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무물 | 28번째 이야기
주말엔 동생과 영화 '에어(Air)'를 보았어요.
나이키 덕후라서 시작부터 울컥한 채 TMI를 대방출하고 싶은 걸 참으며 끝까지 봤답니다. (동생에게 울컥했다고 하니 나이 들었냐며 놀렸어요..ㅎㅏ 얼마나 감동적인데)
모든 위대한 것의 위대해지는 시작점이 궁금했어요. 마이클 조던이 어떻게 위대한 선수가 되었는지, 필 나이트는 나이키의 시작을 어떻게 하였는지.
마이클 조던의 이야기는 [라스트 댄스] 넷플릭스 다큐로, 필 나이트의 나이키 이야기는 [슈독] 책으로 열심히 찾아 읽었죠.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에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에어를 볼 때 그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던 거 같아요. 사실 저는 필 나이트의 등장에 즐거움을 느꼈지만요.
영화 중간에 필 나이트는 자신의 종교와 같은 것이 달리기라고 말해요. (덕후의 가슴을 울리는 명대사..)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소니의 종교는 농구겠죠. 모든 믿음과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니까요. 영화를 보며 궁금했어요. 나에게 종교와 같은 건 뭘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있었어요. 바로 첫 회사죠. 그 회사의 가치를 온전히 믿고 그대로 살고 싶었어요.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몸을 유지하며 사람들에게 그런 삶이 얼마나 멋지고 좋은 것인지 알리고 싶었거든요. 공감하는 사람들과 운동 이야기, 건강한 식사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즐거웠어요. 아마 '내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다른 사람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였을 거예요. 종교란 그런 거 아닐까요?
요즘의 저에게 종교는 여전히 달리기가 아닐까 싶어요. 달리며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지켜보고, 살아있음을 느끼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가장 잘 달리는 사람이 아닌 꾸준히 오래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몇몇 친구들의 답은 '엄마', '통장', '빵'...등의 대답이 나왔어요. 너무 신기한 거 있죠. 종교라 하면 너무 거창해 보이지만, 삶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고 좋다고 믿는 거. 그거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키티언니에게도 종교 같은 것이 있나요?
저에게 종교 활동이란.. 불자이신 엄마를 따라 절에 몇 번 갔던 것, ‘취준’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을 적 지극히 사적인 소원을 빌러 갔던 일이 다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종교를 경험하지 못하다 보니 ‘종교 같은 것’을 선정하기가 어렵네요.
그래서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종교
-네이버 국어사전: 신이 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 (후략)
-두산 백과사전: 무한(無限)·절대(絶對)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고 신성하게 여겨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일. (후략)
두 사전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종교란, ‘한 존재에 대해 믿고, 믿음을 통해 인생의 행복이나 의미를 찾는 일.’입니다.
저는 무엇이 되었든 간에 100% 믿지 않아서 '종교'같은 것이라는 메타포를 적용하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전후 관계를 바꿔 고통을 해결하고 인생의 행복 또는 의미는 구할 수 있는 일을 톺아봤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게 종교 같은 것은 ‘산책’입니다. 취업 실패나 이별을 겪고 눅눅한 수렁에 빠져 있을 때 산책은 저를 구하고 당장을 견디게 했어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할 길도 부러 걸어갔습니다. 매연이 코를 쑤셔대는 길을 걸으며 울었고, 야트막한 뒷산에 오르면서 숨을 헐떡였어요.
밤에도 훤한 강남의 길거리를 정처 없이 쏘다니며 머리를 비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저를 짓누르던 걱정들이 풍화되었습니다. 가벼워지더라고요. 풀리지 않던 문제의 답이 툭 떠오르기도 하고요. 영험함을 몸소 체험한 후로는 스트레스가 몰려들면 산책을 나갑니다. 크게 스트레스가 없어도 가고 싶은 카페로 걸어가거나 공원을 걷습니다. 돌아올 즈음에는 한결 나아진 마음으로 변해있죠.
우울함을 호소하는 지인들에게 (심각한 경우를 제외하면) 왕왕 권합니다. 산책하라고요. 믿음이 부족한 인간이라 고했는데, 아니었네요. 전 이미 산책의 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네요.
미티님, 달리다가 힘들면 걸으세요. 산책은 늘 당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