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았던 물품 기부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일찍 눈이 떠졌다. 아침에 눈을 뜬 시간은 6시였다. 지금까지 5시쯤에는 일어나서 준비해서 나갔었는데 어제 걸었던 게 피곤하긴 했던 건지 그동안의 피로가 쌓인 건지 아니면 벌써 꽤가 생긴건지 평소보다 한 시간을 늦게 일어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우리 부부에게 붙여준 별명은 "얼리 버드"였다. 그만큼 남들보다 일찍 준비하고 일찍 출발했고, 새벽녘 쌀쌀할때는 양지바른 곳에서, 그리고 해가 쨍한 낮시간에는 그늘진 이른바 길을걷다 쉬기 좋은 명당 자리에는 항상 아내와 내가 선점하여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길을걷다 쉬면서 자리잡은 곳에서 우리는 우리보다 뒤늦게 출발해 오는 사람들을 향해 부엔 까미노를 외쳐주었고 그렇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아침에 누가 깨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매일매일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알람을 맞춰 놓고 더 자고 싶은데 알람 시간에 눈 비비며 힘들게 일어나야 했는데, 이곳 에서 만큼은 출근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알람도 안 맞추고도 개운하게 일어난다. 늦잠을 자면 늦잠을 잔대로 걷는 거리를 줄이면 되고 몸이 힘들면 하루를 통째로 쉬어도 된다. 누구도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고 그저 하루간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만 하면 됐었다.
순례길을 걷고 있으면 푸른 초원에 파란 하늘 밖에 안 보이는데 마치 윈도우 배경화면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순례길에 있는 푸르른 초원은 밀밭이라고 했다. 내가 걸을 땐 4월 이어서 초록색이었지만 9~10월에 걸을 땐 황금벌판이 된다고 한다. 오늘은 끝이 없는 밀밭 길이 펼쳐졌다. 정말 끝이 없는 밀밭이었다. 밀밭길은 걷고 또 걸어도 계속되었다. 내가 언제 이런 광경을 보겠나 싶은 마음에 눈에 담고 또 담으며 조금은 여유로워진 걸음걸이에 이때부터는 사진도 많이 남겼었던 것 같다.
어제 팜플로나 초입에 들어와서 느꼈던 대도시의 아스팔트 돌길이 아닌 숲길과 흙길을 걷게 되어 발바닥이 덜 아팠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를 가기 위해서는 용서의 언덕이라는 곳을 넘어가야 했다. 용서의 언덕은 해발 800미터 정도 된다고 했는데 피레네를 넘고 이틀 정도 완만한 길을 걸어서 인지 언덕이라는 말에 새삼 겁이 나기도 했다. 피레네 에서 처럼 또 한 번 아내에게 짐이 될 것만 같아서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많은 서비스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동키 서비스 이다. 동키 서비스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배낭을 아침에 픽업해서 원하는 목적지 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 이다. 물론 무료는 아니다. 순례길 초반에는 8~10유로 정도 하다가 순례길 후반부가 되면 3~5유로 정도로 비용이 저렴해진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매일 잠을 자야할 곳이 바뀌기 때문에 필요한 물품들은 배낭에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데 온갖 생필품이 배낭에 다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배낭하나에 10kg 정도의 무게가 나간다. 때문에 본인의 판단하에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고 가벼운 몸으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는데 우리는 그 서비스가 무언가 사치를 부리는것 같다는 생각에 순례길 초반에는 동키서비스를 이용하지는 않았었다.
푸엔테 라 레이나를 가는 길 출발부터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동키 서비스를 이용해 가벼운 몸으로 걸어갔던 그래서 우리의 부러움을 샀던 모녀였다.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때 아내가 처음 쉬고 싶다고 했던 내가 아내를 정말 짐이 되는 건가 하고 심각하게 고민할 때 내 앞을 제쳐 나갔던 모녀였는데 3일간 안 보이다가 오늘에서 다시 한번 만났다.
둘 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잘 걷는 사람들이었는데 우리는 두 모녀와 이야기를 하며 속도에 맞춰 걸어갔다. 이제 3일이 지나서 적응을 했던 건지 평소보다 한시간을 더자서 컨디션이 좋았던 건지 발걸음도 경쾌했고 걷는 속도도 매우 빨랐다. 우리와 같이 잠깐 길을 걸었던 두 모녀는 순례길에 오려고 제주 올레길에서 미리 걷기 연습을 하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 였는지 우리보다는 걷는 속도나 체력적인면에서 좋았던것 같고 그렇게 조금을 함께 걷고 나서는 또 우리를 앞서 걸었다.
