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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Feb 27. 2024

Day2 론세스바예스 to 수비리

사타구니 통증과 금단현상

day2 론세스바예스 to 수비

산티아고 순례길 2일 차(론세스바예스-수비리)


한국과의 시차 때문인지 어제의 힘들었던 기억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우리는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어제와 같이 이른 아침인 5시 30분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부터 일어나 두번째 하루를 준비 했다. 아내와 나는 다른사람들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옷을 챙겨 입고 사람이 없는 알베르게 1층 주방으로 내려와 침낭을 말아넣고 배낭을 싸고 준비를 마친뒤에 우리의 오늘 목적지인 수비리를 향해 출발했다. 너무 이른 아침에 출발 한 탓인지 스페인에서도 시골에 속하는 이 순례길은 해가 뜨기 전까지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길을 핸드폰 불빛에 의지한 체 걸어야 했다. 


어제 처음 걸을 때 알베르게에서 1등으로 길을 나섰는데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한 시간이 남들에 비해 너무 늦게 도착한 것 같아 오늘도 뒤쳐질까 봐 남들보다 일찍 출발을 했다. 돌이켜 보면 왜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는지 모르겠다. 결국은 다 한곳에서 만날텐데.... 



수비리를 향해 걷는 길은 다행인지 어제 코스인 피레네 산맥을 넘는 코스보단 수월한 코스이지만 우리에게는 개인적으로 조금 힘든 코스 이기도 했다.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어제 피레네 산맥을 내려올 때부터 사타구니가 아프다고 했었다. 어제도 걷기가 힘들 정도로 아프다더니 오늘도 걷기 시작할 때부터, 사타구니가 조금 아프다고 했었다. 내 생각엔 본인 몸무게의 20%나 되는 무게의 배낭을 짊어져서 하체에 무리가 많이 갔던 거 같다. 아내는 평소 조금 아프더라도 혼자 참고 버티는 성격인데 그런 사람이 걷는 여행을 하러 온 이곳에서 걷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아프다니 걱정이 많이 되었다. 어제 내려올 때도 혼자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걸어 내려왔었는데 오늘은 시작부터 아프다고 하는 게 영 마음이 쓰였다. 


"여보 괜찮아?"

"응 괜찮아 많이 아픈 건 아니고 조금 신경이 쓰이는 정도야"

"정말 괜찮아?" 

"응 걸을 수 있어"


어제 걸으면서 '아내는 더 이상 나에게 짐이 아니다' 라고 단단히 마음을 고쳐먹고 뭐든지 아내가 우선이라는 마인드가 생겨 버린 나였다. 괜히 내가 이 먼 곳에 데려와서 나 때문에 아픈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은 걱정대로 했지만 그렇다고 시작한 지 하루 만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다였다. 아내는 우선 참고 걸어보기로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기 전 나는 아내와 약속한 것이 있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고 나면 담배를 끊겠다고 비행기표를 발권하기 이전부터 "혹시나 산티아고에 가게 되면 거기선 끊어볼게"라고 말을 했었다. 어쩌면 그런말 때문에 아내도 이 고된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었던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나는 산티아고를 같이 가기 위해 그냥 한말이었지 담배를 끊는다는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뱉은 말을 그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한국에서 사왔던 담배의 마지막 한까치를 피우며 이제 담배를 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잠이 들었다. 


때문에 수비리에 가는 길은 나에게 첫 금연의 길이기도 했었다. 담배라는 것을 그동안 끊어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 끊어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아내도 날 위해 힘든 걸 참고 이 길을 걷고 있고 나를 위해 희생해 줬는데 나는 아내를 위해 금연하나 못할까'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수비리를 가는 길에 나는 30분에 한 번씩은 아내에게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여보 금단현상이 있는 것 같아"

"그냥 순례길을 마치고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그때 담배를 끊는 것은 어떨까?"

"아니야 오빠는 할 수 있어"

"이 마을에서는 담배를 파는 것 같은데..."

"담배를 안 피우니깐 너무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

"그럼 하루에 세 까치 정도로 타협하는 건 어떨까?"


담배에 관해서는 거의 나 혼자 10마디 하고 아내는 "응" "아니야 할 수 있어" 정도의 단답만 했다. 길을 걷는 내내 경치는 보이지 않았고, 그저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과 아내가 혹시 많이 아픈가? 다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며 길을 걸었다.


아침 6시에 출발했던 탓일까 아내는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나는 금단현상을 느껴가며 푸념하며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낮 12시 밖에 안된 시간에 오늘의 목적지인 수비리 알베르게에는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려고 알베르게 호스트에게 인사를 건내자 여기서 쉬다 갈껀지 오늘 하루 묵을껀지 물어왔다. 아마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에 우리가 하루 묵어 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틀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내는 사타구니가 아프고 나는 금단현상으로 인해 무기력증이 와서 곧장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 묵어간다고 이야기하였다. 


