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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재 Oct 12. 2023

좀 우연해서 괜찮은 삶

인생에 “우연함이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삶은 우연의 연속”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무섭게 다가오긴 하지만, “우연함이란 없다"라는 말이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우연함이 없다"라는 말, 이 말은 이미 모든 것들이 운명 지어져 있어서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별 수 없다는 불가능의 다른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마치 콘크리트 상자에 갇힌 것 같고, 신탁에 의해 운명 지어진 것 같기도 한 그런 삶이 떠오르니 무섭지 않을 리가 있겠나?


“우연만 있는 삶”도 아슬아슬하긴 마찬가지다. 좀 자조 섞인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무책임한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을 것 같고 또 예기치 않은 행복이나 절망에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인간적인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집 근처 공원에서 낙엽을 쓸고 계신 분이 있었다. 그저께도 같은 시간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모습으로 낙엽을 쓸고 계셨다. 그분을 본 건 우연일까? 아닐까? 탄천의 하얀 물고기(잉어?)가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 이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옷을 입고 낙엽을 쓸고 있는 그분의 모습을 보고, 그분에 대해 잠시라도 어떤 느낌을 갖게 되었다면 “우연”이라고 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제 갈 길을 가고, 제 할 일을 하는 건 우연과는 무관한 각자의 계획에 따른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삶 속엔 이렇듯 이미 정해진 어떤 그림 속에 우연한 일이 적절하게 섞여 알 듯, 모를 듯한 그림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 같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태어난 다음 죽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정해진 바탕 그림인 셈이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건, 어떤 부모에게 태어났건, 어떤 환경이었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이미 벌어진 일이지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언제 또 어떻게 죽는지에 대해서는 “우연”이란 게 적당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 같다. 자기의 죽을 날을 알고 있다면, 그날이 비록 무지무지 먼 훗날이라고 해도 이미 정해져 있다면 편한 마음으로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언젠가는 죽겠지만, 다행스럽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니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사과나무를 심으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엉뚱한 생각 같지만 “인지 부조화”란 말이 떠오른다.


탄천 둑에 노란 들꽃들이 피어있고, 듬성듬성 놓인 돌들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에도 바로 이곳에서 하얀 물고기를 봤다. 같은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얀색이 흔하지는 않으니 같은 놈이라고 생각한다. 인연이고 우연이다.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을 텐데. 만약 내가 잡아먹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계속 이곳에 있었던 거라면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쳐서 반가운 사람

책장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지폐

우연히 들어간 맛집


매일 일어났으면 좋을 것 같은 “우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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