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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Mar 06. 2024

Day5 푸엔테라레이나-에스떼야

금단현상이 힘들어요

산티아고 순례길 5일 차(푸엔테 라 레이나-에스떼야)


여행을 하는 시간은 정말 빠르게도 지나가는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지 벌써 5일째가 되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반복의 연속이다. 일어나서 걷고, 먹고, 씻고, 빨래하고, 가방 싸고, 자는 일. 오늘은 어디서 잠을 자고 어떤밥을 먹을것인지 아주 1차원 적인 고민들만 한다. 누군가는 생각을 하기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많은 생각을 없애 버릴수 있는 곳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가면서 반복되는 일상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나 다른 잡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은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안정제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것 같다. 어제의 밀밭 길에 이어서 오늘은 끝없는 포도밭길이다. 아직 4월이라서 그런지 포도나무에는 푸른 잎사귀만 몇 개 달려있고 포도는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도 10월이 되면 나무가 쑥쑥 크면서 포도가 열려 있을 텐데 그때가 되면 이곳 풍경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시작하기전 내 가장큰 걱정이었던 '아내가 잘걸을 수 있을까?' 에 대한 걱정은 정말 큰 기우에 불과 했다. 며칠 사이에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잘 걷는 사람이 되었고 오늘도 역시나 그랬다. 아내는 나보다 앞서 나가 걸어가며, 늘 뒤쫓아가는 나를 응원해줬다. 앞서가는 아내는 아직까지도 사타구니가 아픈 건지 사타구니 쪽을 부여잡고 걸었다.


"여보 아직도 사타구니 아파?"

"어제 보다 얼마큼 더 아파?"

"1부터 10까지 중에 몇만큼 아파?"

"4만큼"


5를 넘기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내는 "4만큼 아파 괜찮아" 를 외치며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 아픈 사람을 붙잡고 또 다른 나의 자아는 이런 말을 했다.


"여보 나 담배 피우고 싶다"

"금단 현상이 꽤 힘드네"


지금 생각해보면 아프다고 하는 사람한테 담배 피우고 싶다고 그렇게 얘기했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그럼에도 나의 아내는 아프지 않아 괜찮다고 했으며, 담배 안 피우는 오빠가 좋다며, 본인의 아픔은 대수롭지 않았으며, 나의 힘듦을 응원해 주었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이곳의 햇볕은 너무 뜨겁지만 바람은 정말 선선하다. 그래서 중간중간 나오는 그늘은 아주 훌륭한 휴식처 이다. 걷다가 나오는 중간 마을 BAR에서 휴식도 할 겸 잠깐 쉬기로 하면서 BAR에서 판매 하는 오렌지 주스와 하몽이 들어간 바게트를 사먹었다. 오렌지 주스는 눈에 보이는 바로 앞에서 착즙을 해서 주는데 순례길을 걷는 대부분의 BAR 에서는 그런식으로 착즙한 오렌지 주스를 판매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4~5천원 할만한 오렌지 주스는 단돈 1유로면 시원하게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또 스페인에서는 하몽이 엄청 싸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이기도 하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하몽이 그렇게 비싸다고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하몽이 맛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은 바게트 빵에 하몽을 넣은 샌드위치를 BAR 에서 오렌지 주스와 함께 처음으로 먹어봤다. 나는 하몽이란 것을 처음으로 먹어봤고, 오렌지를 그렇게 생으로 짜서 주는 오렌지 주스 역시나 처음 먹어봤다. 처음 먹어보는 그 맛과 동시에 오늘 하몽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마신 BAR는 신기하게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 이였다.


BAR는 알베르게를 같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인테리어가 깔끔하게 되어있었다. 타지에서 만난 한국인은 언제나 반갑다. 이곳에서 하룻밤 자며 어찌 이 먼 곳에서 알베르게를 운영하는지 들어보며 간접경험을 하고 오늘 이곳에서 쉬고 가면 심적으로 매우 편안한 휴식을 할 것 같았지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기도 했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저 배만 든든히 채우고 다시 길을 걸었다. 


아내는 계속해서 사타구니 쪽이 아픈지 손으로 그 부위를 누르고 본인만의 방법으로 통증을 좀 줄여가며 걸음을 걸어 갔다. 훗날 아내는 자기가 걷는 속도가 늦춰져서 나에게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걸었다고 한다.


담배와 마찬가지로 나는 커피도 매우 즐기는 편이었다. 스페인에서의 카페 콘레체는 너무 맛있다고 하던데 나는 아메리카노만 마셔와서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입이 텁텁해지는 기분이라 카페 콘레체를 즐겨 마시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BAR 에서는 아메리카노를 판매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나는 금단현상과 함께 카페인 부족 현상이 함께 왔고 그로인한 스트레스는 날이갈 수록 심해지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하품을 하고 힘이 없고 무기력한 것 같았다. 앞선 글에 쓰지 않았으나 2일차에도 3일차에도 4일차에도 나는 길을 걷는 내내 아내에게 그 좋은 풍경을 쳐다보면서 하는 얘기는 고작 담배와 관련된 이야기뿐이었다. 

