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래된 얘기지만, TV에서 <5공화국>이란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화질은 물론이고 소품이나 세트나 연출이나 뭐 하나 이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릿적 드라마였지만 ‘과연 어떻게 그려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어서였다. 요즘도 가끔 채널을 돌리다 이 드라마가 나오면 잠시라도 멈춰서 보곤 한다.
얼마 전에 <5공화국>,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이야기가 같은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봤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못 볼 것 같다. 이전의 <화려한 휴가>때도 그랬고 <택시 운전사>때도 그랬다.
79년 10월 중3, 당시 시청에 만들어진 박정희 대통령 조문소를 갔다. 학교에서 가라고 해서 갔다. 모든 사람들이 슬퍼했고 울었다. 울다 울다 슬픔의 임계점을 넘긴 사람들은 그냥 멍한 얼굴로 있기도 했다. 나도 슬퍼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고등학교에 들어갔던 그 해 봄, 집에 배달된 신문 1면에는 “폭동, 폭도, 광주, 계엄 등등”이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거대하게 적혀 있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동안 계속 그랬다. 아직도 그때의 그 신문 제목들이 생생하다. 그때는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천하에 못된 폭도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정부는 군인들을 투입해서 질서를 바로잡는 중이다. 그런.
3년 후 다시 봄이 왔다. 일어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화려한 휴가>의 예고편을 본 다음, 그 영화는 도저히 볼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이 <택시 운전사> 때도 그랬고 지금 <서울의 봄>까지 와서도 그렇다. 말로만 대충 때우고 넘어가는 드라마 <5공화국>과는 많이 다르다.
40년 전에 봤던 광주의 비디오는 시간이 갈수록 더 생생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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