처음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는 누가 나를 제쳐가거나 앞사람 보다 내가 뒤쳐지는 게 싫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를 앞서 나가도 내가 다시 제치려고 욕심부리지 않았다.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달라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결국 목적지까지 가면 다 같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듯이 목적지에 늦게 도착한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의 여정을 서로 응원해주고 완주를 축하해 주기만 했다. 첫날 피레네에서 아내가 날 이끌어 준 뒤로 정말 많은 생각이 바뀐것 같았다.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가는 길에는 앞서 얘기했던 용서의 언덕이라는 고도 800m 의 큰 언덕이 있었고 이 용서의 언덕 정상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유명한 포토 포인트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며 집에서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봤을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지역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인증샷을 찍었고 한동안 여기서 찍은 사진이 핸드폰 배경 화면이 되었었다. 용서의 언덕을 보자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르는 길도 처음 걱정한 것과 다르게 너무 가뿐하게 잘 올라왔다. 어제는 발바닥도 아프고 다리도 그렇게 아프더니 오늘은 도착하기 한 시간 전 까지도 여유 있는 걸음 걸이었다.
용서의 언덕에 도착했을 때 펼쳐진 광경은 정말 이곳에 오기전에 봤던 동영상과 사진 그대로였다. 가기 전에 블로그나 카페에서 수도 없이 보았던 그 광경이 내 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푸른 하늘에 멀리까지 내다보이는 자연의 경관이 아름다웠다. 바람도 엄청나게 불어 쓰고있던 모자가 날아갈까봐 걱정에 손이 바삐 움직였다. 오늘도 일찍 출발해서 남들보다 조금은 빨리 용서의 언덕에 도착한 덕에 우리는 사진 찍고 동영상을 찍는 시간을 여유롭게 누릴 수 있었다. 잠시 쉬고 있으려니 우리 뒤로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훗!" 하고 여유를 부리며 내리막길로 내려갔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법, 용서의 언덕에서 조금 쉬고 걷는 코스는 계속 되는 내리막길 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리막길이 오르막길 보다 더 힘든 길이 되었다. 길이 큰돌 자갈 등으로 이루어져있어서 자칫 발을 잘못 딛으면 미끄러지기 일 수 였다. 배낭의 무게 까지 짊어지고 내려가다 보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행이도 나는 성큼 성큼 잘 내려갔지만 아내는 겁이 나서였는지 속도가 매우 더뎠었다. 하지만 피레네를 올라갈때 처럼 더뎌지는 아내를 기다릴때 안좋은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다. 나도 아내와 똑같이 그저 안전하게 잘 내려오길 바라보며 화이팅을 외쳐 주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푸엔테 레 레이나에 도착해서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치고 저녁거리를 장 봐왔다. 순례자들은 순례자를 위한 점심이나 저녁 메뉴를 레스토랑이나 bar에서 사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금을 아끼기 위해 음식을 직접 해 먹는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의 알베르게에는 주방이 있으며, 주방에는 기본적인 조리기구들이 비치되어 있다. 점심으로 어제 산 신라면과 태권 소녀에게 협찬받은 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주방에서 신라면을 끓이니 여기저기서 콜록콜록 기침소리가 들려 왔다. 라면 수프가 매워서 그런듯한 느낌이 들어서 알베르게에 같이 있는 순례객 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미안함도 잠시 이날 먹은 점심은 아주 맛이 좋았다. 우리나라 라면과 밥은 언제 어디서나 맛있다. 우리는 점심을 해결하고 주방에서 내일 아침 메뉴까지 준비를 완료 했다.
잠시 알베르게 정원에 앉아 쉬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알베르게에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아침에 잠깐 같이 걷다가 못 봤던 두모녀도 같은 알베르게에 와 있었고, 대도시인 팜플로나에 우리보다 하루 먼저 와서 도시를 구경하기 위해 1박 더 하고 온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산티아고 여행을 하기 전에 주변 지인들에게 들은 것과 영상으로 봤을 때 나는 이렇게 동일한 여행을 하는 사람들과 엄청나게 친해질 줄 알았다. 그래서 은근히 친해지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하지만 워낙 내가 먼저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었고, 그들 역시 먼저 다가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외국인들은 참 많이도 먼저 다가 오는듯 했다.