알베르게에 일찍 도착하면 나름의 특권이 있다.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없는 샤워실에서 노래를 불러가며 샤워를 할수도 있고 어제 오늘 입었던 옷을 여유 있게 빨래를 할수도 있다. 아내와 나는 수비리 알베르게 에서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순례자들을 위한 샤워실은 공동 샤워실이고 사람이 많이 붐빌 때는 기다려야 하며, 뒷사람을 위하여 빨리 나와줘야 한다. 하지만 남들보다 한 시간 정도는 여유 있는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화장실과 샤워실을 단독으로 쓰는 호사를 누렸던 것이다. 


순례자들이 묶는 숙소 를 알베르게 라고 이야기 하는데, 알베르게는 크게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가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알베르게가 있다. 우리가 순례길을 걸었던 시기에 공립 알베르게는 보통 5유로~10유로 정도 하는 가격이고 사설 알베르게는 10유로~15유로 정도 하는 가격이었다. 공립알베르게는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있고 사설 알베르게는 가격은 공립 보다 조금 비싸지만 시설면에서 공립 알베르게에 비해 조금 앞선다. 어제도 오늘도 우리는 공립 알베르게에 묵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일찍 출발한다고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은 우리는 수비리 공립 알베르게 바로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나는 평소에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고 외국의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편이었기에 그나마 우리가 먹어본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주문했던 피자와 파스타가 나오기전에 먼저 오징어 튀김이 우리 앞으로 나왔다. 시키지 않았던 음식이었지만 우리는 그것이 애피타이저 개념으로 나왔던 음식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오징어 튀김은 지금까지도 그 맛이 기억날 정도로 아주 맛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먹었던 음식중 TOP3 안에 들어가는 맛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오징어 튀김은 잘못 나온 것 같다. 우리가 주문한 게 아니라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한 건데 우리한테 서빙된 거 같은 기분이다. 왜냐하면 음식을 다 먹고 계산을 하는데 음식값을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 우리가 생각했던 거보다 거스름돈을 덜 줬다. 한 푼 두 푼을 아껴서 30여일을 살아가야 하는데 단돈 몇 유로라도 큰돈이었기 때문에 되지도 않는 영어로 거스름돈이 잘못됐다며 따졌다. 


"저기 거스름돈 잘못 거슬러줬어"

"응? 무슨 소리 맞게 거슬러줬는데?

"아니야 난 이 세 가지 메뉴를 시켰고 이건 얼마니깐 너흰 나한테 얼마를 더 줘야 해"

"아니야 너희가 먹은 메뉴에 대해서 정확히 계산했어"

"아냐 난 이 메뉴를 주문했으니 거스름돈을 더 줘야 해"


되지도 않는 영어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결국 우리가 생각한 대로 거스름돈을 받아서 돌아왔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오징어튀김 값이었던 거 같다. 어쩐지 우리가 앉았던 테이블 말고는 오징어 튀김을 애피타이저로 주는 경우는 없었다. 잘못된 서빙으로 인해 정말 맛있었던 오징어 튀김을 먹었지만 본의 아니게 레스토랑에 진상피운 손님이 되버린것 같다. 

문제의 오징어튀김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알베르게 앞에 있는 정원에서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빨래를 말리고 남들보다 일찍 도착한 덕에 여유로움을 느낄 때쯤 첫날 생장 알베르게에서 처음 만나 인사했던 독일인 친구 리사가 도착했다 반가웠다. 리사는 산티아고에서 만난 첫 번째 친구여서 무언가 각별한 느낌이 있었다. 리사는 여유가 있는건지 걸음이 느린건지 늦게 출발하고 늦게 도착하는 편이었다. 길을 걷다보면 서로가 지나쳐 가며 매일 보게되는 얼굴들이 있는데 나름 각별한 애정을 느끼고 있었던 리사는 길에서 만나기는 어려웠다.


"리사 좀 늦었네? 걸을만했어?"

"응 난 천천히 걸었어 너희는 일찍 도착했구나?"

"우리는 어제 너무 늦게 도착했어서 일찍 출발했었어"

"그래 우리 모두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매번 길을 걸을때 만나는 사람들은 걸으면서 '부엔 까미노' 라고 인사를 한다. 그렇게 몇번의 인사를 주고 받다 보면 어느새 말문이 트이고 대화를 하게되며 자주 부딛히다 보니 어느새 동지애 같은게 생긴다. 날이갈 수록 우리의 동지는 조금씩 많아졌고, 순례자 전원의 공동숙소인 알베르게는 하루를 마무리 하며 개인정비를 하는 곳 이기도 했지만, 서로가 조금씩 알아 갈 수 있는 만남의 장 이기도 했다.  


첫날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 늦게 도착했다는 생각 때문에 둘째날인 오늘은 아침 새벽부터 열심히 걸어서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에 1등으로 도착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걷는데만 집중해서 그런지 사타구니가 아프고 금연으로 인한 무기력증 때문이어서 그런지 순례길의 풍경을 온전히 눈에 담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조금 더 풍경을 돌아보며 아내와 사진 한번 더 찍어가며 여유 있는 까미노 길을 걸어보자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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