걷지만 개인의 몸상태에 따라서 길을 걷는 거리를 줄이기도 늘리기도 하고, 걸음을 완전히 멈추고 하루이틀 휴식기간을 갖는 경우도 많다. 태권소녀는 대도시인 팜플로나에서 1박을 더하며 관광을 한다고 했고 무릎이 좋지 않아 하루에 5~10km씩만 걷는다고 하여 이날을 마지막으로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하루를 마무리 하는 저녁시간 쯔음 되고 다리의 고통이 사라지고 허기짐이 사라졌을 무렵 아침부터 만났던 두번째 외국인 친구 마빈은 어느 알베르게에 있을지 궁금했다. 왠지 내일 또 마주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생장부터 만나왔던 독일 친구 리사는 오늘도 또 만났다. 리사는 길을 걸을때는 한번도 마주치질 못하는데 매일 저녁마다 알베르게에서 만나오고 있다. 태권소녀를 비롯해 마빈,리사 등등 까미노 길에서는 늘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날의 연속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오늘이 2일째 금연 중이기도 하는 날이었다. 덕분에 매우 무기력해지고 짜증이 심해졌다. 내가 받고 있는 금단현상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아내도 같이 받고 있었다. 나는 걷는 내내 아내에게 담배를 피우고 싶다며 징징거렸다. 그때마다 아내는 오빠는 참을 수 있다며 조금 더 참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좋은 말도 한 번 두 번이지 계속되는 징징거림에 아마도 아내 역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제와 얘기하지만 지속되는 나의 짜증을 받아준 아내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팜플로나 까지의 길은 지금까지 3일 중 가장 힘든 날이었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고 알베르게 들어가기 전 마지막 한 시간은 발바닥이 미친 듯이 아파왔다. 담배를 피우지 못해 금단 현상까지 겹쳐서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다행히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고, 내일 먹을 음식까지 준비가 되어 마음 편히 잘 수 있었다. 사실 잠들었다기보다는 너무 피곤해서 그냥 눈을 감았더니 하루가 순삭 된 기분이었다. 이곳에서는 오늘이 며칠 인지 무슨 요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은 뭘 먹을지 내일은 얼마큼 갈지 아주 1차원 적인 고민들만이 필요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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