알베르게는 순례객들이 저렴한 가격에 숙박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호텔 같은 시설이 아닌 우리나라 게스트 하우스의 형태를 하고 있다. 2층 침대가 빼곡히 있으며 한방에 적게는 10명 많게는 200명이 함께 잠을 자는 곳이다. 이 알베르게에도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젊은 사람은 2층 침대 나이가 조금 있는 사람은 1층 침대에 누워 잔다. 보통은 알베르게 주인이 배드를 배정해준다. 어떤 알베르게는 먼저 온대로 원하는 베드를 선택할 수도 있다. 아내도 나도 알베르게에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을 꼽으라면 "애니 배드"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1층 침대에서 편히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순례객들은 1층 침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레이나 알베르게는 주인이 배정을 해주는 알베르게였고 우리는 각각 1층 2층을 같이 사용하도록 배정받았다. 여지없이 아내는 2층 침대로 올라갔다. 아내는 100kg이 넘는 내가 올라가면 침대가 무너질 거 같다고 하며 나와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수비리에서도 그러더니 오늘도 기어코 자기가 2층에 올라가겠다며 우기는데 도통 이길수가 없었다. 내가 올라가야 하는데 아내가 자꾸 올라가는게 영 탐탁치 않았다. 그렇게 아내는 나를 위해 오늘도 희생해준다. 까미노 길에 오른 뒤로 피레네 산맥을 넘은 뒤로 그렇게 늘 나는 아내에게 감사한다.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하루의 일과인 가방을 싸고 있는데 '오 마이 갓' 아내의 레깅스와 반팔티 한 장이 보이지 않았다.
"오빠 나 레깅스랑 반팔티가 없는데?"
"무슨 소리야 가방에 있겠지~"
"아냐 찾아봤는데 없어"
"그럼 내 가방을 뒤져볼까?"
아무리 찾아도 잃어버린 물품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어제 팜플로나에서 널어둔 빨래를 걷을 때 나 혼자 걷어서 왔고 우리 옷만 빨랫줄에 걸려있는 게 아니라 워낙 많은 사람들이 빨래를 널어놔서 아무 생각 없이 걷어와 정리하고 가방에 넣어왔는데... 아무리 찾아 보아도 나오지 않았다. 팜플로나 알베르게에 두고 온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가방만 뒤져봤던 것 같다. 곧 현실을 파악하고 그냥 마음을 접었다.
이미 먼 길을 걸어 이곳에 왔고 다시 돌아가기에는 일정이 꼬이고 옷이 그곳에 없을지도 모르고 왔던 길을 돌아간다는 것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한 가지 정말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아내가 그날 입은 옷은 그날 처음으로 입었던 한번 입고 빨아 놓았던 채로 놓고 왔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저렴한 옷이어서 포기가 쉬었지 값비싼 브랜드 옷이었으면 아마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갈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 아내는 남은 순례길에서 단벌신사로 살아야 했었다. 한국에서 배낭을 꾸릴때 배낭 무게를 최소화 하기위해서 걸을때 입을옷 두벌, 양말 두켤레, 알베르게에서 쉴때 입을옷 한벌뿐이 안싸왔었는데 그중 걸을때 입을옷을 놓고 양말도 놓고 왔었기에 길을 걷기에 부족한 옷가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옆에서 연신 미안해 눈치를 봤어야 했지만 아내는 정말 괜찮다며 그냥 있는 옷만 입으면 된다고 했다. 어쩌면 옷을 많이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게 마련이니 말이다.
순례길 초반 대부분의 알베르게 한쪽에는 이전 순례자들이 다음에 올 순례자들을 위해서 옷이나 물품 등을 기부해놓은 곳이 있다. 대부분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기부하지만 아마도 나같이 모르고 안 가져간 것도 그곳에 있는 것 같다. 혹시나 하고 오늘 묵는 알베르게에서 팜플로나에 놓고온 물건들을 대신할 만한 것들이 있나 살펴 봤지만 우리 에게필요한 물건들은 없었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우리 옷도 까미노 순례자들에게 기부를 했다고 의미를 뒀다. 순례길에서의 첫 기부를 자축하며 우리는 알베르게에 있는 맥주 자판기에서 맥주를 한 캔 뽑아 마시고 알딸딸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