                                                                                                           

둘이 함께 길을 걷다 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 이야기하며 걷게 된다. 매일매일의 대화 주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컨디션은 좋은지 오늘의 목적지는 어디인지 등의 물음은 항상 같은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을 함께 걸어가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오늘은 담배 얘기뿐이었다. 금단현상을 실제로 겪고 있는 나도 그렇겠지만 계속 푸념만 늘어놓는 나의 얘기를 듣고 있는 아내도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담배 얘기를 하다가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잠시간 다른 얘기를 했다가 또다시 담배 얘기를 꺼냈다.  


"여보 담배 끊는 게 조금 힘든데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담배를 끊는 건 어떨까?"

아내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길은 자유의 길이야 흡연에도 자유를 줘야 해"

역시나 아내는 답을 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예쁜 경치를 보면서도 내입에서는 조삼모사식의 발언만 나왔다. 이쯤 되면 그냥 포기할 법 한데 아내는 굴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매우 심각해진 걸 간파하고 담배 얘기를 더 이상 하지는 않았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난 그저 투정만 부렸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은 쉽게 얘기한다 그냥 끊으면 된다고, 실제로 끊은 사람들도 쉽게 얘기한다. 한 번에 끊으면 된다고, 근데 금연 중이 사람은 그게 아니다. 정말 힘들기만 하다. 이 당시 나는 오래 걸어서 힘들었다기 보다는 금단 현상으로 인하여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내는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나는 금단현상을 힘들어 하며 오늘도 목적지인 에스떼야에 도착을 하긴 했다. 에스떼야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이 예쁜 곳이었다. 공립 알베르게에 짐을 푼 우리는 오늘의 저녁 메뉴로 스파게티와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스파게티는 면만 삶으면 되고, 스테이크는 프라이팬에 익히기만 하면 되니 매우 간단한 음식들이었다 가장 간편하기도 하고 맛도 좋다. 스페인은 소고기 역시 값이 매우 저렴해서 적은 돈으로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먹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대부분의 식당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순례자 메뉴가 존재한다. 보통 마실것 과 에피타이저 본식 그리고 디저트 까지 제공해주면서 1인당 10유로 정도 하는 합리적인 가격이기에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며 음식을 해먹기 보다는 사먹는걸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직접 만들어 먹으면 둘이서 8유로 정도만 써도 배터지게 먹을 수 있고 오히려 음식이 남는다. 사람이 여럿 모여져서 4~5인이 함께 식사를 한다면 1인당 금액은 5유로 이하로 값이 많이 저렴해진다. 5일째 되는 오늘에서야 만들어 먹으면 저렴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어 이 이후로 우리는 저녁을 사 먹기보다는 만들어 먹기 위주로 패턴을 바꿨다.


물론 요리를 하기 위해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하지만 장을 보면서 나름의 재미도 있고 그런 불편감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의 행복이 더 큰것 같다. 오늘은 장을 좀 많이 보면서 내일 아침을 위해 햄버거 빵에 치즈, 소시지, 계란 프라이까지 넣어서 샌드위치를 싸놓았다. 저녁을 배불리 먹어 배도 든든하고 내일 아침을 미리 준비했기 때문에 마음도 든든하고 기분이 좋았다. 


저녁 먹은 것을 정리 하고 아내와 함께 알베르게 앞에 있는 공원에 앉아 또다시 담배 얘기를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금단현상의 힘듦을 계속 얘기 했고 아내는 괜찮다 할수 있다를 계속 얘기 했었다. 어찌보면 정답이 정해져 있는데 욕심을 계속 부렸던 것은 아닌가 싶다. 저녁을 먹고 내일의 준비도 어느정도 되었던 우리 둘다 기분이 꽤나 좋았던 상태였기에 지금 타이밍에 이야기 하면 담배를 다시 피울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계속 되고 답이 안나오는 상황에서 갑자기 아내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오빠 나 몸도 아프고 힘든데 계속 담배 얘기를 하니깐 너무 스트레스 받는것 같아"


길을 걷는 내내 계속 '할 수 있어' 라는 응원의 말만 해주던 아내가 처음으로 불만을 표현하였다.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그렇게 반성 했지만 '여전히 내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반성 아닌 반성을 또다시 하게 됐다. 마음을 고쳐 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금연을 하겠다고 한것도 내가 먼저 한말이었고, 이곳에 오자고 한것도 내가 제안했었는데 나만 믿고 여기 까지 온 아내에게 더이상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날 이후로는 담배와 관련된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이후로도 전혀 안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금단 현상 으로 인한 불만을 이야기 하는것은 최대한 안하려고 노력 했다.   


순례길에 접어든 지 5일 차가 되는 날이었고, 여느 때와 같이 윈도우 배경화면 속의 같은 길을 걷기만한 하루 였다. 아마도 이런 똑같은 모습을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볼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간사 하기 때문인건지 아니면 금단 현상 때문인건지 아직 5일밖에 안됐는데 벌써부터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들어 버렸다. 아침에 출발해서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걷다 보면 어느새 알베르게에 도착하는 매일매일 같은 일상. 하지만 그 같은 일상 속에서는 또 늘 똑같지 않은 하루하루가 이어지며 또다시 반성 하는 하루가 그렇게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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